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YODA Oct 03. 2024

불꽃놀이 - 감정 제작소




“ 불꽃놀이는 가을에 하지 않나? 요즘은 어디가 제일 예뻐?” 

“ 여의도죠. 이건 그냥 배경화면이고요.” 


계약하기로 한 서류를 살펴보던 상혁이 의외라는 듯 이유를 바라보며 말했다. 집 매매건이었기 때문에 검토 겸 복덕방카페로 건너온 이유가 모니터에 자동 설정된 배경화면들 사이로 화사한 불꽃놀이 사진을 본 모양이었다. 


“ 우리나라에서 어쨌든 제일 유명하잖아요. 흠.. 사장님은 사람 마음은 매번 술술 이야기하면서 남들 다 아는 건 모른다니까요. 가끔 다른 시대 사람인가 싶을 때가 있어요” 


“ 그런가?”


듣고 있던 이유가 눈썹을 들어 올려 자신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 제가 여기에 처음 왔을 때도 시대극 촬영 현장으로 건너온 것 같았거든요” 

“ 아.. 그때..” 


“ 그나저나 바깥쪽 간판은 계속 내려 두실 거예요?” 

“ 그건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꽁꽁 묶어둔 간판이 그날 갑자기 내려와 있던 것도. 일단은 그대로 두어보려고”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자신이 일을 하게 된 것도 그 간판이 내려와 있던 덕분이었다. 물론 자신이 지금 잘하고 있는지는 완벽히 알 수 없지만 상혁은 덕분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걸로 봐선 스스로 이 생활을 꽤 마음에 들어 하고 있다는 게 새삼 느껴졌다.


“ 계약은 오늘 중으로 마무리하려고요.”  


아이 학교는 전학하지 않는 대신 자신이 살던 방법을 조금은 바꿔보고 싶다며 세 번째 손님이 의뢰한 집의 매매 계약서를 살펴보는 중이었다. 


“ 이 정도 집을 다시 구하긴 어려울 거야.” 

“ 네. 가장 중요한 건 정원이 있는 이 집을 제가 구했다는 거죠. ㅎㅎ” 


“ 그건. 인정! 그런데 특별히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긴 거래? 그 손님 말이야.” 

“ 아.. 동물을 키우고 싶으시데요. 강아지랑 토끼 같은 순한 애들요” 

“ 오~ 나름 변화가 있네..” 


“ 그런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거예요?” 

“ 응? ” 


“ 변화라는 거 말이에요. 그때 이후로.. 우리가 이 손님의 어릴 적 내면의 아이를 만나고 온 다음에.. 집 매매 의뢰하러 요전에 왔을 때 완전히 딴 사람인 줄 알았다니까요. 물론 두 달 넘게 시간이 지났지만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해요?” 


“... 그랬나? ” 


불꽃놀이는 어디가 유명한지 물어보던 때와 태세가 완전히 바뀌어 이유는 대답을 드문드문 뜸을 들이며 해주고 있었다. 


“.. 사장님 알면서 지금 모르는 채 하는 거죠? 왜 그분 눈빛부터 편안해졌잖아요.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고요. 이글이글 한번 덤벼봐라 이런 분위기였던 사람이 이젠 엄청 느긋해졌다고 할까. 여하튼 완전히 다른 사람 만나는 느낌이었다니까요. 사람이 그 정도로 변한다는 게 가능하냐고 묻는 거예요. 원래 그런 말 있잖아요. 사람은 안 변한다..” 


“ 뭐 불가능한 것도 없지. 우린 불꽃놀이의 포탄이 만들어지고 있는 그 핵심에 다녀온 거니까. 게다가 특정한 불꽃탄을 지속적으로 다량 만드는 이유를 함께 알아봐 주고 달리 볼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고 온 거니까..” 


“ 에.. 불꽃.. 요?” 


