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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YODA Sep 19. 2024

재수 옴 붙는 그 꿈


‘헉, 헉’


남자와 일행은 좁고 축축한 골목 안을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등골을 타고 내려온 저릿한 공포가 두 다리를 저절로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잠깐이라도 뒤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미로처럼 복잡한 골목은 오래전 돌을 쌓아 올려 만들어진 곳 같았고 군데군데 이끼가 낀 표면은 무겁고 습한 공기가 가라앉아 더 미끌거렸다. 


‘ 한 발만 헛디뎌도 잡아먹힐게 분명하다.’ 


남자는 몇 번인가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상황을 모두 알기는 어려웠다. 그저 미친 듯이 달려야 할 뿐.


그래도 한 가지 어렴풋이 떠오르는 건 결심 비슷한 걸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겁에 질린 채 쫓기듯 새벽의 고요를 찢고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다. 이번에야말로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꼭 보고야 말겠다는 결심.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공포에 질려 도망쳐온 사람들의 표정을 본 순간 그는 무엇인지도 모를 ‘그것’으로부터 정신없이 달아나야 했다.


" 하아, 하아…"


얼마나 지났을까. 턱까지 숨이 차 이대로 죽겠다 싶을 즈음 무리는 꽤 넓은 광장에 도착했다. 마른 숨을 거칠게 들이켜고 뱉어내는 소리, 여기저기 과부하 된 공기가 침과 섞여 목에 걸려 컥컥 거리는 소리가 번갈아 들려온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각자 무리로 합류해 갔다. 도망치던 분위기는 이대로 마무리되는 건가. 쫓아오던 거대한 무언가가 사라진 것에 그가 조금 안심할 때였다. 모인 사람들에게서 무언지 모를 기묘한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여느 사람들처럼 그도 주의를 기울이며 한 무리로 다가갔다. 그러자 늘 그랬다는 듯 누군가의 외침이 들린다.


“ 너 때문이야.”

“ 너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된 거야!”


그리곤 순식간에 시작된 돌림노래처럼 모두 같은 말을 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무엇을 비난하는 건지 남자가 물어보려 해도 소용없다. 결국 거기 있던 모두가 서서히 검은 그림자처럼 변해 그를 꽁꽁 에워쌌다. 밧줄에 묶인 듯 옴짝달싹 못하게 된 남자는 억울함으로 심장이 터질 만큼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자신 때문이 아니라고 온몸으로 버티며 악다구니를 치지만 강한 완력에 허무한 몸부림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깨닫는다. 


‘아.. 이거 꿈이었지..’


깨알보다 작던 자각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상혁은 갑작스레 잠에서 깨어났다. 땀에 젖은 시야로 촌스러운 갈색 몰딩이 둘러쳐진 조그만 천장이 들어온다. 


“ 으…”


미친 듯이 방망이질 치던 심장은 꿈에서 깨어나기 바로 직전 실제가 아니란 걸 알자 갑자기 박동수를 뚝 떨어뜨려버렸다. 


‘와.. 넌 자율신경계라고 해도 적당히가 없냐.’


상혁이 제 심장에 푸념하듯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빠르게 돌던 혈액은 마치 트랙 위 경주마처럼 세에엑 남은 관성으로 혈관 속을 달리고 있어 누워서도 어지러웠다. 


문제는 꿈이 아니었다. 이상하게 이 꿈을 꾼 날은 꼭 무슨 일이 생긴다는 게 문제다. 일하러 간 알바에서 보직이 바뀌어서 허둥대거나, 큰돈을 안 받는 실수 따위를 하고 결국 일자리에서 잘리거나 밥을 먹다가 체하거나, 안 체하면 배탈이 나거나, 밥 먹다 혀를 깨물거나, 하물며 별일 없이 지나갔다 싶더라도 숙소에 다 와서 크게 넘어져 팔을 삐거나 뭐 이런 식이었다. 


‘오늘은 여기서만 콕 박혀있고 싶다’. 


