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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YODA Oct 10. 2024

네 번째 손님 2 - 극한 직업


"이번엔 어떻게든 잘해봐야지.. 그러려고 가게 여는 거고.."


짐짓 비장한 이야기가 안방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잠이 오지 않아 거실로 물을 마시러 나온 상혁이 듣고 있다는 건 아무도 알지 못했다. 곧이어 일어난 일들이 그때의 말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마음 여리고 우유부단한 사람. 상혁이 아버지에 대해 생각할 때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였다. 야박하지도 악착같지도 않아서 사람 좋아 보이는. 이런 일 저런 일 오라는 사람이 많았던 사람. 


매번 잘 되야겠다고 어떤 일은 만들었는데 끝이 좋지 않았다. 사람이 좋아 보여서였는지 이런저런 사기꾼들도 많이 붙었고 그들이 하는 달콤한 이야기를 걸러내지 못했다. 결국 젊은 날 어렵게 모아 마련한 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나서야 사람 좋다는 이야기만 듣던 아버지의 인간관계는 끝이 났다. 상혁이 대학 2학년이었을 때였다. 


상혁은 부지불식간에 떠오른 아버지 생각을 떨치려 머리를 흔들었다.



“ 그건 절대 안 돼요. 이번에 괴물이 또 나타나면 어떻게 해요. 무조건 입고 가요.”  

“ 무섭기도 하겠지.. 하지만 오늘은 괜찮아. 아.. 아니지.. 아니야.. 적응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하려나?” 

“ 누.. 누가 무섭대요. 안전을 위해서 노력 좀 하자는 거죠” 

“ 흠.. 그래. 그런 걸로.” 


무섭지 않다는 상혁의 말에 이유는 잠시 웃는 것 같더니 알겠다며 방화복을 순순히 입고 가는 걸로 마음먹었다. 그래 어떻게 얻게 된 조수인가. 뭐 여태 입어왔던 방화복을 좀 더 입는다고 크게 어려울 것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 진짜 5층에 뭐 있는 거 아니죠?” 

“.. 아마도 이번엔 별거 없을 걸." 


잠시 경직되어 있던 상혁의 표정이 풀리려는 찰나, 이유는 의미심장하게 한마디를 툭 던지듯 말했다. 


" 대신 조심해야 할 게 있어.” 

“ 에? 조심이요? ” 


“ 현혹되지 말아야 해.” 

“.. 혹시 귀신같은 거예요?” 


“ 음.. 뭐 비슷해 보일 수는 있어도 그건 아니고..” 

“.. 비슷해 보인다고요?”   


상혁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지난번엔 검고 커다란 표범 같은 괴물이 있었는데 다른 이상한 게 있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 괴물을 본 이후 서재방의 조수일을 함께 해 추가로 받기로 한 인센티브만 아니었어도 이런 정체불명의 복덕방일 따위 그만두고 다시 물류센터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상혁이었다.


뭘 준비해야 하나. 마늘, 십자가 뭐 이런 거? 상혁은 마음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 여하튼 6층부터는 무언가를 만지는 건 안돼. 확인이 될 때까지는.” 



때마침 7층에서 보이는 사건의 시기가 손님이 청소년 시절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도 피어오른 아지랑이 글자가 ‘해 봐야 의미가 없어’라는 것을 확인할 즈음 파란색 전선이 계단 아래쪽으로 나타나는 것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6층이구나’ 


이번엔 또 뭐가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상혁은 주머니 한쪽의 이단 우산봉을 꼭 잡으며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되네였다. 


‘ 현혹되지 말자. 현혹되지 말자’


내려가자 깊은 바다와 하얀 모래 해변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천장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높디높은 하늘이 새벽녘의 어슴푸레 시리고 차가운 성애를 품은 채 뿌였다. 상혁은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그래서 더 믿기 어려울 만큼 실제 같이 느껴졌다.


폭풍우가 몰아 치려는 듯 높은 파도가 치면 바다 밑바닥에 있었을 무언가가 아우성치듯 걸쭉한 하얀 거품과 함께 수면으로 터져 나왔다. 마치 물결이 용맹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순간 상혁은 멍해졌다. 언젠가 딱 한번 가족여행이라는 걸 갔을 때 상혁이 보았던 그곳. 그때가 떠올랐다. 너무 기대하고 갔던 바다는 갑작스러운 태풍에 수영도 금지 됐었고  멀찌감치서 그저 구경만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역시 이런 것도 운이 없다며 가족들은 이야기했지만 어린 상혁의 마음 어딘가에서는 광활한 바다가 꿈틀대는 모습을 자신의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그저 경이로웠다.


