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아암~~~”
상혁은 연신 하품을 해대며 책상에 엎드려 뻗어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말 그대로 강행군이었다.
청소 강행군.
멋진 영화 세트장 같은 장소를 손 볼 곳이 무엇이 있겠나 했던 상혁의 예상은 계약 이틀 후 고시원에서 짐을 빼서 들어오는 순간 무너졌다. 주인장이 말한 복덕방 사무실은 그 낡은 복덕방 간판의 그러니까 이전에 그녀의 할아버지가 사용했다던 상가를 말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이미 20년쯤 전에 오픈해서 무슨 일인지 지난 10년 동안은 내내 잠가두었던 상가였다는 게 문제였다. 게다가 상가였다는 것도 모를 만큼 검은색 시트지를 붙여둬서 내부의 상태는 물론이고 상태는 말로 하기 어려울 만큼 먼지가 쌓여 있었다.
앞면 새시의 검은 시트지를 벗기고 세제로 끈적이는 끈끈이도 깨끗이 닦아내고, 어마어마한 양의 거미줄을 제거한 뒤 내부 먼지를 털어냈다. 환풍기부터 가구들까지 모두 햇빛을 소주고 탈탈 털자 먼지가 너무 많아서 이러다 천식에 걸리는 건 아닌가 싶을 만큼 기침을 해댔다. 그나마 물걸레질을 하고 반짝반짝하게 닦아내자 바닥에 숨겨져 있던 옛날 알록달록한 조그만 돌이 박혀 있는 듯 표현된 바닥재가 드러나고 네모난 칸마다 황동줄로 획이 그려진 것이 오히려 웬만한 빈티지한 독특한 느낌까지 나기 시작했다.
바닥은 그대로 닦아 광을 내고 벽면은 주인장이 추천해 준 페인트를 사다가 칠했다. 포근하면서도 깔끔한 느낌의 화이트 아이보리 색이라나. 게다가 주인장은 창고에 쌓여있던 물건들을 다 꺼내서 포진시켰다. 낡았지만 둥그런 카펫을 중앙에 깔고 그 위에 교차해서 테이블을 놓고 벽면 협탁에는 구석에서 쓸쓸히 박혀있던 화병을 가져와서 세워두었다. 쓸모없이 버려졌던 낡고 답답한 상가가 그럴싸한 공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상혁은 새 컴퓨터도 주문해서 세팅하고 인터넷에 가게 정보도 넣고 이것저것 전화도 놓고 해서 필요한 사항들 연결했다. 이제 남은 것은 대망의 간판 닦기.
“ 인생 복덕방이라. 요즘도 이런 거 고쳐 쓰는 사람이 있네요?"
간판업체 사람이 오래된 이 건물을 올려다보며 견적을 뽑기 전 한 말이다. 20년 전 그녀의 할아버지가 이 건물을 인수하면서 열었다는 1층 복덕방과 간판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하다니. 주인장은 무엇 때문인지 옛날 느낌 그대로 쓰기로 한 것이었다.
그 사람말에 의하면 낡은 간판 속 전구를 LED로 교체해 다시 쓰기보다 새 간판으로 교체하는 게 훨씬 저렴하다고 했다. 색도 바랜 20년 전 간판을 그대로 사용하려고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는 그의 말에 상혁도 공감했지만 따로 주인장에게 그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사람마다 각자의 사연이 있는 거니까.
택배물류 센터에서 연락을 받은 건 마침 청소가 끝나서 그래도 번듯한 가게가 돼 내심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을 때였다. 진짜 범인이 잡혀서 다시 출근하지 않겠냐는 간략하고 성의 없는 직원관리센터 전화였다. 앞뒤 경우가 맞지 않는 것에 열이 뻗친 상혁이 그 많던 직원들은 모두 공범으로 잡혔는지 간신히 분을 삼키며 물었을 때 관리센터 직원은 딱 한번 더 설명했다. 공범이 장물을 처리하는 동안 시간을 벌기 위해 여러 명을 마구 지목해 여러 명이 억울하게 당했다는 이야기였다. 어차피 이렇게 잡히나 누군가에게 물건을 넘기고 돈을 숨기고 잡히나 형량은 비슷할 테니까요 라며 본인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부연설명을 끝으로 전화는 마무리되었다.
