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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YODA Sep 19. 2024

복. 덕. 방


‘ 이런 곳에 카페가 있었나?’


떠 밀리듯 가게 안으로 들어온 상혁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고풍스럽고 이국적인 옛날 영화 속으로 순간 이동한 것 같았다. 당황한 그는 멍한 상태로 빙 둘러보기 바빴다.


자잘한 꽃무늬가 그려진 오렌지색 벽면 한 켠에는 공들여 제작한 진열장들이 있고 알록달록한 찻잔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왼쪽 벽면 모퉁이에는 화분들 마다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인 식물들이 그득 자리 잡고 푸르다 못해 진한 청록에 가까운 색을 띠고 있다. 맞은편에는 커다란 검은 피아노가 마치 무게 중심을 잡듯 서 있고 중앙의 나무 바닥 위로 진한 남색과 흰색 패턴이 그려진 널찍한 카펫이 펼쳐져 있었다. 그 위로 진녹색의 포근한 벨벳의 소파들과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는 테이블이 함께 있었다. 소파 위의 쿠션들에도 식물과 꽃이 한껏 수놓아져 있었다. 공간 곳곳에는 노란색의 독특한 조명들이 켜져 있었는데 걸음을 디딜 때마다 작은 소리가 나는 오래된 마룻바닥이었다. 따뜻한 간질거리는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 같아 상혁은 약하게 헛기침을 했다.


" 흠흠.."


“우선 이걸로 닦아요. 아프겠다.… 뼈는 괜찮겠지?” 


그가 정신을 차린 건 눈앞에서 흔들리는 냅킨을 발견하고 나서였다. 냅킨을 냉큼 받아 서둘러 코를 막은 상혁은 왠지 모를 쪽팔림에 얼굴도 보는 둥 마는 둥 대충 인사 후 돌아가려 던 참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다시 고양이 소리가 났다. 


‘ 앗 아까 그 고양이 울음소리다’ 


“ 요 녀석, 오늘 기분이 좋은 거야? 손님이 왔으니까 잠깐만 기다려.” 


주인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피아노 옆으로 가더니 상혁의 코피를 낸 주범(?)인 그 고양이를 안아 올렸다. 귀 끝에서부터 꼬리 끝까지 완벽하게 검은 고양이다. 우는 소리가 아까 들었던 것처럼 여느 고양이들과는 달리 특이하다. 무언가 끝을 끄는 느낌.


상혁이 아직 지혈이 덜 된 콧구멍으로 냅킨들을 넣으며 물었다. 


“고양이 우는 소리가 좀 달라요.  어디가 아픈가요?” 


“소리가 들려요? 신기하네. 이 녀석은 좀 특별해서 보통은 우는 소리를 못 듣는데.. 흐음. 이것도 인연인데 차나 한 잔 하고 가요. 고담이에요.”


그녀는 약간 놀란 듯하더니 상혁이 차를 마시겠다는 동의도 하기 전 고양이를 상혁에게 안겨주고 총총 사라졌다. 고양이가 자신을 낯설어할 걸 예상한 상혁이 팔을 조금 떨어뜨려 안았는데 녀석은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이 마냥 상혁의 품을 파고들었다. 


‘고담.. 고담이라고.’ 


온통 윤기 나는 검은 털의 따뜻한 생물을 안고 있으려니 방금 전까지 코피로 인한 쪽팔림은 온데간데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고양이란 생물은 참.. 우리 둘레도 잘 지내고 있어야 할 텐데.. 한 손으론 코에서 밀려 나오려는 냅킨을 꾹 눌러 넣으며 한 손으론 고담이를 안고 있는 상혁은 뭔가 녹아내리듯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달그락’


“향이 좋은 홍차예요. 놀랐을 텐데 따뜻한 게 도움이 될 거예요” 


“고맙습니다” 


상혁은 중앙에 있는 벨벳 소파로 안내되어 앉았다. 곧이어 찻잔을 든 뒤에야 이 공간의 주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저 가게 주인아주머니일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생각해 보니 목소리는 처음부터 젊었다. 


