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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YODA Sep 19. 2024

첫 손님 2 - 내가 나를 보는 시선



“ 부모님은 제가 7살때 즈음 이혼하셨어요. 아빠가 다른 여자랑 살림을 차려 나갔고 저랑 엄마랑 같이 살았는데 뭐 그럭저럭 잘 지냈어요. 좀 외롭긴 했지만요. 엄마가 가게를 열어 저를 키워줬고 풍족하진 않았어도 서로 의지하며 살았죠.” 


“ 그랬군요. 이혼 후에 특별히 더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요? 경제적인 부분과는 별개로요” 


“ 음.. 뭐 특별한 건 없었어요. 달라진 거라고 해봐야 당연한 것들이니까요. 그땐 제가 어렸을 때니까 어떤 건 선명하게 기억하고 어떤 건 그렇지 못해요. 엄마가 제일 힘들어할 때였으니까.. 대부분은 그 두 사람에 대한 원망과 저주를 하며 지내던 때였어요. 저도 매일 울었던 것 같아요. 엄마를 붙잡고. 어릴 때이기도 하고 진심으로 우리 엄마가 불쌍했어요. 그래서 떠난 아빠와 그 여자를 미워하며 똘똘 뭉친 끈끈한 동료예요.”


“ 그랬군요.”


“.. 차라리 잘 된 것도 있었어요. 이혼 전에는 매일매일이 싸움의 연속이었는데, 부모님이 헤어진 후엔 적어도 싸우는 않았으니까요. 아니.. 못했다고 하는게 맞죠.. 여튼 어린 마음에 사이가 좋아져서 가족 셋이 같이 살면 정말 좋겠다 싶다가도 다시 만나면 또 싸울까 봐 걱정부터 됐거든요. 싸움은 늘 엄마가 울거나 힘들어하는 걸로 끝나서 아빠가 집을 나가 한참 있다가 왔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엄마를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늘 잘하려고 하면서 지냈죠. 엄마한테 고마웠거든요. 절 버리지 않았다는 게.. 엄마 마음을 들어주고 이해해 주고.. 저에겐 엄마만 있고 엄마에게도 저만 있는 상태였어요. 


사랑 그런 것들 다 부질없는 거라고 쓸모없는 것들이라고.. 다 부서져 버려야 알지 같은 말도 자주 하지만 그래도 저만큼은 엄마가 사랑으로 키워 주셨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듣고 있던 주인장이 말했다. 


“ 그럼 지금도 어머님과 함께 살고 계신가요?” 


“ 음.. 다니고 있는 회사가 사무실을 이전하는 바람에 저도 집을 구하려고요. 엄마는 그런 직장 다니지 말라고 하는데 전 새로운 곳에서 독립해 살아보고 싶어요. 일단은 잠깐 근처 친구네 머물고 있어요.” 


“ 딱 한번 살이 찌지 않고 몸이 부어 있지도 않았다고 했는데 그때는 특별히 사연이 있는 건가요?” 


주인장의 질문에 그녀는 기억을 더듬고 있는 듯 잠시 먼 곳을 바라봤다.


“ 아.. 그때 엄마랑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갔던 적이 있어요. 거기에 외삼촌이 건설회사에 근무하시는데 이집트에 해외지원 파견을 나가서 한국으로 들어오시기 6개월 전 이었을 거예요. 한국에 아예 들어오기 전에 겸사겸사 외삼촌 가족이 아직 있을 때 여행이라도 하고 가라고 해서 꽤 오래 방문했었거든요. ”  


이야기를 듣고 있는 주인장의 눈빛에 흥미롭다는 반짝였다.


“음.. 그런데 이런 어린 시절이나 여행한 이야기가 살이 빠지지 않는 것과 관계가 있나요? ”


“ 살이 빠지는 않는 이유는 생각보다 정말 다양해요. 간단한 먹는 양 사용하는 양 차이일 수도 있지만 사람마다 이유가 천차만별인 아주 특별한 주제랍니다. 특히 손님의 경우엔 몸에 보이지 않게 프로그래밍된 부분이 그렇게 반응하게 하는 것 같아요.” 


“ 제 몸에 프로그래밍이 되어있다고요..?” 


" 지금부터는 조금 특이하거나 황당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어요. 손님들의 고민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 같은 거죠. 듣다보면 많은 경우 화가 나거나 자신도 모르게 억눌린 무언가가 올라올 수 있어요. 그래서 손님의 허락이 꼭 있어야 시작할 수 있죠. 손님은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도 들어볼 의향이 있나요?" 