바다.. 혹은 차갑고 어둡고 아름다운.. 깊은 무언가. 


바다를 보고 있던 상혁은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그저 파도 속으로 빠져들고 싶었다. 마치 바다와 해변만 존재하는 우주가 있다면 지금 그곳에 와 있는 느낌. 모든 걸 삼킬 듯 한 그 파도를 보고 있자니 바깥 세계의 다툼과 갈등이 재잘거림으로 작아지며 사라지고 있었다. 거대해 보이던 인간사의 갈등이 사라진 자리. 거대한 파도를 가진 바다가.. 그 깊고 깊은 공간이 모든 것을 받아 줄 것만 같았다. 상혁은 순간 바닷속으로 더 가까이 가고 싶어졌다. 한 발짝을 딛으려던 찰나. 이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저기 누가 있는데?” 



“ 일을 안 한 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성실하다면 성실한 편이었죠. 자화자찬 같지만 뭐든 시작하면 잘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 

“ 성실하게 일하셨는데도 이상하게 성과가 없었던 건가요?” 


잠시 남자가 머뭇거렸다. 무언가를 말해야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 같았다. 


“ 그렇습니다.. 실은 늘 어떤 일을 해도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일이 제가 원하던 일이 아닌 것 같았죠.” 

“ 원하던 일이라는 게 어떤 일인가요?” 


이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 그건.. 온전하게 저를 던져서 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무언가에 몰입된 사람들을 보면 정말 부러웠으니까요. 평생 저에게도 그런 직업이나 대상이 있기를 바라면서 초조하게 찾아다녔는지도 모르겠군요.” 


“ 흠… 일을 하면 열심히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 일들을 깊이 있게 계속하는 게 어려웠다는 말씀인가요?” 


“ 그런 셈이죠. 무엇이든 하나에 정착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지금껏 여러 가지 사업을 했지요.  사업이 잘 안 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늘 무언가를 찾고 있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가 깊이 빠져 들 수 있는 무언가를 말이죠.” 


“ 찾고 있었다. 깊이 빠져들 수 있는.. 무언가..” 


이유는 혼잣말을 되뇌듯 단어들을 두어 번 읊조리며 질문을 이어갔다. 


“ 그렇다면 평소에 사업을 하실 때는 어떤 상태였나요?”


“뭐.. 일단.. 움직입니다. 재정적으로 힘들지만 그 일이 필요할 때는 남들보다 더 능력 있게 하곤 해요. 열심히 일 하죠. 아이디어를 내든, 비지니스 관련 연결을 만들 든 어떤 것이든 말이죠. 그렇지만 여유가 생기면 즉시 이 일은 나와 맞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이것도 아니었구나 하는.. 그리고 다른 분야를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 신기하게도 사업이 어려워지는 상황도 때 마침 발생합니다.”


“ 사업을 지속하실 수 없었겠네요. 모든 것이 필연인 것처럼 느껴지고요” 


남자는 이유의 말에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였다.


“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서 다시 열심히 해보지만 사업이라는 게 이미 어떤 시점이 지나서는 다시 돌아가기가 어렵습니다.” 


“ 그렇군요” 


“ 보통은 이런 말을 하면 쓸데없는 배부른 고민을 한다고들 하죠. 지인들이나 가족들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 이해가 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매번 이러고 있어요.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지만  반복적으로 그렇다는 건 알게 됐죠. 그런 결과들을 바란게 아닙니다. 이제는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아요.


열심히 일 했던 게 모두 무너지는 것도 그렇고, 이렇게 무언가를 찾아서 떠돌아다녀야 할 것 같은 느낌에도 지쳤거든요. 끝없는 쳇바퀴 같아요.” 



“ 스르르…”


모래를 한 움큼 쥔 소년은 성글게 오므린 손을 위로 향한 채 그걸 바라보고 있었다. 힘없는 손가락 사이로 반짝거리는 모래알들이 스르륵.. 마치 그것들을 응집해 줄 수 있는 일말의 무언가가 없는 것처럼.. 수백 수천 개의 은빛 알갱이들이 순식간에 미끄러지듯 떨어져 사라지고 있었다.


눈동자의 초점이 흐려진 체 소년은 그것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다만 집어드는 동작과 바라보는 동작을 반복할 뿐이었다. 생동감을 잃은 듯 모든 것이 흐릿하고 이상한 느낌이다.