청소를 마치고 만족감이 들어있던 상혁이었으니 망정이지 만약 그 엄청난 청소를 시작하기 전이라면 눈을 딱 감고 그 성의 없는 전화 한 통에도 물류센터로 다시 돌아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실 상혁이 떠나지 않기로 마음먹은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숙식제공. 물론 아침, 저녁 식사준비와 건물 1층 청소 그리고 고담이를 돌보는 것까지가 계약조건이었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상혁 입장에서는 요리하며 고양이와 사는 삶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고 할까.
게다가 상혁이 지내게 된 부동산 복덕방 왼쪽에 있는 부엌 딸린 꽤 넓은 원룸이 고시원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아늑하고 편안했다. 시간에 따라선 햇빛도 꽤 잘 들어오는 좋은 공간이었다.
상혁은 최소한 일 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기간만이라도 이곳에 있고 싶었다. 낡고 우중충한 고시원이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그런 곳에. 밝은 곳에.
다만 앞으로 남은 문제는 매출이었다.
…
아침을 만든 상혁이 접시 두 개에 따끈하고 먹음직스러운 오믈렛을 담아 나왔을 때 아직 주인장은 2층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고담 이만 배가 고프다는 듯 상혁이 나타나자마자 다가왔다.
“ 배고프지. 잠깐만”
상혁은 마트에서 장을 볼 때마다 인간들이 먹을 고기도 편안하게 담았지만 고담이 가 제일 맛있어할 것 같은 프리미엄 천연 수제 품질의 사료를 주인장 카드로 가격 상관하지 않고 담을 수 있다는 게 기뻤다. 고양이 밥이 부족하지 않게 주며 살피는 건 며칠 사이 상혁의 아침 식사 전 루틴이 됐다는 것도 좋았다. 고양이 집사의 삶.
배가 고팠는지 사료를 받자마자 야금야금 잘도 먹는 고담 이를 보며 상혁은 식사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 머리를 쓰다듬고 있자니 느긋한 주인장이 이층에서 계단을 따라 빙 둘러 내려오고 있었다.
“ 아침이다. 음 좋은 냄새~”
“ 오늘은 오믈렛이에요”
“ 오~ 나도 좋아해”
상혁은 목적어 없이 좋아한다는 말에 처음에 몇 일간은 깜짝 놀라곤 했지만 그녀가 아침 먹는 시간을 매우 좋아하는 게다가 아침을 거하게 잘 챙겨 먹는 먹깨비였다는 걸 알고부터는 이제 무덤덤해져선 정말 아침밥을 좋아하는구나 생각하곤 했다. 하긴 가게를 여유 있게 열다 보니 아점을 잘 먹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 음~~ 오늘도 맛있네.”
상혁이 아직 고담 이를 쓰다듬고 있는 사이 이유가 오믈렛을 한 입씩 먹기 시작했다. 음식을 만드는 보람이 느껴지는 반응은 먹깨비들의 공통점 인가 하고 상혁도 같이 기분 좋아졌다.
검은색 철재 계단은 주인장이 생활하는 2층 주택공간으로 이어져 있었다. 주인장 이유는 아침이면 여유 있게 내려와 응접실에서 고담이랑 잠시 놀다가 상혁이 해주는 아침을 먹고는 계단과 아치형 부엌입구 사이에 있는 서재로 들어가는데 하루 종일 무언가를 하고 있다가 저녁시간이 돼서 밥만 먹고는 이내 이층으로 올라가곤 하는 패턴이었다. 아침 먹을 땐 쌩쌩한 그녀였지만 저녁시간이 되면 온통 피곤해 보여서 밥을 보양식으로 해줘야 하나 하는 생각마저 드는 상황이 많았다.