황당하다는 말 때문인지 그녀는 긴장한 듯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자포자기 한듯 숨을 한 번 크게 쉬더니 말을 이었다. 


" 후.. 네.. 뭐.." 


손님이 허락하자 이유는 본격적으로 상대방을 쳐다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 사람들이 보통은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모두 무의식 내에 자신만의 세팅 즉, 프로그램을 갖고 있어요. 성격, 생각의 패턴 같은 거에요. 여러 가지 정황을 조합해 살이 빠지지 않는 이유를 추론해 보면 어머니와 손님의 합의로 생긴 상황으로 보여요. 정확히는 분노에 차 있던 엄마와 어렸을 적의 손님간의 합의이죠. 


손님의 어머니는 자신의 어린 딸이 성숙한 여성으로 자라는 걸 바라지 않았어요. 그리고 엄마를 사랑했던 어린 소녀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던 겁니다. 의도적으로 그랬다는게 아니예요. 모두 무의식중에 부지불식간에 일어나 버립니다. 즉, 대부분의 부모 자식간의 관계가 그렇듯 손님은 매우 어렸기 때문에 동등한 합의라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불평등한 합의이면서 무의식적 합의였던 거죠.


어머님은 어린 딸이 꾸미는 걸 두려워하거나 경계시키는 말들이 많이 했을 겁니다. 손님이 여성인 것 자체를 모르고 지나가길 바라는 말이었거나 혹은 여성임을 숨기라고 종용하는 말이거나..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그 나름대로의 어머니의 사랑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은 어머니가 자신의 남편을 뺐어간 다른 여자라는 존재를 바라보는 분노, 불안과 두려움의 시선입니다. 그건 손님이 스스로 경험하고 깨달아 알게 된 세상은 아니었어요” 


“ 잠깐.. 잠깐만요.. 저는 지금 하는 말들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엄마가 제가 여성이 될 수 없도록 했다는 건가요? 그건 엄마가 저를 걱정해서 그렇게 말한 건데 그렇게 이야기하면.. 그분은 절 키워주신 분이에요. 아빠처럼 저를 버리지 않고요. ” 


그녀는 갑작스러운 반발심 때문인지 입을 앙다물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도 그녀는 무의식이니, 프로그래밍이라느니 뭐 이 따위 이상한 상담에 기대를 걸었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까지 하고 있었다. 어린 자신을 이혼 후에도 버리지 않고 키워준 게 자신의 엄마였다. 


‘고마운 우리 엄마. 그런데 그런 엄마가 자신이 이런 상태가 되게 했다는 건가. 이게 무슨 황당한 말이지?’ 


어이없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생각으로 빠져들었다. 그녀는 자신은 그저 운이 나빠 몸만 여성으로 태어났고 정신은 거의 중성적인 상태를 가졌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만일 자신이 남자였다면 차라리 외모를 꾸미지도 스스로가 왜 여성스러움에 대해 관심도 없는 상태인지 고민할 필요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자신의 그런 상태가 엄마의 영향과 자신의 두려움 때문이라는 황당한 소리를 듣다니.


“ 이건 상호작용 같은 거예요. 그렇지만 엄마와 딸 사이처럼 한쪽이 너무나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선 어린 시절은 공평한 상호작용으로 보긴 어렵죠. 작은 아기에게 엄마의 말과 관점은 세상 그 자체가 되는 경우가 허다해요. 부모님을 비난하고자 하는 건 아니지만 그 무게감이 너무나 커서 어린 아기가 다른 어떤 선택도 생각해 볼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 부분을 알아가고자 하는 겁니다”


둘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 제 엄마가 저에게 외모만 꾸미는 여자가 되지 말라고 했던 건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그건 마치 엄마에 대한 비난 같이 느껴져 기분이 좋지는 않아요. 엄만 제가 그런 몰지각한 여자처럼 되는 게 두려워서 그런 거지 제가 미워서 그런 게 아니라고요. 엄마는 저에게 세상에서 한 명 밖에 없는 소중한 사람이에요”


“ 당연한 느낌이에요. 지금 중요한 부분은 부모를 비난하기 위해 꺼낸 말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중요한 건 손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거예요. 부모님이 모르고 습관적으로 했던 그 말들 혹은 아이를 위한다는 일념으로 계속 얘기했던 부모의 생각들이 어린 손님에게 어떤 마음의 세팅을 갖게 했는가를 보는 게 오늘의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어머니를 미워하라거나 비난하기 위해 꺼낸 말이 아닙니다”


화가 난듯한 손님의 오해를 진정시키려는 듯 이유는 조용하고 부드럽지만 단호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복덕방에 와서 이런 인생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 충격적이어서 인지 아니면 무의식이라는 부분이 충격적인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한 참 동안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이 없었다. 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녀는 읊조리듯이 대꾸했다. 