날씨는 서늘하고 추웠는데 그가 입고 있는 것은 얇디얇은 러닝에 짧은 반바지뿐이었다. 근처로 상혁과 이유가 접근해 갔지만 그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소년이 몇 번이고 모래를 흘려보내는 행동을  반복할 즈음 그의 뒤편으로 그림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그림자들은 갈래갈래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이다가 차츰 한가닥 한가닥 바닥의 그림자 본체로부터 얇게 갈라지더니 펼쳐지더니 칠흑같이 어두워진 위쪽으로 부유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치 검은 실 들이 하나씩 보이지 않는 바람에 실려 떠 올라가듯이. 


상혁은 자신 앞을 가까이 지나치며 올라가는 그 그을음 같은 것 중 하나를 재빨리 읽어 내려갔다. 

[해봐야 의미가 없어. 이게 다 무슨 의미지?]  

그건 분명 아까 6층에서 보았던 그 아지랑이 글씨와 비슷한 맥락의 구절이었다. 


‘이 소년에게서 그 저주 같은 글귀들이 만들어지는 것이었어?’ 


상혁이 이 이상하고 서늘한 소년과 기괴한 6층을 파악하려 애쓰는 사이 이유가 말했다.


“ 이곳은 이미지 즉 표상이 있는 곳이야. 세상과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상 말이야. 세상에서의 자신을 표현해 놓은 곳이라고 할까. 이 손님은 세상과 자신의 존재, 자신이 하는 일을 이런 이미지로 정의하고 있는 거야.”


“.. 해변에서 쉬는 거요?” 


거대한 바다와 해변이 있는 공간과 멍하니 기운이 하나도 없는 흐릿한 느낌의 소년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해변에서 불어오는 시린 바람에 날아가버릴 것만 같은 그런 미미한 존재감을 갖고 있는 사람. 어찌 보면 소년이 자신을 언제 날아갈지 모르는 모래알로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상혁은 생각했다. 그를 보고 있자니 기운이 빠져서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느낌이 전해져 왔다. 주인장이 오기 전 농담처럼 이야기했던 현혹되지 말라는 게 이런 의미였나?


“ 정말. 그렇게 보여?” 


이유가 상혁을 보면서 되물었다.


“.. 소년을 보는 순간부터 허무하고 무의미해 보여요. 슬프기도 할 것 같은데 그것마저도 잊어버린 것 같아서 더 서글프고요. 이렇게 농담이라도 하지 않으면 자꾸 이 분위기에 동화되어 버릴 것 같다고요”


상혁이 농담기 없는 감상을 이야기하자 이유도 소년을 보며 말했다.. 


“ 세상을 거칠고 넓은 바다와 해변으로 자신은 그곳에서 있는 작은 소년으로. 그리고 무의미한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상태로 해석하고 있는 것 같아. 모래들은 매우 아름답지만 소년의 손은 그것을 움켜쥔다기보다 그저 빠져나가는 걸 느끼기 위해서 손 위에 올렸다가 떨어뜨리고 있는 거고..” 


잠깐 이었지만 상혁은 자신도 모르게 울컥하는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정말 소년 자체가 세상에서 흐릿해지고 있는 느낌이 안타까워서일까 아니면 그 누군가를 떠올리며 현혹되어서일까. 알 수 없었다.


“ 정작 현실에서의 본인은 너무 열심히 살아가는데 내면이 이런 상태였다면 여태까지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안되네요.”  


“.. 많은 사람이 의식적으로 엄청나게 노력하는데도 결정적으로 어떤 기회나 상황을 잡지 못하고 놓치게 되는 건 이것과 매우 깊은 연관이 있어. 세상과 자신을 정의하는 이 표상과 말이야. 신기하기까지 할 정도로.” 


상혁은 흠칫 놀랐다. 자신 안에도 이 관념의 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인간들에게 각자마다의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이미지가 있다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뜻 했다.


“ 그렇다면.. 어째서 누가 이런 이미지상을 만든 거죠? ” 


무언가에 약간 화가 난 듯한 상혁이 아까 확인한 그림자 가닥 하나를 끊어 내려는 듯 팔을 들어 다가가려 하자 주인장이 심각하게 이야기했다. 


“ 그건 만지지 않는 게 좋겠어. 네 생각이 아니고 그 손님이 자신에 대해서 갖고 있는 이미지 상이자, 편견, 정체성으로 자신이라고 믿는 상태들이니까 그걸 건드리면 그것이 네 정체성과 만나 새로운 관념들을 만들게 될꺼야. 그게 현혹되는 거고..” 


상혁은 멈칫하며 생각했다.


‘ 아.. 쉽지 않구나.. 복.덕.방 조수라니.. 사실은 극한 직업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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