그녀가 낮시간 동안 내내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동안. 청소와 새롭게 오픈하는 사무실 집기, 숙소의 침대와 소품 쇼핑에, 마트에서 장 보며 집안 청소 일을 하느라 신경을 쓸 시간도 여유도 없던 상혁이었다. 그런 상혁이 그녀가 하루 대 부분을 그 방에서 무얼 하는지 조금은 궁금해지기 시작한 건 이틀 전 그녀가 한 말 때문이었다.
“ 한번 더 확인하지만 서재방은 절대 접근금지야. 이건 서로를 위한 규칙 같은 거지.”
밥을 먹으면서도 그녀가 딱 부러지게 서재방에 대한 접근은 한번 더 금지하는 다짐을 받은 것이다. 안 궁금했는데 자꾸 하지 말라고 하니까 점점 궁금해지는 그런 것.
사장인 이유는 아침이나 저녁을 먹을 때 간간히 이야기를 해주곤 했는데 복덕방에 대한 이야기가 주요 주제가 되곤 했다. 10년 전 주인장의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복덕방일은 잠시 멈췄다가 1년 전부터 다시 시작했다는 내용과 직원을 찾았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복덕방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첨부 설명이었다. 그리고 서재방은 접근금지라는 확고한 규칙.
오믈렛을 거의 다 먹고 오렌지 주스를 마실 때 즈음 이유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 조만간 손님들이 올 거야. 부동산 일만 묻는 게 아니라 자신에 대해 궁금해하는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곳 응접실로 안내해 주면 돼. 뭐 일종의 부동산 서비스와 함께하는 인생상담이라고 할까? 아님 인생상담과 함께하는 부동산 서비스? 뭐든.. 아참? 그리고 이젠 내가 누나니까 괜찮다면 말 편하게 할게.”
상혁이 온 이후로 반말 쓰길래 비슷하거나 약간 더 먹은 나이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아예 말을 편하게 하겠다니.. 자신이야 이력서를 내서 모든 걸(?) 알려줬다지만 주인장은 나이도 알려주지 않은 상태였다.
계약서 작성 때까진 분명 친절한 사장님이었다가 계약서 작성하고 나니 이젠 누나로 바뀐 것이다. 모든 걸 당연하게 받아들일 상혁은 아니었지만 누나라는 말이 자동으로 먼저 나왔다. 이것이 자본주의 을의 비애란 말인가. 조금 발끈한 상혁이 물었다.
“ 누나는 몇 살인데요?”
“ 음. 그건 비밀. 하지만 꽤 나이 차이가 나지. 누나인 건 확실해. 후후. ”
뜻을 알아들은 것인지 마침 옆에 같이 아침 먹던 고담이가 맞장구치듯이 야옹야옹 거리며 볼을 그녀의 다리에 비벼댔다.
…
아침 일을 떠올리며 상념에 멍하니 젖었던 상혁이 머리를 저었다.
‘그래 그건 알겠고.. 아무리 동안이래도 나이가 많다니까.. 믿기진 않지만 믿어 주기로 하고. 다만 손님이 없는 건 더 이상 참아줄 수가 없군.’
매출은 곧 인센티브다. 상혁은 좋아진 숙소와 매일 보는 고담이와 식물들에 얼빠진 듯 덩그러니 편안한 듯 멍 때리고 앉아있다가도 복덕방에 휭 하니 손님 한 명 없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운 상혁이었다.
[ 인생의 힌트를 드려요~ ]
[ 복덕방에서 인생상담도 함께~]
상혁은 이틀 전 인터넷 상점 소개란에 고민하다 이렇게 두 가지를 메시지로 올렸는데 뭐라도 어떻게든 매출을 올려야겠다는데 생각이 닿아서였다. 대로변과 바로 마주 보는 곳의 목 좋은 상가가 아닌 데다 이렇게 상점 소개를 적어 두는 게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알 수가 없어 뭘 더 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며칠이나 청소만 반복하고 나자 슬슬 현타가 오고 있었다.
어쨌든 주인장에게 전해 들은 이 복덕방의 의미는 두 가지였다. 부동산 복덕방과 인생상담을 복과 덕을 읽어준다는 주인장의 복. 덕. 방 이렇게 말이다. 어떤 상담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어느 곳이나 사람 만나는 곳은 자기들 이야기를 하기 마련이었다. 하물며 집을 얻으러 다니거나 사무실을 얻으러 다닐 때 고민하고 있는 부분을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떤 곳을 추천해 줄 수 있을지부터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거니까.