그녀는 목부분이 살짝 파인 진녹색의 간결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손목과 치마 밑단에 검은 레이스가 간간이 나와 있어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진한 검은 머리칼색과 어울렸다. 게다가 탈색한 건지 옅은 하얀색 브리지가 들어가 있었다. 이 동네를 샅샅이 돌아다닌 건 아니었지만 이런 분위기의 사람을 만나기란 흔한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보기 드문 스타일을 가진 건 분명했다.


뒤로 묶어 단아한 느낌이었지만 상혁은 어딘지 모르게 주인장이 어느 영화 속 마녀를 떠올리는 느낌이었다. 상혁은 잠깐이지만 지금 마녀의 소굴에 잡혀와 있는 어떤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거라는 착각이 들었다. 


" 이런 곳에 카페가 있는 줄 몰랐어요. 내부가 무척 멋지네요”


멍하니 앞의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 속에 있던 상혁은 화들짝 현실로 돌아와 대답했다. 자신도 모르게 호기심 어린 눈으로 상대를 보고 있었다는 걸 깨닫자 왠지 머쓱 해졌기 때문이었다. 급하게 찻잔을 한 모금 끌어당겨 넘기자 남아있던 코피가 씻겨서 약간은 비릿한 느낌을 줬지만 이내 향긋함으로 바뀌었다. 


" 카페는 아니고 복덕방이에요. 복. 덕. 방"

“ 아.. 부동산 사무실이군요"

" 부동산 중개도 해주고 때론 그 보다 더 중요한 것도 알아봐 줘요. 

  사람마다 갖고 있는 복과 덕을 읽어주는 일이죠" 


“ 복과 덕이요?” 


상혁은 독특한 아우라의 주인장이 다시금 복과 덕 같은 예스러운 단어들을 말하자 순간 엉뚱한 곳으로 생각이 돌기 시작했다. 복과 덕이라고 그럼 이건 혹시? 길 가다가 자주 붙잡히곤 했던 그 질문. ‘도를 아세요?’ 혹은 ‘인생사 사주팔자에 달렸다’ 이런 건가.. 그럼 여긴 신종 점집?!


모르는 타인이 말을 걸 때 혹은 친절하게 대해줄 때 결론은 하나였다. 더군다나 자신에게 미인이 말을 걸다니. 부동산을 가장한 혹은 부동산과 겸업 중인 신종 유행하는 점집이라면 굿이나 부적이라도 하나 해야 한다고 할지 모를 일이다. 자신처럼 길 가다가 아무것에나 쿵쿵 부딪히는 재수 없는 놈은 액땜이 필요하다고 차 한잔으로 붙잡아 묶어 두는 건가? 잠깐 사이지만 상혁의 머릿속은 점집과 점집 사기사건에 대한 꽤 많은 뉴스 에피소드로 채워졌다. 아니나 다를까 주인장은 벌써 서랍을 열어 무언가를 펼쳐놓고 있었다.  


아 어쩐다.. 마침 녀석이 무릎에서 잠들어버려서 갑자기 일어나면 고담이가 깜짝 놀랄 참이다. 거절을 어떻게 해야 자연스러울지 핑계를 찾는 사이 테이블에 무언가를 올려놓은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 여기 있는 카드를 마음속으로 선택한 후에 3장을 뽑는 거예요. 편안하게 자신이 고민 중인 문제를 생각하면서 뽑으면 됩니다. 나머지 두장은 제가 함께 뽑아요.’ 


“ 죄송합니다만, 저는 점 같은 건 안 봐서요.”


“ 음.. 이건 그림카드 뽑기 같은 거예요. 보통은 복덕방에 오는 손님들이 부탁할 때만 봐주곤 했는데 재미로 보는 거죠. 다들 인생살이 궁금해하잖아요. 게다가 오늘은 본의 아니게 저희 집 물건 때문에 낭패를 보신 거니 제가 흥미가 생겨서요. 혹시 알아요, 인생에 대한 힌트를 얻게 될지도.”


“ 인생의 힌트라면..? ”


인생의 힌트를 읽어준다는 부드러운 주인장의 그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이제는 더 물러날 곳도 없을 것 같은 자신의 상황에 쌍코피까지 터져버린 날이어서였을까 주저하던 상혁의 손이 카드 위로 향했다. 