비좁고 냄새나는 고시원 방이지만 지금의 상혁에겐 세상 아늑한 최후의 보루로 느껴졌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락에 떨어졌다는 절망감이 바닥을 치다 못해 땅을 팠는데 몇 달이 지나자 더 이상 앞 날 따위 어떻게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그저 사치스러움이 되어 있었다. 


앞뒤 전후 상황을 다 차치하고 상혁은 딱 하루만 마음 놓고 쉬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는 상황도 아니었다. 택배 분류 일도 이번에 건너뛰면 당장 고시원 월세가 밀린다. 상혁은 싫다고 하소연하는 몸뚱이의 다리 한쪽을 꾸역꾸역 바지통으로 밀어 넣으며 일어났다. 



물류센터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각 지역에서 모여든 택배차가 크고 작은 상자들을 컨베이어 벨트에 계속해서 토해내고 있다. 바닥 그득히 쌓인 박스가 높이 쌓여 산을 만들고 작업자들은 그득히 쌓인 산에서 네모진 것들을 일사불란하게 행선지 단위로 나뉜 큰 카트에 쌓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커다란 먹잇감을 조각조각 내서 분류하는 개미들이고 자신도 그중에 하나라고 상혁은 생각했다. 상자가 쌓였다. 상자를 옮겼다. 상자를 올린다. 작업장은 늘 밀려있는 택배로 아수라장이었지만 그는 오히려 이런 기계적인 작업들이 편했다. 


사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초기 일을 시작했을 때는 하루 일하면 온몸이 파스 투성이가 되는 허약한 몸뚱이였다. 사무직을 노리던 개미가 갑자기 일개미일을 하면 그렇게 된다. 그래도 몸을 움직이고 나면 뭔가 마음은 개운해지는 맛에 버틸 수 있었다. 책상에만 앉아서 모든 걸 하려던 때와 달라졌다는 게 좋았다.


게다가 CCTV로 매번 확인하며 전화하는 사장, 취객이나 비매너의 욕구불만인 사람들을 만나기보다 네모난 상자들을 상대하는 게 상혁에겐 훨씬 수월한 일이었다.


물론 상자 중에도 불만을 품은 애들이 종종 있기는 했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로 김치를 품은 상자가 시뻘건 속내를 드러내고 장렬하게 폭발해 있다던가 해산물이 들어있는 상자가 속이 상해서 매우 괴롭고 참기 힘든 냄새와 함께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한다던가 하는 일 말이다. 


그래도 대다수의 택배 상자들은 상혁을 대할 때 매우 솔직했다. 그들이 바라는 건 딱 하나였으니까. 표면 위에 붙은 주소지로 배송되도록 분류해 주는 것. 이런 솔직하고 단순한 이유 이외에 그들은 상대방에게 무리하고 무례한 기대를 하지도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상자 하나하나를 잘 보내주다 보면 매달 갚아야 하는 학자금 대출금도 줄어 상혁은 나름 만족했다.


매일 새로운 행선지의 종이를 붙인 상자들과 인사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이러다 물류센터의 상혁이라는 게임 속 캐릭터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들어 피식 웃곤 했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만든다면 재미는 있을까. 


꿈 때문에 뒤숭숭했지만 규칙적인 기계음과 몸의 움직임 때문인지 작업이 완료될 때쯤엔 그는 한결 머리가 맑아진 것 같았다. 그래도 경험상 오늘은 끝까지 방심하면 안 된다. 간밤의 징크스에 대해 상혁은 한 동작 한 동작 움직일 때마다 평소와 달리 스스로에게 조심이라는 단어를 거의 반복해서 되뇌고 있었다.


‘휴, 오늘은 드디어 징크스 없이 넘어가는 날이 될지도.’


센터시스템에 코드를 찍고 잽싸게 돌아가는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앉을자리가 남아있는 버스를 보며 흠칫 놀랐지만 이런 운 좋은 느낌으로 하루가 지나간다면 드디어 이 징크스는 사라지는 걸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는 상혁이었다.