상혁은 어떤 콘셉트로 부동산을 광고해 볼지 잘은 모르지만 괜찮은 서비스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그래도 이렇게 계속 매일 청소만 하고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 하면 매출을 올릴 것인지 인*타 마케팅이라도 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역시 그 정도로는 밥만 해 먹다가 일 년이 지나가는 건 아닌지 머리를 살짝 쥐어짜려던 찰나.. 새시문이 드르륵하며 조심스럽게 열렸다. 본능적으로 자세를 정비해서 문 쪽을 돌아보니 누군가가 들어온다.
“ 계세요?”
카키색의 작업복 같은 항공기 정비할 때 입을 만한 옷에 2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쇼트커트의 남자, 아니 여자였다. 전체적으로 귀여운 얼굴인데 대조적으로 통통하다 못해 어딘가 부어있다고 할 만한 느낌의 실루엣을 가진 중성적인 스타일의 여성. 사실 상혁은 처음 3초간은 동글동글 귀여운 남자 손님인가 보다 착각할 정도였는데 좀 더 지나서야 여자손님이란 걸 알아챘다. 그녀는 왠지 모르게 경계하는 눈빛과 얕은 숨을 쉬며 들어왔다
“ 어서 오세요 ”
상혁은 보통 때 보다 미소를 띠며 손님을 맞았다.
‘ 첫 손님이다. 첫 손님. 잘하자.. 친절. 친절’
....
“ 여긴.. 완전히 다른 곳이네요.”
그들은 복덕방과 복.덕.방을 연결하는 벽 중간의 문을 열고 응접실에 들어섰다. 아니나 다를까 손님에게서 상혁이 처음 왔을 때 보인 것과 비슷한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 알지. 알지. 그런 느낌~’
우중충 했던 그녀의 얼굴에 잠시 화색이 돌았다. 처음 들어서면서부터 경계심이 높고 얕은 숨만 쉬던 그녀가 놀라며 그 공간의 하나하나를 살펴볼 때에는 눈이 빛났다. 가구들이나 소품들이 주는 느낌에 더해져서 무언가 그 공간의 주인과 비슷하게 내뿜어지는 편안함이 공간을 처음 들어온 사람에게 그대로 전달된 걸까.
“이쪽으로 앉으시면 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 나도 저런 표정이었을까’
손님을 안내하면서 새삼 자신이 코피가 난 채로 이곳에 처음 왔던 때 어떤 표정이었을지 궁금해지는 상혁이었다. 손님을 초록 벨벳 소파에 안내하고는 서재 문을 노크했다.
“ 사장님, 손님이 오셨어요.”
상혁은 드디어 첫 손님이라는 두근거림과 이런 일을 다해본다는 생소함을 진지함으로 덮으려 애써 속도를 조절해 나갔다. 그리고는 그 옆으로 뚫려 있는 작은 통로로 발을 부드럽게 쓸며 부엌으로 가 전기 주전자에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부동산 소개글에 인생을 상담해 준다는 내용을 보고 찾아오는 사람이 진짜 있는 것도 신기했지만 막상 손님이 오고 보니 무엇부터 해야 할지 어수선한 상혁이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여지없이 고양이 소리도 들리더니 무언가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 같았다. 마침 주전자에 물이 끓자 상혁이 조심스럽게 홍차와 카페인이 없는 차 두 잔을 준비해 나갔다.
“ 붉은색은 홍차, 노란색은 국화차예요.’’
“ 고마워요. 상혁 씨는 이야기가 마무리되면 다시 이쪽으로 와주겠어요?”