“ 음… 지금껏 마음이 많이 돌아다녔군요. 그리고 여전히 그렇고요.”

“ 네? 제가요..?”


3개의 카드를 뽑고 이후에 주인장이 2개의 카드를 더 뽑아서 5장의 카드가 되었다. 알록달록하기도 하고 독특하기도 한 문양과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타로카드라는 거군. 예전에 상혁의 같은 과 여자애들이 한 번씩 보러 간다고 이야기했던 그것이다. 정체를 이제야 경험해 본다는 생각이든 상혁은 내심 신기했다. 하지만 그림을 보고 상대방의 무언가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건 말도 안 되는 난센스라고 생각 중이었다.


“ 떠돌았다는 게 유독 이사를 많이 했다거나 이동을 했다는 것보다는 대체로 마음을 자신에게 두지는 못했다는 느낌이에요. 그러니까 사람관계에서도 어떤 일에도 혹은 삶에도 깊은 애정을 느끼지는 못해요. 그래도 그때그때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서는 몰입하는 편인데 주제가 바뀌면 떠나죠. 오래도록 정착해서 하고 싶은 일도 미련도 아직까지는 없어 보여요. 아.. 다른 주제에는 바꿔가며 몰두하고 자신에게서는 떠나 있네요." 


“ 아.. 그런 게 카드에 나와 있나요??” 


눈이 살짝 커진 상혁이 물었다. 내심 그녀의 말은 놀라웠다. 오늘 아침만 해도 상혁은 그다지 미련도 의미도 없는 이런 삶을 왜 계속해야 하는지 이유를 찾아보느라 노력 중이었으니까. 치킨을 먹기 위해서?라는 자조적인 냉소와 함께 말이다. 그런데 이런 그림 카드만 들여다 보고 사람마음을 알 수 있다고? 역시 이쪽 개통의 사람들은 뭔가 아는 척 떠보는 것이 특기인지도 모른다며 상혁은 경계했지만 이야기에 빠져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이 그림들은 상징 같은 거예요. 일종의 심리상담 같은 거라고도 볼 수 있는데 타로든 점이든 심리학이든 장르불문 그 사람이 선택해 온 길의 결과인 현재를 읽어주고 그 방향성을 보는 게 시작이니까요. 용어를 좀 달리하자면 한 개인이 속해있는 현 양자장의 상태를 본다고 할 수 있어요. 사람이 태어나하는 수많은 선택들에는 어떤 패턴이 있는데 그 결과인 현재를 통해서 과거와 미래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으니까요.” 


“.. 어렵네요” 


“ 음.. 그렇죠 보통 이쪽 분야가 아닌 사람들에겐 어려워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수레바퀴라.. “


그녀는 이런 반응에 익숙하다는 듯 다음을 읽어갔다. 


“ 곧 변화가 찾아오겠어요. 이번에도 자발적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다시 변화의 수레바퀴가 돌고 있으니까. 이 카드는 보는 관점이 중요해요. 이번 변화가 왔을 때 곰곰이 잘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어요. 기존의 관점으로 바라볼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선택할지 말이죠. 특히 이번에는요.” 


이후로도 복덕방 주인은 알쏭달쏭한 말들을 해 나갔다. 무언가 자신을 들킨 듯한 느낌이었던 상혁은 또다시 변화의 수레바퀴가 오고 있다는 해석이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요 몇 년 사이 어떤 변화가 왔다 하면 늘 더 나락으로 그리고 그다음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생 변화의 수레바퀴가 좋았던 건 아직은 순진했던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였으니까. 


이번에도 그 수레바퀴인가 뭔가가 온다면 자신이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인생의 힌트를 얻게 될 거라더니 인생의 불운을 상혁에게 경고하는 것 같았다. 적어도 상혁이 듣기에는 그랬다. 


마른 코피를 씻어내며 세수를 마치고 나온 상혁이 고시원 침대에 몸을 누이며 중얼거렸다. 


“ 휴.. 힌트라니 더 나빠지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복권이라도 돼서 인생이 확 바뀐다면 뭐… 그건 환영이지만. 대환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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