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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들

연재소설(3)

by 옆집사람

“ 둘이 사귄 게 맞나요?”

“ 주위에서 그렇게 말하는 걸 들었는데 처음엔 본인은 아니라고 하데요. 만난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고 그렇게 말했어요. 그런데 주위에 물어보니 둘이 같이 도서관에도 가고 밥도 먹는 걸 봤다고. 그냥 사귀지 않았다고 같이 강의만 들었다고 했으면 그냥 넘어갔을 텐에 왜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는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라고 했는지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쫓아다니면서 봤어요. ”

“사귄 게 맞던가요? 그랬다고 하던가요?”

“ 아니요. 둘이 사귀는 사이라고 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처음엔 얼굴도 모른다 이름도 모른다, 만나 본 적도 없고 같이 수업을 듣는지도 몰랐다고 하더니 얼굴은 안다고 하더라고요. 공부는 잘하는 거 같은데 친구가 한 명도 없고 다른 사람들하고 말도 별로 없고 해서 알아보기도 쉽지 않았어요. 근데 좀 이상한데 말을 좀 더듬거리는데 어떤 때는 아주 말을 잘해요. 그리고 제일 께름칙했던 건 그 눈 빛 ”

“눈 빛이요?”

“이렇게 얘기하면 과대망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눈빛에 살기가 있더라고요. 소름 끼칠 정도로. 그래서 더 알아보게 된 건데.......”

방혜순은 경찰서에 참고인 조사로 왔던 그 얘를 처음 봤을 때 기억이 났다. 고개를 떨구고 말을 더듬거리며 진땀을 흘리던 애가 경찰서를 벗어나자마자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더듬거리지도 땀을 흘리지도 않으며 말했다

“나를 자꾸 귀찮게 하지 말라고요”

그러더니 빙긋이 미소까지 지으면서 지나갔었다

“ 그리고 더 알아내신 건 없나요?”

“군대에서 조현병 진단받은 이야기요”

“멀쩡하게 군대에 가서는 조현병 진단을 받았잖아요. 그리고 제대하고 나서는 또 멀쩡하게 학교를 다니고 졸업을 한 거죠”

“그게 무슨.....”

보초를 서다가 같이 보초 서던 동기를 죽이려고 했단다. 총을 들어 똑바로 겨누었다고. 그것도 한 명이 아닌 두 명에게

나중에 왜 그랬냐니까 적군이라고 했다고 한다. 결국 그런 행동으로 조현병 진단을 받았는데 그 일을 당한 동기들의 증언에 의하면 두 눈으로 똑바로 쳐다보며 했다는 말이 소름 돋는 말이었다

“사람이 죽을 때 얼마나 아름다워 보이는 줄 아니? 총에 맞아 죽는 건 한 번도 못 봐서 이번에 보고 싶어”

총을 겨누며 그렇게 말했다는데 그 일로 체표당해서는 적군을 만났다고 그래서 총으로 쏘려고 한 거라고 횡설수설을 했단다. 군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상태가 호전되어 퇴원해서는 또 같은 짓을 벌였다고 한다. 이번엔 더 소름 끼치는 말투로 “ 팔, 다리 하나씩 없애줄까? 그때 느끼는 고통을 보고 싶은데”라고 했다는데 이미 조현병으로 진단이 나온 상태라서 그 말의 진위보다는 그의 상태에 대한 심각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본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군대를 6개월 만에 제대하고 처음에는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있었다는데 얼마 되지 않아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대학에 복학했고 나머지 2년을 아무 일 없이 다니고 졸업을 했다.

졸업 후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나오는 것이 없었다. 뚜렷한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고 졸업 후에도 원룸에서 혼자 생활을 했었던 것만 확인되었다. 뚜렷한 직업은 없었지만 생활이 별로 어렵지는 않은 것 같았는데 원룸이기는 했지만 꽤 넓은 편이었으며 월세를 밀리거나 하는 일도 없었고 입고 다니는 옷이나 행색이 궁색해 보이지는 않았다는 것이 아마도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었던 것 같았다고 한다.

8년 전 그의 주변에서 3번째 사건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실종이 아닌 사망사건이었다. 이번에도 그는 단지 참고인이었을 뿐이었다.

이정희. 사망당시 31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중소기업에 취직하여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어려서 돌아가셨고 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듬해에 어머니도 돌아가셨다고 한다. 형제도 없었고 이 세상에 가족은 아무도 없는 혼자인 상황이었다. 사망을 알게 된 것도 회사동료에 의해서였는데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 연락을 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고 집에 도착해 보니 사망한 상태였다.

사망원인은 번개탄에 의한 일산화탄소 중독이었고 혈액에서는 알코올과 바리움성분이 검출되었다.

“ 행복을 찾아서 갑니다”

유서로 보이는 글이었는데 A4용지에 단 한 줄이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작은 집은 깨끗이 정리가 되어있었고 남은 짐은 마치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사람처럼 여행용 가방 하나에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하긴 짐이라고 해도 별 것은 없었다. 옷가지 몇 개, 화장품 같은 소지품이 모두였다.

이상한 것은 사망하기 6 개월 전부터 그녀가 10년 직장생활을 하며 모아놓았던 돈을 인출하기 시작했고 살고 있는 집의 전세도 월세로 바꾸어 전세금마저도 남아있지 않았다는 것이었는데 돈은 모두 현금으로 인출했고 한 번에 많이 찾는 것도 아니어서 백만 원이나 이백 만원씩을 일주일에 한두 번씩 그 날짜도 일률적이지 않아서 무엇에 투자를 한 건지 어디에 썼는지 누구를 주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결국 그녀가 사망 직전에 통장에 가진 돈은 하나도 없었다.

혹시 이사 같은 것을 생각한 건지 확인하기 위해 본인의 명의로 된 집이나 토지를 확인해 보았지만 어떤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찾아간 현금도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녀는 가족만 없는 것이 아니라 친구관계도 거의 전무했다. 직장동료등의 말에 의하면 참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이었던 그녀가 일 년 전부터인가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실 변하기 시작한 건 이 년쯤 되었는데 가끔 이상한 소리를 하거나 공연히 혼자 들떠 있거나 기분이 상해 있거나 했었다고 했다. 그 기분이 아마 남자친구 때문인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고.

일 년 전부터는 거의 말도 없어졌고 직장에서도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회식에도 참여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근무시간 중에도 업무적인 일 외에는 누구와 어떤 사적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 남학생과 연관이 있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전화기에 남아있는 전화번호 때문이었는데 이번에도 처음엔 모르는 사이라고 했다고 한다. 나중에 같이 있는 것을 본 사람들의 진술을 듣고 다시 심문을 했을 때 친한 사이는 아니고 같은 동네에 살고 있어서 오다가다 얼굴만 아는 사이일 뿐 별다른 사이는 아니라고 했다고 한다. 서로 자주 보는 사이가 아니어서 그 여자를 말하는 건지 몰랐다고 심문 내내 어찌나 땀을 흘리며 말을 더듬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였고 그 시간대에 다른 동네에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고 수사내용에 용의자로 볼 만한 일은 나오지 않아서 그냥 참고인으로 조사를 했을 뿐이었다고

두 사람의 집은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고 동네에서 같이 있는 것을 본 사람들이 있었지만 우연히 같이 있었을 뿐 따로 만난 적은 없었고 전화번호를 주고받은 것도 뭔가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줄 수 있겠냐고 부탁을 받아서 알려주었을 뿐이었다고 했다.

두 사람의 문제는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데 한 사람은 아니라고 하고 한 사람은 사망한 상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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