상혁은 짐짓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나섰다. 주인장이 뭘 어떻게 진행하는 건지는 몰라도 남에게 자신의 이야기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처음 복덕방으로 들어오던 표정으로 되돌아가 있는 손님의 얼굴을 보자 왠지 심각한 주제가 될 것 같아 상혁의 마음도 약간은 무거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복덕방으로 돌아온 상혁은 근방에서 혼자 사는 여성에게 좋은 물건들을 추려 놓을 심산이다. 복.덕.방으로 가기 전 손님이 원하는 대로 큰길 근처, 지하철역과 가까워 안심인 집이 어떤 게 있으려나.
…
자리에 앉은 이유는 테이블의 맨 오른쪽에 있는 서랍에서 작은 갈색 봉투를 꺼내 들었다. 그리곤 우아한 손동작으로 봉투를 열어 작은 엽서형 카드를 꺼내더니 팬과 함께 손님 쪽으로 읽기 좋도록 놓아주었다.
" 비밀유지 서약 카드 같은 거예요. 다른 내용은 없고요"
[ 도움을 받아 스스로를 알아간다. 나 스스로를 허락한다. ]
오늘의 명언 같이 알쏭달쏭한 짧은 문구가 카드에 있었는데 그녀는 크게 신경 쓰이는 내용이 없다는 걸 확인하자 간단히 비어있는 항목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 … 음… 저기.. 이런 것도 물어봐도 될지..”
주인장 이유가 내밀었던 작은 카드에 서명을 하자마자 그녀는 좀 더 용기를 내보기로 한 건지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 그럼요. 자신에 대해서 궁금한 거면 됩니다. 집 나간 고양이를 찾는 것부터 인생의 진지한 부분까지 모든 게 이곳에선 일상이에요.”
고양이 찾기를 문의할 수도 있다는 말에 안심해서인지 그녀는 작은 숨을 내 쉬고는 머뭇거리며 작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사실…. 음… 제 오랜 숙제 같은 거라고 할 수 있는 문제예요. 그게 먹는 것도 없이 살이 쪄요. 사실 아주 어릴 때를 제외하고 거의 평생 그래왔어요. 안 해본 게 거의 없을 정도예요. 이젠 정도가 심해지면서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고 느낄 만큼.. 아니 그냥 악순환에 빠진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에요.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게 소식도 해보고 단식도 하고 했는데 그러다 몸이 더 힘들어서 그만두고 이젠 하루에 고구마 한 개를 3조각으로 나눠서 규칙적으로 먹고 있어요. 그래도 점점 더 부어버리듯 그렇게 되고 있는데 평생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건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 힘들겠어요. 맛있고 즐겁게 먹지도 못하는데 몸이 다르게 반응해서.. “
주인장 이유가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음.. 다이어트를 도와준다는 곳도 몇 군데 찾아가 보고 거기서 돈도 많이 썼어요. 병원이든 사설업체이든 거기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들어가면 잠깐, 그러니까 일시적으로 좋아지는 듯하다가 다시 1.5배 정도는 더 찌는데.. 그렇게 반복하길 계속하다가 결국 다 포기하고 마구 먹게 되죠. 그런데 신기한 게 마구 먹을 때는 더 심하게 찌지는 않고 그 상태로 유지는 돼요. 이게 무슨 조화인지.. 예전에 여행 갔을 때만 제외하고는 평생 살이 쪄서 변화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때 잠깐이 제 평생 가장 날씬한 시간이었던 거죠. ”
…
‘이건 무슨 소리지? 방음이 전혀 안 되는 거였나?’
상혁은 자리로 돌아와 컴퓨터를 보려다가 주인장 목소리까지 나는 걸 듣곤 안 되겠다 싶어 어디 통로라도 있는 건가 하고 점검하고 있었다. 마치 이야기를 바로 옆에서 듣는 것처럼 대화가 다 들리는 게 당황스러워서였다. 그런데 정작 벽에 귀를 대보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실은 부동산 소개만 보고 찾아온 건 아니에요. 제 친구 엄마가 이야기해 줬어요. 예전에 젊었을 때 여기서 이런저런 도움을 받았었다고 그런데 신기하게 그 복덕방이 아직 있더라고요. 오래전이라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인터넷에서 이 동네 검색했더니 그런 비슷한 이름은 이곳밖에 없었고 또 인생상담이라는 말도 있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오게 됐어요.