이건 또 무슨 말인지 생각하고 있을 찰나 이유가 상혁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 그래 불꽃들. 그게 우리가 말하는 감정이야” 

“ …” 

“ 밤하늘에서 잠깐 동안만 해도 수십 번 수백 번씩 펑펑 터져서 수놓아지거든.. 사람도 각자마다의 우주 속 밤하늘이 있어. 감정이 솟아나 펑펑 터질 때마다 우린 그걸 불꽃처럼 느끼는 거야. 어떤 상황이 주어졌을 때 저마다 다른 불꽃을 만들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운 거고..” 


이유는 이제 맞은편 의자에 앉아 커피잔을 들고는 아예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게다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기라도 하듯 살포시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상혁은 이유의 눈에서 얼핏 별들이 잔뜩 있는 신비로운 밤하늘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 감정에도 색깔이 있어. 실제 불꽃놀이처럼 말이야. 어떤 건 노랗고 따뜻해서 그리움이라 부르기도 하고, 흡족하고 연두색의 만족감, 두근거리는 붉은 열정과 수줍은 핑크 등 거기다 때론 이글거리는 분노와 시린 슬픔, 바들거리는 두려움, 다른 느낌의 두근거림의 불안과 깊고 깊게 푸른 우울까지 정말 다양한 감정들이 한 인간의 생에서 매일매일 불꽃을 터트리지.


게다가 감정이 올라올 때 우리 몸에는 엄청난 화학 작용들이 일어나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감정을 몸으로 직접 느끼기 때문에 그 자체가 된 것처럼 차가움과 뜨거움을 왔다 갔다 하는 거야.” 


‘이런 걸 설명하면서 저렇게 즐거울 수도 있는 건가?’ 


상혁이 애써 정체불명의 느낌을 지우느라 머리를 가볍게 흔들 때 즈음 다시 그녀가 코 앞까지 다가와 상혁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 감정은 우리가 살아있음을 느끼해줘.. 그런데 이런 감정들을 느낄 수 없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이런 감정을 경험하기 위해 이곳에 온 건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들 만큼 대단할 때가 있잖아.”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건지 아니면 다른 세계 어디쯤을 보는 건지 알 수 없는 그 눈을 피하느라 상혁은 바빴다.


“.. 흠. 글쎄요. 저는 감정에 너무 취해서 사는 삶도 썩 좋아 보이진 않아요. ” 


“ 그럴지도.. 너무 심취한 다는 건 감정과 자신을 아직 분리하지 못하는 거니까. 부작용이 많긴 하지.. 

그래도 가끔 이런 상상을 해. 만약 사람마다 같은 상황에 대해 주요하게 터져 나오는 감정 불꽃을 동시에 모두 볼 수 있는 상황실이 있다면 어떨까? 아마 다채로움에 놀랄 거야. 보편적으로 비슷한 불꽃을 터트리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각자 자신만의 결과물이 올라오거든.”


상혁은 뭔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입을 열었다.


“.. 만약 그렇다면요. 그런 상황실이 진짜로 있어서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감정을 볼 수 있다면 놀랍긴 하겠네요. 같은 문제에 대해 양쪽이 완전히 다른 관점과 감정의 불꽃들이 터트려지고 있는 걸 알 수도 있잖아요. 그럼 서로 공감이 안된다면서 오해하고 싸우는 일은 좀 줄어들겠네요.” 


이미 상상 속 불꽃놀이 상황실에 이미 앉아 있는 듯한 이유의 표정을 보자 상혁은 왠지 장난쳐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표정을 보는 게 왠지 싫지 않아 장난기를 누르고 말을 이었다.


“ 과연 그럴까? 그런데 그거 알아? 그 감정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상황실에서 보고 있으면.. 그러니까 모니터 한 개당 한 사람이라고 치면.. 그 사람은 매번 비슷한 감정을 터트리고 있다는 거야. 분명 발생하는 사건은 달라지는데 매번 반응하는 감정이 비슷한 색깔이라고."  


“ 에.. 한 사람이 대부분의 문제에 대해 비슷하게 반응한다고요?” 