“ … 맞아요. 저희 엄마는 저에게 늘 그걸 조심시키곤 했어요. 한 동안 울며 살다가 어느 날부터 매일 같은 말을 하곤 했어요. 조심시키곤 했던 것 같아요. 걱정이 많이 된다고. 그런 여자처럼 되면 안 된다고. 남의 가정 파괴하는 그런 여자요.”




“  엄마가 이야기했잖니, 그 여자처럼 되면 안 된다고.


   동글동글 귀여운 우리 딸, 


   남들은 뚱뚱하다고 해도 엄마는 이게 좋단다. 


   여자가 얼굴이랑 몸매만 예쁘면 무얼 하니 정신상태가 그 모양인데.


   내면이 중요한 거야. 얼굴 예쁜 것들은 그 얼굴값을 하니까.


   너는 공부나 잘해서 능력을 인정받으렴.. 


   나는 예쁜 딸보다 듬직한 딸이 좋다. 


   우리 딸은 듬직해, 멋져.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오는 것도 절대로 안 돼. 


   나는 너를 그렇게 되바라지게 키우지 않을 거다.


   얼굴에 뭘 발라도 넌 그냥 투박하면 돼. 그거면 다 적당해


   얼굴에 새빨간 립스틱 같은 거 아주 못할 짓이야.”    



그녀는 자신이 어려서부터 들어왔던 말들이 어딘가에서 갑자기 쏟아져 나오듯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렇게 마구 쏟아져 나온 말들을 들여다보니 모두 동일한 방향성이 있었다. 엄마는 딸이 남편을 빼앗아 간 그 예쁜 여자처럼 외모에 신경 쓸까 봐 걱정했다. 조금이라도 그런 모습을 보일 시기인 사춘기부터는 더 주의를 주고 더 신경질을 내곤 했었다. 그런 엄마의 비위를 조금이라도 건드릴까 그녀는 대학생이 될 때까지도 중성적 남자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억 속 아빠를 데리고 가 버린 그 여자의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았다. 종종 엄마가 그런 말들을 할 때면 자연스레 떠올려지곤 했던 그 여자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말이다. 이젠 희미해진 기억 때문이라고 해도 옅은 화장이 거의 전부였었다. 그녀가 보여주는 미모라고 해봐야 단지 엄마와 비슷하거나 약간 꾸민 정도. 차이가 있었다면 전체적으로 온화한 인상이 매력이었다면 매력이었다. 엄마는 그 여자가 과도하게 예뻐서 가정을 지키는 미덕 같은 건 필요 없다고 꼬드김을 당한 아빠가 달아났다고 생각했다. 


‘툭’ 


마치 꼭꼭 잠가뒀던 그런 무엇이, 그리고 그 뒤에 있던 거대한 무언가를 숨겨두었던 자물쇠가 힘없이 풀려버린 것 같았다. 


미처 느끼지 못했던 아니 느끼면 안 됐을 자신의 무언가가 터져 나올까 봐 전전긍긍하며 꽁꽁 싸매두었었는데. 그게 갑자기 풀려 버린 느낌. 


머리 빗질 한번 하는 것이, 거울 한번 오래 보고 있는 것이 무언가가 잘못된 것도 아닌데 매번 지적받아 주눅이 든 마음이, 당시의 느낌들이 시간을 건너와 그녀의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왜 그때부터 여태까지 그걸 몰랐을까. 아니 알았는데 모른 채 했을까.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 거울을 보는 것도 싫어해서 세수를 할 때에도 물기만 대충 닦고 나오기 일쑤였다. 사실 그녀는 자기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할 수 없을 만큼. 그저 얼굴에 뭔가 묻어있진 않은지 정도만 보고 지나가곤 했는데 사춘기에 들어서선 하루 종일 거울을 옆에 두고 자기를 들여다보고 있는 애들을 보면 한심하다 못해 경멸감마저 느꼈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중, 고등학교 땐 내내 남자아이처럼 머리를 짧게 자르고, 치마 교복대신 체육복만 입었다. 학업에 신경 써야 할 때에 지나치게 예쁘게 꾸미는 것에만 집착하는 친구들을 보면 그럴 시간에 자신이나 부모들을 위해서 수학문제 하나라도 더 푸는 게 인생에 훨씬 더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며 지냈다. 그냥 엄마가 말하는 착한 아이, 조신한 여성의 모습에 맞추는 것이 가장 옳다고 생각했으니까.


