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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YODA Sep 19. 2024

수레바퀴




“ G4 섹션 김상혁 씨 이쪽 물류팀 사무실로 잠시 와주세요”


호출을 받고 일을 잠시 동료에게 부탁한 뒤 찾아간 사무실은 밖에서부터 왠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미 사무실엔 몇 명이 불려 와 있는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다들 지금.. 화장실도 번갈아 가야 할 만큼 바쁜 시간에 여러 명을 이렇게 한꺼번에 부르다니. 작업 꼬이겠는데..’


더 많은 물량이 컨베이어 벨트로 쏟아져 올라올 거라는 알람이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출받은 상혁은 돌아가면 산더미처럼 쌓여있을 일이 걱정이었다. 다만 상혁이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저마다 이번 도난 물품은 얼마만큼의 손해다 아니다 그 이상이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는 둥 하면서 어수선해있었다. 


‘도난사고라도 발생했나 보네. 우리 팀 소속인 건가?’


지난해 도난사고 이후로 딱히 이렇다 할 큰 사건 없이 잘 지내오고 있던 물류센터에 이런 파란은 오랜만이었다. 모두들 의아해하면서 듣고 있는데 뒤늦게 나타난 팀장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야 상황을 말하기 시작했다.


“ 지명된 작업자 모두 모인 건가?” 


팀장에 의하면 이전 작업자와 상혁의 시간 작업자 사이에 고가의 물품이 도난당해서 현재 고객으로부터 한 번에 수십 건의 신고접수가 되어있는 상황이라며 회사 측에선 범인을 찾는 작업을 해왔다고 했다. 더군다나 피해 물품의 보상가액은 가장 최고가로 치면 몇 천만 원에 이르는데 우리 물류센터 라인 중에 고가의 휴대 전자 제품을 고객에게 보내는 루트에서 지속적으로 가로챘기 때문에 피해금액이 커졌던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잡혔다는 범인이 상혁도 같은 공범이라고 자백을 한 모양이었다.


‘두근두근’ 


상혁은 이 억울한 상황이 뭔가 익숙한 듯 낯설었다. 매번 악몽에서 당했던 그런 억울함과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당황스러운 틈으로 다른 동료들 그러니까 끈끈한 동료까지는 아니어도 서로 무게감이 맞던 그들의 차가워진 눈빛을 보고서야 상혁은 현실로 돌아왔다.


“그 사람과 잘 알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공범이라니요. 이건 말도 안 돼요. 쉬는 동선조차 겹치지 않습니다. 사람을 이렇게 쉽게 의심할 수가 있습니까. 심지어 전화번호도 모른다고요”


상혁은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억울하다고 항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팀장도 살짝 당황스러운 듯한 표정은 지었지만 현재까지의 상황이 그렇다는 것이고 상혁을 비롯해 이곳에 불려 와 있는 팀원들이 모두 그 당사자의 입에서 지목된 상황이라고 알려주는 것으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맨 처음 이름이 불린 상혁을 향해 벌레 보듯 하던 그들이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었다는 말에 놀란 토끼눈을 뜨며 황당하다는 몸짓을 지어냈다. 상혁은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어 한쪽 구석 벽에 간신히 기대고 서 있었다. 마치 며칠 전 꿈에서 보았던 장면과 비슷했지만 이번엔 다들 억울함을 성토하는 모습을 제삼자가 돼서 지켜보고 있었다.


‘거봐.. 너희들도 황당하고 억울하지. 이 느낌.. 또 시작이군..’ 


“CCTV는 확인한 건가요? 도대체 범인이 말한 한마디면 증거도 없이 억울한 사람 발목 잡아도 되는 겁니까?”


그들 중 누군가가 외치 듯 물었다. 


“ 범인이 이야기하길 철저하게 CCTV 사각지대를 파악해서 진행했다고 하더군요. 거기서 조력자가 도와줘서 물건 상하차하면서 설치지역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박스 바꿔 치기를 하는 방식으로요. 물론 진술에 대한 심증만 있지 실질적 증거는 없어요. 


