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YODA Sep 19. 2024

계 약



주방에서는 빠른 템포에 지시를 따르듯 일사분란하게 일손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마치 컨베이어 벨트에서 자동차를 조립하듯 앞사람이 수십 개의 접시에 고기를 올리면 파프리카와 아스파라거스 등 야채를 올리는 사람이 지나가고 또 그 뒤엔 소스를 뿌리는 사람의 손이 접시들 위를 지나간다.  


주방 보조 알바는 상혁이 대학생 때 가끔 하던 알바였다. 직접 요리를 하는건 아니었지만 곁눈질로 보다 보면 어느새 완성된 음식이 만들어지는 게 신기해 가끔 멍 때리며 보곤 했었다. 멋도 모르고 맨 처음 맡았던 일은 양파를 까는 일이었는데 눈물에 콧물에 얼굴에 달린 거의 모든 구멍들에서 아우성이었다. 그런 보조일이었지만 어떨 때는 매번 미래의 불안 어딘가에 있는 자신을 현재로 불러다 주는 그 눈 따가움이 반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기계적으로 음식들이 생산되면 상혁은 그걸 서빙하기 직전의 커다란 트레이 위에 차곡차곡 쌓았다. 택배 박스는 아니지만 쌓는 건 비슷했다. 대부분의 음식이 이미 거의 조리된 상태로 손님에게 나가기 전 마지막 단계다. 


하객 군단이 피로연장에 이미 포진해 있었고 그들은 굶주려 있다. 뷔페식인 경우가 더 많지만 이곳은 서빙식이다. 다들 번뜩이는 눈빛으로 언제 음식이 나오는지 초조하게 포크까지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결혼식이 시작한 지 이제 겨우 20분인데 연회장은 이미 북적인다. 예식은 식당 앞 스크린 속에서 진행 중이다. 지금 이들이 기다리는 것은 신랑 신부가 아니다.


‘ 음식 나옵니다 ’ 


사람들은 마치 이날을 위해 단식이라도 한 듯 열심히 먹어댔다. 각 테이블 마다 상혁은 나름 익숙한 방식으로 접시를 내려놓았다. 시간이 지나 결혼식이 끝났는지 연회장 한 켠에서 화면으로만 보이던 신랑 신부가 흡사 날개 같이 화사한 옷을 갈아입고 나타났다. 다들 즐겁고 덕담을 주고받기 바빠 보인다. 여기저기서 오늘의 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가 들렸다. 좀더 일찍 내려와 자리를 잡은 한무리의 젊은 이들도 보였다.


“ 쟤가 결혼을 다하고” 

“ 그전에 사귀던 남자친구랑은 헤어진 지 얼마 안됐지?” 

“ 오늘 밥 맛이..” 

“ 요즘 누가 이렇게 큰 결혼식을 한다고.. ” 

“ 쟤네 회사에서 온 사람들인가 봐. 물이 별로임” 


상혁이 접시를 내려놓을 때 잠깐씩 멈칫하는 느낌 이외엔 그다지 거리낄 것 없다는 하객들의 이야기는 하루에 네 번이나 있는 결혼식 내내 같은 레퍼토리로 계속 됐다. 뉴스에선 온통 비혼주의에 나 홀로 산다라는데 결혼식장은 상혁에겐 딴 세상이었다. 아직도 이런 대규모의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어차피 상혁은 결혼도 다른 생활도 기대를 놓아버린지 오래니까. 


‘요즘도 누군가는 결혼을 하는구나..’


어려서부터 편안할 날 없이 싸웠던 부모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결혼이란 걸 할 거라면 그리고 혹시 새로운 어린 생명체를 낳을 거라면 신중에 신중을 기해 주길 바랄 뿐이었다. 


‘뭐 나야 돈 벌러 온 거니까. 이 사람들은 결혼하고’ 


아르바이트할 때는 힘이 났는데 집에 가려니 갑자기 상혁은 다리가 무거웠다. 역시 자본의 힘은 세다. 결혼식장의 아는 매니저에게 부탁해 받은 일이긴 했지만 역시 쉬운 일은 없다. 배달페이가 좋다고 하던 때는 이미 지나 배달일도 별로다. 일단 그냥 일자리가 있는 건 당분간 무조건 하기로 했다. 택배 박스들은 당분간 보지 않기로 했으니 말이다.


하루 일과가 끝낸 뒤 상혁은 핸드폰을 들여다봤다가 다시 놨다가 몇 번씩하고 있었다. 문자를 보낸 게 이틀 전. 아직 답장은 없다. 하긴 맞는 번호인지도 알 수 없었다. 오래전 간판에 있던 더군다나 위쪽에 묶어 올려 두었던 간판에 있던 번호라 없어진 연락처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연락이 안 갈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자 오히려 편해진 상혁은 이것저것 하루에 있던 뉴스와 댓글들이 올라오는 걸 읽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새벽녘 목이 말라 잠이 깬 상혁이 시간을 확인하려다 생소한 번호로 문자가 와있는 걸 발견했다.


‘ 그때 코피나신 분? 괜찮은가요? 며칠 가게를 비웠어요. 오후 3시 이후에 오시면 고담이 볼 수 있답니다.’ 


문자가 오자 화들짝 잠이 깬 상혁이 다짐하듯이 생각했다.


“ 그래 고담이가 잘 지내는지.. 궁금한 거야. 고담이만 보고 싶은 거라고…”





‘이걸로 계산해 주세요’ 


정기적으로 매일 나가는 아르바이트가 없어서 좀 한가로 목요일 다시 복. 덕. 방을 찾아 나섰다. 중간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 고담이 줄 간식들을 맛있는 걸로 몇 개 골라서 계산했다. 