대학에 가서도 여전히 남자처럼 머리를 짧게 자르고 투박하게 하는 것이 가장 편안하다고 느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남자아이처럼 짧게 머리를 자르고 체육복을 입고 다니면 나름 아이들에게 인기도 있었는데 대학부터는 달랐다. 그녀는 그저 중성적인 애, 아웃사이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사실 그런 남들의 관심 같은 건 그녀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궁금했다. 어느 날인가 스스로가 당황스러웠다. 공들여 메이크업하며 꾸미고 다니는 같은 과 동기 여자애를 자신이 경멸의 눈으로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왜 그 친구를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혼란스러웠다. 질 나쁜 아이도 아니었다.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는, 공부도 꽤 하는 자기 멋도 부릴 줄 아는 나름 멋진 친구니까. 그래서 그 애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 자신이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국 한 학기 내내 고민해 봐도 그 친구를 그렇게 바라보는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자 그 문제를 덮었다. 그저 취향이려니. 그리고 자신은 그런 세속적인 것과 거리가 먼 즉 초월한 사람이라 여기기 시작했다. 자신의 덤덤함이 중성적임이 우위를 차지한다고 믿으며 대학시절이 지나갔다. 마음 깊은 곳에서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지만 취업시즌이 코 앞이었다.


처음엔 그냥 그런 기억들이 지나가는 줄 알고 그러려니 했는데 이 이상한 공간에선 마치 어떤 특별한 힘이라도 있는 건지 그저 이유를 알게만 된 건 데도 그때의 자신이 가졌던 숨겨둔 감정들이 올라와서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참았던 울음이 소리 내어서 나오기 시작했다. 



...



그렇게 30분을 울었을까. 이제 시간도 짐작이 되지 않았다. 주인장이 건네는 티슈를 벌써 몇 장이나 뽑아 쓰고 나서야 정신이 간신히 돌아온 그녀는 읊조리듯 말을 이었다.


“ 엄마는 제가 꾸미거나 예뻐지는 걸 싫어해요. 아마 그 여자가 생각나서 그런 것 같아요. 난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어요. 얼마나 상처가 큰지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말하는 것도 다 이해했어요. 그리고 그렇게 모든 걸 이해하다가 나중엔 나라도 떠난 아빠를 대신해서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치 남자아이처럼 옷을 입고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 옆에 있는 하나 남은 엄마마저 떠나버릴까 봐서요”


“ 그랬군요. 정말 두려웠군요” 

“ 네.. 전 7살이었으니까요” 


무거운 침묵 속에서 잠시 숨을 돌리더니 주인장이 말했다.


“ 다만 손님이 이집트에 머무는 동안에 살이 빠졌던 이유는 이 프로그램과 반대의 설정이 작용하는 곳이라서예요. 이집트나 아랍 쪽은 대대로 풍만한 여성을 가장 아름다운 미의 기준에서 으뜸으로 삼죠. 그때 손님의 무의식 즉, 프로그램은 풍만함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문화권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고는 몸에 살을 빼기로 했던 거예요. 그쪽 지역에서 빼빼하게 마른 여성은 많이 어필하지 못하거든요.” 


“ 앗! 맞아요.  체류기간 중 처음엔 사촌언니를 따라서 나가면 언니의 학교 남자친구들이 호감 있다는 표현을 많이 해서 정말 당혹스러웠는데 한국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제가 늘 원하던 마른 몸이 되었을 때에는 그 나라 남자들의 반응이 사라졌었어요” 


그녀는 이집트 남자애들은 자기를 놀리려는 것 같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형형색색의 이국적인 시장들과 자연환경들 모든 것이 놀라웠는데 특히 그곳 남성들이 자신에게 아름답다고 반응하는 것에 당황했던 기억들이 많았다.