“ 그랬군요. 잘 오셨어요. 숨겨진 이유를 찾는 게 제 일이니까요 “
‘그런 거였구나’
어떤 통로로 대화가 들려오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생생하게 들리는 대화 속에서 첫 손님이 지인소개와 인터넷에 자신이 올린 상점소개가 연결되어 온 것을 안 상혁은 자신도 모르게 수긍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다가 문득 이렇게 남 이야기를 몰래 듣고 있는 게 왠지 아닌 것 같아 방음이 전혀 안 되는 이유는 나중에 찾기로 하고 복덕방을 나섰다.
‘ 일단 근처 카페에라도 나가 있어야겠다’
…
“ 중간중간 손님에 대해 물어보게 될 텐데 편안하게 생각하셔도 됩니다. 무엇보다 손님 자신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될 거예요.”
“ 전 더 무서울 것도 피할 것도 없어요. 움직이는게 그리고 생활 자체가 힘들어요. 제 몸에 지쳤거든요. 직장도 이런 무거워진 거구로 간당간당 힘겹게 버티며 다니는 중이고요. 살만 빠진다면 뭐 더 바랄 게 없어요.”
“ 조금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어릴 적 이야기부터 해볼게요. 이건 손님을 이해하는 첫 단추랑 비슷하답니다”
“ 음… 별로 말할 건 없는 것 같아요….”
“ 생각나는 일부분이나 아니면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야기해도 됩니다. 떠오르는 부분이 생기면요. 억지로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제는 안내만 할 수 있어요.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은 손님이세요”
“ …”
그녀는 방금 무엇이든 피하지 않을 거라고 대답했었다. 그런데 바로 첫 질문부터 회피해야만 했던 그리고 여전히 도망가고 싶은 주제의 질문이었다. 부모님들. 가정사.
살이 빠지지 않는 것과 그것이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이젠 자신이 하다 하다 이상한 곳으로 흘러들어오게 된 건 아닌가 하는 후회와 실망이 이야기를 시작하고 불과 몇 초 만에 몰려드는 것 같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려드는 실망스러운 감정을 그나마 추스를 수 있었던 건 이곳을 소개해 준 친구의 엄마 말이 떠올라서였다.
“ 이상한 걸 질문하곤 했어. 별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걸. 그리고는 뭐랄까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나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데 그걸 듣다 보면 이해가 또 되는 거야. 여태 내가 어려웠던 이유가. 그게 도움이 많이 됐지.”
그러고 보니 그녀가 여태껏 찾아갔던 곳 들은 자신에 대해서 그다지 물어보지 않았었다. 다만 그들만의 답을 바로 내놓곤 했었다.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등록했을 때는 탄수화물만 먹어서 살이 찌는 거라며 밥을 먹을 때마다 그들이 개발한 신물질(?)을 또는 무탄수의 식단을 먹어야 한다고 했고 병원에 가면 인슐린 분비나 호르몬의 불균형을 말했다.
어떤 다른 사람이 와도 그들의 대답은 같은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효과만 있다면 상관없었다. 게다가 틀린 말도 아니었다. 다만 그런 프로그램이 끝나고 시간이 조금 흐르면 곧 원래대로 돌아가는 자신이 너무 싫었다는 게 문제였다.
1초도 기다릴 필요가 없이 확신에 차 대답해 주던 그들은 그녀가 실패했을 때에도 전혀 망설임 없이 자신들의 문제가 아니라 고객의 문제며 결론지었다.
그렇게 꽤 여러 차례 반복되자 원인을 알 수는 없지만 무언가 더 깊은 곳에 뿌리가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언젠가부터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건 그냥 많은 결과적으로 불용해 보이는 노력들 뒤에 스스로 깨우친 느낌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불현듯 여기 이 낡은 복덕방 주인이 이야기하는 게 그동안 자신이 찾았던 더 깊은 이유인 것 같다는 느낌이 스르륵하고 지나갔다. 그러자 지나간 가정사쯤 말한다고 요즘 세상에 뭐가 손해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그녀에겐 더 물러설 곳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