“ 나도 처음엔 그게 이상했어. 왜 비슷한 톤의 감정색만을 터트리는지. 분명 완전히 다른 문제 같은데 말이지. 그런데 잘 생각해 보니까 주변 지인이나 친구들이 어떤 캐릭터라는 걸 갖고 있었다는 거지. 특히 어떤 예민한 부분에 대해서 수천만 가지 다른 해석과 결정이 가능함에도 기존에 자신이 해오던 한 가지 방향대로만 해석하고 행동하지. 95% 이상.” 


“ 뭐.. 그렇긴 하죠. 사람은 거의 안 변하니까요.” 


이유는 멍하던 눈을 거두고 이제 마치 추리소설 속 탐정이라도 된냥 눈을 가늘게 뜨고는 상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식은땀이 나는 상혁은 추임새를 넣으며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 흠.. 성격, 즉 캐릭터는 자기 자신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완벽히 자동화되어 있었던 거야. 그래서 스스로는 이질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거지. 자신에게선 못 느끼더라도 대신 타자를 볼 때에 알 수 있잖아? 친구들 가족들 즉 타인을 관찰하다 보면 그들에게 있는 캐릭터가 보이곤 하니까. 물론 반대로 그들이 알고 있는 나의 캐릭터도 있을 거고” 


순간 상혁은 자신이 알고 지냈던 사람들의 캐릭터가 떠올랐다. 대체로 화가 나있어 군, 모든 것에 걱정이 많아 양, 불평불만 투정이야 양, 세상은 어지러워라며 혼란함을 술로 달래는 군, 대책 없어 그냥 있어 양, 깔끔함이 전부양에 이르기까지 가족들부터 대학 동기, 같이 일했던 택배 직원들까지 각자 고유한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 모두 자신만의 우주에서 그걸 느끼고 있다는 게 포인트야.”


“ 자신의 우주에서 터지는 불꽃놀이라..” 


“ 개인마다 주요하게 터져 나오는 감정의 색이 비슷한 이유는 그 사람의 폭죽공장에서 같은 색의 폭죽만 만들기 때문이야. 즉, 공장인 잠재의식이 오직 한 가지 방향으로만 거의 모든 것을 해석한다는 거지. 우리가 하는 일은 결국 그 공장으로 잠입해서 한 가지 색 만을 만드는 심층의 이유를 그 당사자가 알게 해 주고 약간의 도움을 주고 오는 거라고 할까. 이후로 어떤 변화가 생길 수 있는지 직접 본 그대 로고. 물론 당사자가 그것을 허락할 때의 이야기이지만” 


“.. 좀 놀랐어요. 사람은 정말 안 변하는 게 제 경험 자체였단 말이죠.” 


“ 그럴 거야.. 어려서 심어 놓은 그 씨앗설정이 시간과 경험을 먹고 자라서 성격이 됐는데 쉽게 옅어질 거라고 생각하긴 어렵지. 처음 왔을 때 세 번째 손님처럼. 조금이라도 아들이 피해를 보는 것 같으면 화가 났으니까. 보통이라면 아이들끼리 잠시 의견이 맞지 않는 정도의 일상적으로 당연한 일마저도 그 손님에겐 완전히 폭력으로 보이게 해석됐으니까 말이야. 


어려서 많은 학대를 받으면서도 반항할 수 없었던 그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강해져야겠다는 씨앗설정을 갖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해. 물론 이런 씨앗 설정은 아이들의 성향별로 달라서 같은 학대의 상황이라도 어떤 씨앗을 갖게 되는지는 달라지지만.


여하튼 그 씨앗설정을 갖게 된 사람은 자라면서 강해지기 위해서 또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지 않기 위해 투쟁적인 삶을 살아왔다는 걸 우리는 직접 가봐서 알잖아. 그리고 그렇게 발전한 성격과 세계관이 자신의 아들을 볼 때마다 연약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상기시킨다는 것도.” 


“ 그럼 분노는 이차적 감정 같은 거였겠네요? 어릴 적 두려움이 더 근본적인 감정이라면요.”


상혁은 다시 그때의 아이가 떠올라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어릴 적 씨앗 설정이 자라며 만들어진 세계관이지. 언제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폭력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과 이것으로 자신과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는 강한 느낌으로 세상과 다른 사람을 바라보게 했던 거니까. 