그래도 범인이 자백이란 걸 한 이상 업무에 계속 배치시킬 수는 없어서 여기로 부른 겁니다. 피해금액이 워낙 커서 업무를 계속 시키기보다 일단 지명자들을 배재시키는 방식이 낫겠다고 결정한 겁니다.” 


팀장은 사람들의 말과 태도를 이미 예상한 듯했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택배상자들은 정직했지만 그걸 다루는 사람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황당해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도 팀장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아마도 상혁을 포함 이 사람들 중에 몇몇은 진짜로 범인과 공범이리라 예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 현재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회사에서 업무만 배제되는 상태로 진행할 겁니다. 만약 증거가 나온다면 형사 소송 및 손해배상 청구까지 진행될 거예요. 회사엔 오늘부로 출근하지 않아도 됩니다. 또 다른 곳으로 주거지를 이사할 경우 회사 측으로 알려주셔야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관련된 내용은 회사 측과 경찰 측에 연락을 꾸준히 받아야 하니까요”


상혁은 내내 그 광장 꿈속에서 억울했던 그 순간과 지금 이 사무실이 같은 공간 마냥 기시감이 들어 괴로웠다. 숨을 쉴 수가 없어 조여 오는 느낌. 하지만 결국 억울함만 가진 채 터덜터덜 그곳을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사무실 밖에서도 소문은 빠르게 퍼져서 다들 웅성거림 소리. 소곤거림. 모여있던 곳에서 나오자 용의자로 지목된 이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나마 말 붙였던 사람들까지도 모두 상혁을 경멸의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


하~~~ 아 


그날 이후 고시원에 틀어박혀 분노의 이불 차기를 한 게 몇 번이던가. 상혁은 덕분에 고시원 옆방에서 매번 조용하라는 신호로 벽 울림을 받아야 했다. 벽을 하나 두고 쿵쿵 두드리는 이웃 간의 그런 소통은 이제 고시원에서 익숙한 일이었다.


물류센터와 경찰에서 온 연락은 일단 범인이 자백한 내용에 문제가 있어 증거를 확보하는 중이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말했던 시간과 동선이 맞지 않는 부분이 발견되면서 상혁이 연루되어 있다는 부분은 흐지부지 되는 것 같다고 센터의 안면 있던 보조팀원이 알려 주었다. 상혁의 착실함을 알아봐 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 쳇, 사람을 갖고 노는 것도 아니고 도둑으로 몰더니 이젠 증거가 없어서 찾고 있다고’ 


그러면서도 경찰에서 한 번씩 연락을 하는 건 자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으니 상혁이 주소를 옮기지는 않았는지 도망가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상혁은 분노하다가도 어쩌다가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됐을까 하고 신세한탄 하는 걸로 마무리하는 게 이젠 더 익숙해졌다. 한 때는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대학만 나오면 어떻게든 취업이 될 거라는 자신감도 있었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이젠 더 열받을 힘도 없었다. 사다둔 컵라면과 참치캔, 김밥만 먹으며 버텼는데 이 이상은 견디기 힘들었다. 몸과 마음 무겁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지만 그나마 더 이상 그 핑계로 누워있는 것도 상혁에겐 사치였다.


‘ 다른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알아봐야 한다’ 


상혁은 산책을 핑계 삼아 좀 멀리 떨어져 있는 백반집을 찾았다. 오랜만에 몸에 쌀알과 약간의 고기 기름기, 당분을 채워 넣으니 신기하게도 몸이 좀 돌아가는 것 같았다. 역시 사람은 밥과 기름이 필요하다. 몸과 마음 모두에. 마침 돌아오던 길 그때의 골목이 눈에 띄자 상혁은 자신도 모르게 한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매번 늦은 시간에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지나치기만 하다가 낮에 그 골목에 들어서는 건 처음이었다. 