다른 날 보다 조금 더 지쳐 졸던 상혁은 고시원 근처 정류장에서 내리자 빨리 들어가 쉬고 싶은 생각만 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 미야옹, 미야옹~”


보통은 지나가지 않던 골목 쪽에서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거긴 상혁이 퇴근 후 고시원에 가려면 버스에서 내려 지나쳐가던 곳이다. 늘 있었지만 지난 6개월간 그런 골목이 있는지 조차 몰랐던 곳.


‘그러니까 하필, 지금 이 시점에..?’


뭔가 불길하다. 이건 3류 영화로 치면 너무 뻔하게 보이는 복선인 게 분명하다. 불운한 징크스의 사건을 알리는 전조라는 게 너무나 분명한 이런 상황에서 누가 고양이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간다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상혁은 어느새 골목 안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대로변에서 두 번째 있는 이 골목은 유독 비슷비슷한 동네 다른 길들보다 어두웠다. 가로등이 여기만 고장 난 건가 싶을 만큼. 상혁은 자기 동네였다면 구청 민원이라도 넣어 봤을 거라고 중얼거리며 고양이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 소리가.. 좀 특이하네’ 


이제 몇 시간만 지나면 징크스를 깬 안전한 날이었다며 불운도 피한 남자 된다. 하지만 고시원으로 옮길 만큼 사정이 나빠지기 전까지 고양이가 유일한 위로였던 상혁이었다. 그마저도 어려워지자 딱 하나 남은 대학 친구에게 부탁해 입양해 줄 사람을 어렵게 소개받아 보낸 녀석. 그 녀석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일까. 게다가 우는 고양이 소리가 꽤나 이상했다. 새끼고양이인지 아픈 건지 보통의 고양이들의 소리가 아닌 뭔가 상혁을 잡아끄는 그런 부분이 있었다.


‘어디가 아픈 건가?’  


징크스의 복선일 가능성도 알고 있으니 어떤 상황이 와도 재빠른 대응이 가능하리라 상혁은 애써서 괜찮다 다짐을 하며 발길을 옮겼다. 어느 건물 뒤편으로 조심스레 돌고 돌아 어두운 바닥 어디쯤을 살피며 고양이 소리가 거의 가까워졌을 때였다. 


“쾅”


윽!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눈앞이 환한 전기가 들어왔다 나간 느낌이었다. 발을 들여놓자마자 건물 뒤편에 놓여있던 무언가에 정면으로 부딪히고야 만 것이었다.


‘크아.. 그럼 그렇지 그 꿈’  


상혁의 코에선 뜨뜻한 액체가 미끄러지듯 내려오고 있었다. 안면 쪽 게다가 코를 정면으로 부딪히다니. 통증 때문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면서도 평소 얼굴에서 봐줄 곳이라곤 코가 전부라고 생각해 온 상혁은 이제 그것마저 저 바닥으로 뭉개져 버린 건 아닌가 걱정됐다. 


왼쪽엔 휴대전화 오른쪽엔 조그만 지갑이 전부. 휴지 한 장이 없는 상혁은 얼굴 앞면을 강타한 통증이 걱정되는 게 아니라 고시원까지 걸어가야 하는 이 쪽팔린 상황을 타게 할 방법이 없어 난감했다. 다만 가로등이 꺼져 어둡다는 게 이젠 위로가 될 뿐이었다.


“ 괜찮아요? 얼굴을 부딪쳤나 봐요. 어..? 이거 묶어서 위로 올려둔 건데.. 어떻게 된 거지?”  


감싸 쥔 코의 통증이 간신히 지나갈 즈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났던 모양이다.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얼굴을 감싸고 있던 상혁은 순간 코가 아픈 것 보다도 이런 몰골을 모르는 누군가에게 보여야 하는 게 더 싫었다. 그러나 모른 채 지나가길 바라는 상혁의 바람과 달리 그녀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괜찮은지 계속 묻는다. 


“ 피가 꽤 나네요. 잠깐 상태를 봐야 할 것 같은데.. 들어오세요”

“.. 전 괜찮습니다. ” 


손사레를 치느라 얼떨결에 손을 떼고 말하는 상혁의 두 콧구멍에서 붉은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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