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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는 날들

연재소설 1

by 옆집사람

- 원한을 살 만한 사람이 있나요?

모든 살인사건의 첫 질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어쩌면 가장 가슴 아픈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피해자가 피해를 입을 이유가 본인에게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가정에서 나오는 것 같기 때문이다

- 주위에 의심 가는 사람이 있나요?

이건 더욱 가슴 아픈 질문이다. 여태까지 얼마만큼의 시간들을 같이 보낸 사람 중에 피해자를 해친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살인 사건이 그렇게 시작되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는 질문들이기도 하다.




이름 최미영 여자 나이 54세 직업 H보험회사 부장 사인은 아직 불명

현장에 도착해서 전달받은 내용은 이게 전부였다. 자세한 사망원인은 부검을 해봐야 알겠지만 부검 전에도 교살인지 자상 등의 외상에 의한 사망인지 등 간단하게는 알 수 있었는데 이 사체의 경우에는 사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사체는 외상이 전혀 없었고 보기에는 아주 깨끗한 상태였다. 사체는 하얀 원피스 같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속옷은 없었고 온몸이 알코올 같은 것으로 소독하듯 닦여 있었고 목을 따라 일직선으로 가슴과 밑에 3곳, 양팔의 손목 안쪽과 발목 안쪽에 불에 덴 것 같은 상처가 백 원짜리 동전만 한 크기로 있었다.

사체가 발견된 곳은 3층짜리 건물의 지하인데 1 년 전부터 지금 세를 들어온 사람이 사용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 세입자는 딱 한번 계약할 때 잠깐 본 게 다여서 얼굴을 기억할 수 없었고 게약 당시 1 년치 월세를 일시불로 지불했다고 한다. 기억나는 것은 20대 후반의 남자였다는 것과 안에 타일 공사를 해도 되냐는 말을 했다는 것뿐이었다.

원래 가내 수공업 공장 같은 것을 하던 곳이라 괜찮다고 했다는데 그때 한 것인지 전체 벽은 하얀색의 타일로 처리가 되어 있었다.

방 전체는 있는 물건이라고 시체가 누여져 있는 병원 수술용 침대와 그 머리 쪽에 놓여있는 작은 테이블 하나가 전부였다. 방 한쪽 귀퉁이의 화장실도 벽 하나가 변기만 가리고 있을 뿐 문도 없이 뚫려 있었고 수도꼭지만 세면대도 없이 덩그러니 벽에 붙어 있었다.

작은 테이블 위는 촛불과 향불을 피웠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현재는 초와 향불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바깥으로 나있는 창문은 어른의 머리높이여서 서서 손을 뻗어야 열고 닫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는데 모두 가려져 있었지만 문을 막아 놓지는 않았는데 가끔씩 열어 환기를 하곤 했던 것으로 보였고 사체가 발견된 것도 윗 층에 사는 사람이 지나가다가 문 틈새로 보이는 것을 발견하고 신고한 것이었다

지하를 제외하고 1층부터 3층까지는 각층마다 2가구씩 살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 지하에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여기까지 보면 그 세입자만 찾으면 범인을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계약서상의 이름이나 주소 주민번호까지 모두 허위였으며 그 방안에서는 어떠한 지문이나 사람의 흔적을 찾아낼 수 없었고 혈흔마저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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