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5
일주일이 지나도록 사건의 실마리조차 잡을 수 없었다. 단 한 가지는 약물검사결과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마취제가 다량 투여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추가되었을 뿐이었다. 추측했던 대로 피해자는 약물에 취해서 가사(假死) 상태에 빠져있는 동안 정맥에 바늘이 꽂혔고 그 바늘에 연결된 관을 통해 몸의 피가 모두 빠져나가게 된 것이었다.
관은 사건현장인 방의 한쪽에 있던 변기를 통해 버려진 것으로 보였지만 변기는 이미 다량의 락스로 세척된 상태였고 혈흔에 의한 DNA 분석은 실패했다.
사건현장 주위의 탐문에서도 그곳에 드나들던 사람에 대한 어떤 정보도 나오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사건현장을 청소한 양의 락스를 옮기려면 한 번으로 가능하지 않았을 테고 피해자를 옮기기는 것도 남의 눈에 띄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탐문을 계속하던 때 뜻밖의 장소에서 사건 현장을 드나들던 사람을 보았다는 제보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사람은 사건현장에서 거의 1km쯤 떨어진 곳에 있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었는데 그의 증언으로는 까만색의 후드티를 입은 사람이 검은색의 배낭을 메고 사건 현장 쪽으로 가는 것을 봤다는 내용이었다. 사건현장 근처도 아닌 1km나 떨어진 곳에서 봤다는 말의 신빙성이 처음엔 없어 보였지만 편의점 CCTV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까만색의 후드티를 입고 그 앞은 지나갔던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니었고 꽤 여러 명이 같은 옷을 입고 지나갔고 어떤 때는 혼자 가거나 두세 명이 짝을 지어 지나갈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서로 친한 모양새로 지나간 것이 아니라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단 한마디의 대화도 없이 편의점 앞을 지나갔고 그들 모두 커다란 백팩을 메고 있었는데 그 백팩은 무엇이 들어있는지 꽤 무거워 보였다.
그 사람들의 모습이 사건현장으로 갔을 것이라는 의심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사건현장 근처를 지나갈 때 우연히 까만 후드 티를 입을 사람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까만 후드 티를 입을 사람이 건물지하로 내려가는 것을 우연히 보았지만 처음에는 건물을 임대한 사람이 20대의 남자라는 내용만으로 탐문을 했기 때문에 남자가 아니고 여자를 본 것이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같은 가방을 메고 지나갔던 모습이 이상했던 기억에 제보를 했다고 한다.
보관된 CCTV에는 같은 요일, 비슷한 시간에 그곳을 지나가는 검은 후드티의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대략 10명 정도였고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몸집이나 걸음걸이, 움직임 등으로 그들이 젊은 남녀들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젊은 남녀 10여 명이 평일인 매주 수요일 오후 2시경에 그곳에 모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낮에도 불을 켜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어두웠던 지하에 그들은 모여 무엇을 했던 것일까? 그리고 이제는 왜 다시 오지 않는 것일까? 피해자의 살인에 모두 같이 참여한 것이 아니라면 사건이 발생한 이후 단 한 사람도 더 이상 그 주위에 나타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일 년 가까운 시간 동안 매주 모였고 무엇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살인에 가담한 후 모두 흩어져 버린 것이다. 이제 그들이 모여서 무엇을 했는지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 수사의 초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