“ 손님의 몸에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옳지 못하다고 인식하는 무의식적 프로그램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런데 지금 손님은 프로그램을 뛰어넘어 자신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은 거예요. 그 모습이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는 정답은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손님이 스스로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자신을 위해 탐구해 보고 실험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해요. 그 누군가의 억압이나 강요가 없이 말이죠.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어떤 건지 탐구하는 시간이죠” 


“ 제 본래의 모습이요?”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본래의 모습. 이 말이 왜 이렇게 서럽게 느껴졌을까. 살이 빠지지 않아서 우울하다고만 생각했지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엄마의 관점에 부응하고 따르기 위해 어린 자신이 선택했던 방식이 이토록 고통을 줄 수 있다니. 마치 시공간을 넘어서서 무언가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 남자의 모습과, 여자의 모습이 규정되어서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은 시대별로 문화별로 지역별로 다를 수 있어요. 시절에 따른 다른 사회적 흐름이죠. 역사적으론 아주 멋진 근육질의 여자를 좋아하는 곳도 있었고 반대의 야리야리한 소녀 같은 이미지가 호감의 기준인 적도 있었죠. 그런 기준을 따라서해야 한다는 게 아니에요. 그건 또 다른 강요가 될 수 있으니까요.


다만 자신이 원하는 모습에 대해서 스스로 탐험해 볼 시간도 없이 여성을 버리고 남성처럼 지내왔으니까 과연 그것이 맞는지 몸이 묻고 있는 것 같아요. ”


“ 제 몸이 저에게 묻고 있다는 거군요.” 


저주받은 몸뚱이 마냥 무언가를 제대로 먹지 않아도 늘 뚱뚱하고 무거운 존재였던 몸이 자신에게 그런 말을 건네고 있었다니.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스스로의 몸을 쓸모없이 못생긴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아니 미워하고 있었다. 역겨운 여자로 태어나서 귀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몸이 말을 걸고 있었다니.. 낯설면서도 왠지 자신의 몸이 안쓰러웠다. 


잠시 생각할 시간이라도 주는 듯 찻잔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주인장이 말했다. 


“더 짧게 정리해서 말하자면 손님의 몸에는 ‘여성임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고 엄마를 잃지 않는 것이다’라고 판단하는 프로그램이 세팅되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손님은 한참을 우느라 부은 눈에서 두 손을 떼며 물었다.  


“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 프로그래밍된 걸 없애려면요” 

“ 음 그게 바로 핵심인데…”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답변이 어서 나오길 기다렸다. 


“ 연애하는 거예요.” 

“ 네..?” 

“ 두 명과 연애해야 합니다.” 


주인장이 말한 답이 당황스러웠는지 아니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건지 맞은편에 앉은 손님은 한참 울다가 황당한 표정으로 이유를 바라보았다.


“ 첫 번째 제일 중요한 연애 상대는.. 바로 자기 자신이에요.” 

“ 아…”

“ 자신이 정말 좋아하고 되고 싶어 하는 스타일이 무언지 충분히 존중하고 사랑해 주세요. 외모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삶의 방식까지. 이제 어머님이나 남들이 이러해야 한다는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겁니다. 아기들이 뒤집기부터 시작하듯이요”  


“ 그렇지만… 그게 낯설어요.” 

“ 맞아요. 처음엔 무척 낯설죠. 하지만 아주 아주 사소한 것을 하나씩 실험해 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렇게 되어있어요. 그게 오늘 여기 온 이유고요.” 

“ 그렇긴 해요.”


주인장은 방긋 웃으면서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 그리고 두 번째 연애 상대는 정말 좋아하는 분과 연애를 하는 겁니다. 여기서 핵심은 정말 정말 좋아하는 인데.. 그 이후가 중요해요. 처음엔 짝사랑이어도 좋고 썸이어도 좋아요. 중요한 건 상대방에 의존하기보다 연애를 하면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거예요. 자신이 어떤 모습일 때 기쁜지, 어떤 선택을 했을 때 자신을 좀 더 사랑할 수 있게 되는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는 것 말이에요. 


그리고 자신이 그런 연애의 과정을 지나면서 뭘 좋아하는지, 그 사람에 대한 자기감정이나, 옷의 취향부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과정을 적어보는 거예요. 아마 변화까지는 얼마가 걸린다고 확정 지을 수는 없지만 확실히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겁니다” 


가장 중요한 대책을 들었을 때 그녀는 순간 빵하고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 제가 모태솔로인 건 맞지만.. 방법이….” 

“ 아참, 중요한 걸 빼먹을 뻔했네요.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어요.” 

“ 네? 제 몸에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건가요?”