그래서 매번 아들과 연결된 주변 사람들을 꼬투리 잡아 분노했던 거고. 어쩌면 그는 그런 감정에 중독되어 있었던 건지도 몰라. 그렇게 감정의 불꽃을 강렬하게 행동으로 터트리고 나면 가벼워진 상태로 당분간은 잠잠하게 지낼 수 있으니까. 마치 무언가가 일시적으로는 해소된 듯하거든.  사실 응축된 분노의 일부를 잠시 터진 거지만.”  


“ 그리곤 시간이 지나면 매번 새로운 먹잇감을 찾았던 거군요. 자신도 모르게..” 


상혁은 그때 그 검은 몬스터가 떠오르자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끼며 말했다.


“ 그렇게 봐야겠지..” 


“ 결국 우리가 다녀온 곳은 불꽃놀이로 치면 폭죽공장이었던 거네요? 분노와 슬픔, 불만이라는 폭죽만을 만들고 있는 이유를 살펴보고 살짝 도와주고 온 것이고요.” 


“ 맞아.. 손님 스스로도 왜 그런 건지 알고 싶어 했고 변하고 싶어 해서 다녀올 수 있었던 거지. 사실 그도 지쳐있었으니까. 그 분노를 만들어내는 씨앗 설정이 바뀌지 않으면 다시금 같은 감정의 드라마를 필요로 하는 악순환의 구조에 빠져버리니까. 결국 매번 비슷한 상황을 부르고 무의식 중에 싸움이나 다툼을 찾아다니게 되는 거야. 상대방을 계속 바꾸면서” 


“ 다툼을 찾아다닌다… 싸움을 몰고 다닌다?” 


“ 둘 다 맞는 표현이야. 스스로는 싸우고 싶지 않다고 이제 지겹다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자신도 모르는 새 휘말려 있게 되거든. 같은 것은 같은 것을 부른다. 그 원리 알지?” 


“ 아..”


“ 씨앗설정이 인생 세계관에 너무나 강력한 영향을 끼쳐서 자신도 모르게 일생의 매 순간을 그 씨앗설정의 방향으로 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그럼 평생 오직 한 가지 방향으로만 세상과 삶을 경험하는 아쉬움을 남기게 되지.” 


“ 흠..” 


“ 그래서 불꽃놀이처럼 자신의 감정을 감상하는 게 필요해.” 


“.. 그렇지만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데 그걸 마치 타자처럼 어떻게 감상해요. 그게 돼요?” 


“ 어려울 수 있어. 처음에는 더욱.. 감정이 올라오면 사람들은 함께 하늘로 올라가 그 불꽃 자체가 되니까. 도대체 어떻게 제삼자가 되어 바라볼 수 있겠어라며 어려움을 토로하는 건 당연해. 그런데 그게 바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열쇠라 결국 어떻게든 성공한다면 그 다음 단계로 가게 되어있는 거야.” 


“ 열쇠, 그 다음 단계요?.. 어떤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데요?” 


“ 기존의 자신의 캐릭터와 동일한 선택이 아닌 새로운 선택을 해 나갈 수 있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첫 번째 열쇠.”  


“ 다르게 세상에 반응할 수 있게 된다는 건가요?” 


“ 응. 불꽃으로 산화되어 버릴 것 같은 느낌을 느끼면서도 불꽃쇼를 감상하는 관중이 될 수 있을까? 살아있으니까 그 불꽃을 느끼는 건 당연하잖아. 그 불꽃 자체가 되어서 느끼면서도 자신의 우주에서 펼쳐지는 불꽃놀이 전체를 관조하는 것.. 그럴 수 있다면 삶이 더욱더 풍요로워질 텐데..” 


“ 수수께끼네요.  불꽃자체가 되어 그것을 느끼면서도 불꽃놀이 전체를 감상하라니..” 

“ 맞아. 수수께끼.. ㅎㅎㅎ” 


이전 20화 세 번째 손님 5 - 괴물이 잠들었던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