‘ 그 특이한 복덕방으로 들어가던 골목이다 ’


어느 정도 걸어가자 건물들 사이 깊숙한 뒤쪽으로 3층 짜리 낡은 상가 건물이 있었다. 1층엔 상가이고 2층부터는 주택으로 사용되는 형태인 듯했는데 상가가 딸린 건물이라 고는 해도 앞쪽의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오피스텔 건물에 반이 넘게 가리어져 있어 눈에 잘 띄진 않았다. 건물은 꽤 컸지만 오래전에 지었는지 주차할 곳도 없이 그저 덩그러니 건물만 있었다. 건물 뒤편은 동네공원으로 지정된 산이었다. 다만 1층의 복덕방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허름한 간판이 간신히 이곳이 상점이라는 걸 알려줄 뿐이었다. 


상혁은 그때 고양이 주인이 말했던 데로 부동산을 한다는 것이 맞긴 한것 같은데 이런 간판 상태라면 실제 영업을 하는 건지 누구도 들르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렇게나 눈에 띄지도 않는 위치에 낡은 부동산이라니.. 손님이 있긴 한 건가.. 이 정도쯤이었던 것 같은데... 그땐 오른쪽으로 두 번 돌았으니까. 이번엔 왼쪽으로 두 번 돌면 나오겠네. 그때 도대체 어디에 부딪혔던 건지. 쌍코피까지 터질 만큼 부딪힐 게 있나?’


당시 상황을 떠올리면서 건물 뒤편으로 가는 방향을 따라 왼쪽으로 두 번 돌자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얼굴 가까이에 검은 그림자가 확~하고 다가왔다. 그땐 어두운 밤시간에 아래만 내려다보느라 피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번엔 얼굴을 부딪히기 직전에 가까스로 멈출 수 있었다. 


‘ 앗차! 또 부딪힐 뻔.’


의도치 않게 코가 닿을 듯 말 듯 바싹 붙어있던 상혁이 한발 물러서고 나서야 그것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초록색의 두꺼운 철제 간판이었다. 낡아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초록색의.. 원래는 반짝이는 유광의 꽤 멋스러워 보였을 간판말이다. 보통은 조명이 들어오는 플라스틱 간판을 걸지 않나? 한눈에도 단단해 보여 그날 쌍코피가 났었던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 주는 듯했다. 상혁은 자신 말고도 이 높이에 간판이 계속 있다면 제2의 코피 희생자가 또 나오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은 남의 가게였다.


수문장역할을 하고 있는 듯 간판이 건물 뒤로 가는 길을 절반쯤 가리고 있어 상혁도 조심스레 그것을 피해 뒤로 돌아 들어가야 했다. 방문자를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느낌은 아니어도 궁금증이 돌았다. 코너를 두 번 돌아 안쪽으로 발길을 들여놨을 때 몇 걸음 떨어져 오래된 듯 나무 문과 구조 물들 그리고 레이스로 가려져 있는 창문이 나타났다. 뒤편에는 따로 간판은 없었지만 앞면에 있는 낡은 복덕방 이미지와는 딴 판이었다. 낡은 건 같았지만 뒤쪽은 빈티지 상점이나 카페 같은 모습이었다. 1층에 마치 두 개의 다른 가게가 있었던 듯했다. 손님이 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말이다. 나무 문은 잠겨있었고 창문 안쪽 레이스 너머는 어두웠다. 상혁이 노크를 했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아무도 없나.. 카페였다면 마음 편하게 차라도 한 잔 마시고 가면 좋을텐데.. 고담이도 보고..’


상혁은 다시 돌아온 길로 돌아가려 고개를 돌렸을 때 간판 너머로 오후 햇빛에 반사돼서 눈에 반짝거린다. 빛이 반짝이는 사이 특정한 부분만 도드라져 보이더니.. 글씨가 새겨져 있다. 몸통과 같은 페인트 색으로 되어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글씨였다.


인생 복. 덕.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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