“ 네. 모든 면에서요.” 


이유는 황당해하는 손님을 보며 아주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 몸에서 살이 빠지지 않는 이유를 무의식에서 의식적으로 인지하게 된 그 순간부터 변화는 이미 시작된 거랍니다. 다들 이 부분에서 잘 믿지를 못하긴 하는데..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죠. 다시 말하고 싶네요. 시작이 전부다. 이미 손님은 이전의 상태와 완전히 다릅니다. 그 점은 확실히 믿으셔도 돼요.”


“ 에… 완전히 다르다고요?”


“ 네. 이미 시작됐어요. 차차 자신과 또 맘에 드는 사람과 연애를 해보면서 경험을 쌓아가면 더 건강해지고 변화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추가적인 반드시 함께 해야 하는 세 번째 방법이 있는데.. 쓰기예요. 일종의 일기라고 해도 좋겠어요.” 


“ 쓰는 걸.. 그러니까 일기는 초등학교 이후론 해본 적도 없는걸요.” 


“ 맞아요. 그때는 누군가는 곧 보게 될 일기였죠. 형식적인. 오늘부터 해야 될 건 온전히 자신만 볼 수 있는 일기를 쓰는 겁니다. 나 이외엔 누구도 보지 않을 글 쓰기. 욕이라도 좋으니 솔직하게 쓰는 게 중요합니다. 느끼는 그대로 생각한 그대로”


“ 아.. 그런 걸 적어도..?”


“ 예를 들자면 그렇다는 거예요. 대부분 우리는 두려움이나 걱정이 올라오면 누구를 비난하는 게 나쁘다고 교육받아요. 그렇지만 그렇게 느끼는 것 자체는 나쁜 게 아니에요. 내가 반응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그걸 표현하세요. 기분 나쁘면 나쁘다. 그 사람 욕도 좀 해보고요.” 


“ 아.. 그래도 그렇게 하는 게.. 고마운 면도 있을 건데..”


“ 감사한 마음이 든다면 그것도 적으면 돼요. 그런데 외부에서 바라보는 이렇게 해야 좋은 사람이라는 가면은 좀 벗고 그저 솔직한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그대로를 적어보는 겁니다. 부정적인 감정도 나와야 인지되어야 사라집니다. 그 후에 자신이 보입니다. 그런 감정들을 누르고 사회적인 책임으로 외면하기보다 매일매일 일기나 메모장에 있는 그대로 적어 주는 게 매우 중요해요. 그런 감정도 나의 감정이라는 걸 스스로 인정해 주며 적는 겁니다”


“ 적어보라는 거군요..”


“ 부정적이거나 히스테릭한 압박은 누를수록 더욱더 커지기만 하죠. 그것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요. 그럴때 생각을 적어서 박재해 보세요. 그리고 순수하게 그저 들여다보세요. 나중에 읽다 보면 자신이 얼마나 부모의 말에 따라 혹은 다른 기준에 따라 스스로를 억압해 왔는지 느낄 수 있을 거예요.”


“ 제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 보라는 거군요.” 


“ 네. 그건 누구도 해줄 수 없어요. 부모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 그걸 알게 되었을 때 그 이후부터는 자신의 모습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은 어렵고 막막해서 연습을 하면 자신의 모습을 점점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커집니다. 자유에 이르르게 되죠.


“그렇긴 해도 관심도 없었는걸요. 여태 친구들 연애하는 걸 봐도 의미도 없고..” 


그녀는 순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게 자신의 생각인지 아니면 엄마의 생각인지 구별할 수 없다고 느꼈다. 자신이 해 보지도 않고 그렇게 들었던 대로 따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녀는 머뭇거리다 말하기를 그만두었다. 


“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며 규정하기보다 감정을 일기장에 모두 쏟아내고 나면 그 이후엔 무엇을 선택하고 싶다는.. 그러니까 다음이 자연스럽게 가능해져요. 타인에게 강요받기 전에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스스로를 충분히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해요.


앞으로 상당기간 동안은 그 감정들을 매일 적으면서 많이 많이 울게 될 겁니다. 힘들었던 그 감정들을, 솔직한 자신으로서 느끼는 마음을, 필요하면 상대방을 욕하고 원망하더라도 그 일기장만은 손님을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묵묵히 인정해 줄 테니까요. 다음에 만날 때 어떤 모습일지 기대되네요” 


왠지 어떤 모습인지 기대된다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 주인장의 표정이 한 결 가벼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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