이전에 키우던 둘레가 좋아하던 간식들이라 고담이도 아마 좋아하겠지. 상혁은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져서 오래간만에 기분이 좋아졌다. 돈 쓰는 게 이런 맛이지. 


‘ 똑, 똑, 똑’ 


일단 노크를 하고 기다리는데 꽤 시간이 지나도 응답이 없다. 좀 더 기다려보기로 하고 서있는데 달칵하고 가게의 나무문이 열린다. 


‘ 달랑’ 


나무문 위쪽에 달려있는 작은 종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울린다. 

그리고 나온 사람 그 독특한 주인장이다. 


“ 어서 오세요. 다른 손님과 대화를 마무리하느라 잠시 늦어졌어요.”

“ 그럼 밖에서 조금만 더 기다릴까요.” 

“ 괜찮아요. 마무리되었어요.” 


손님으로 보이는 여자는 선글라스와 마스크까지 하고 있어서 얼굴은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다만 상혁을 슬며시 쳐다보고 약간 경계하는 눈빛과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향수향이 나는 사람이었다. 둘은 잠깐 무어라 대화를 하는 것 같더니 손님은 이내 문을 닫고 사라졌다.


오렌지색의 벽이 여전히 따뜻한 데다 거기 있는 식물들이 마치 속삭이듯 상혁에게 말을 거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번엔 코피 흘리느라 잠시만 있던 곳 이지만 마치 오랜동안 알아왔던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게 신기했다. 보통 카페라면 멀리서 살펴볼 때는 진짜 같아도 가까이 보면 허술한 티가 나는데 여기 있는 가구들은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정성 들여 다듬어 만든 태가 났다. 지금 앉아있는 이 짙은 청록색 그린벨벳 소파만 해도 그 정성스러움과 편안함이 어디에 비 할 바가 아니었다.


‘ 그나저나 고담인 어딜 간 건가? 잠시 살펴보는 건 실례는 아니겠지. 다른 사람들도 오는 공간이니까.’


잠시 일어나 주변을 살펴보던 때 고양이 소리와 함께 부엌으로 갔던 주인장이 돌아왔다.


“ 그 때 보고 두번째네요.” 

“ 아.. 네. 낮에 오니 다른 느낌이에요. 참.. 고담이 줄 간식을 가져왔는데 줘도 될까요?” 


상혁이 이곳에 온 이유가 고양이 때문이라는 걸 좀 더 확실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안그러면 또 지난 번처럼 다른 이야기로 빠질 수 있으니까. 간식 이야기를 꺼낼 즈음 어떻게 알았는지 고담이 녀석이 다가왔다. 


“음.. 보통은 낯선 사람이 주는 간식은 잘 안 먹는데.. 보면 알겠죠?” 


둘레가 좋아하던 간식인데 고담이도 좋아할까. 간식하나 주는데 왠지 선택받듯 두근거리는 상혁이었다. 어서 먹여보고 싶은 마음에 손 위에 두자 왠지 잘 다가온다.


“ 음.. 신기하네. 다른 사람이 주는 간식은 안 먹는데. 웬일이지?”

“ 제가 예전에 기르던 고양이도 좋아하던 간식이에요. 이 쪽 세계에선 거부할 수 없는 유혹으로 통하죠” 


상혁이와 고담이를 살피던 주인장이 고담이가 간식 먹는 것을 보자 동그라진 눈을 하고 말했다. 반가운 듯 당황스러운 표정. 주인장이 자신을 흥미롭게 보는 게 긴장된 상혁은 고담이에게만 신경 쓰며 간식 주는 일에 더 집중했다. 고담이랑 장난치는 사이 주인장이 차를 내렸다. 향이 좋은 그때 그 홍차다. 


“ 차까지 마셔도 될지 모르겠어요”

“ 편안하게 드세요. 이제 코는 좀 괜찮은가요?” 

“ 네. 괜찮아요”


누군가가 안부를 물어봐 주는 게 오래간만이라 또 이런 미인이 그때 쌍코피가 나서 냅킨으로 양쪽 코를 막고 있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니 상혁은 왠지 쑥스러워졌다. 뭐라도 대화를 해야한다. 오기 전까지는 분명 고담 이만 보고 가려고 했는데 몇 마디가 오가자 그는 이젠 자신도 모르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술술 불고 있었다.


“ 그때 말씀해 주셨던 데로 변화가 있었어요. 아르바이트긴 해도 꽤 길게 일했던 물류센터에서 잘렸거든요. 제가 하지도 않은 도둑질을 했다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요. “


“ 어머.. 그런 일이..”


상혁이 이런저런 당시 상황을 간략히 이야기해 주는 동안 말없이 듣고 있던 그녀는 왠지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끄떡였다. 그녀의 눈썹이 약간 사이를 좁히더니 주의 깊게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이 상혁에게까지 느껴졌다.


“ 뭐 지금은 이런저런 다른 아르바이트도 해서 괜찮습니다. 물류회사는 이런 일이 발생하면 보통 이렇게 처리하는 줄은 처음 알았지만요. 그런 나쁜 일을 한 적은 없으니 어떻게든 해결되리라 믿어요” 


잠시 침묵이 흐르는 새에 고담이 가 첫 번째 간식을 다 먹더니 더 달라는 듯 발을 들어 상혁의 운동화에 올려놓고는 톡톡 두드린다. 두 번째 간식까지 거의 다 먹어갈 때 즈음 주인장이 한쪽 눈썹과 입꼬리를 보일 듯 말 듯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 


“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니 우리 복. 덕. 방에서 일해 볼래요?” 





이전 05화 수레바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