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생활의 의미
집안일이라는 게 하면 티 안 나고, 안 하면 티 나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 글쎄, 나에게 있어서 집안일은 해도 티 안 나고, 안 해도 티 안나는 일이다. 어질러졌을 때 바로바로 치우는 성격이기도 하고, 아이 교육상 본인이 가지고 논 장난감들은 자기 전에 꼭 정리하도록 시킨다. 그래서 그런가 우리 집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항상 깔끔하다. 즉, 그날 하루 집안일을 안 해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게 아닌 이상 티가 잘 나지 않는다.
식사 준비도 마찬가지다. 식사 준비를 안 한 날은 냉장고에 남아 있는 반찬을 꺼내먹거나 그냥 외식하는 날이다. 가끔씩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하는 것도 나름 괜찮다. 이런 특성 때문에 집안일은 나에게 마감 기한이 있는, 매일매일 꼭 해야 하는 ‘필수’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오늘 안 하면 내일 하면 되고, 낮에 안 하면 저녁에 가족들이 있을 때 해도 된다. 나에게 느껴지는 이러한 집안일의 특성이 나를 가끔 우울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을 때, 무언가를 집중해서 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 때 나는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결국은 우울한 감정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우울함은 무력감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내가 최대한 고정적인 스케줄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영어 수업이나 친구를 만나는 일 같이 ‘사람’과 약속을 하면 귀찮고 미루고 싶더라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몸을 움직인다. 사람을 상대하다 보면 또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기고 활력이 돈다. 이때 얻은 활력으로 남은 시간 즐겁게 청소도 하고, 요리도 하고, 육아도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 외에 ‘취미 생활’도 꼭 필요한 것 같다. ‘나를 위한’ 무언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취미가 필요하다. 가정주부는 그 어떤 직업보다도 가족을 위해 살아가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가족들이 안락하고 쾌적하게 살 수 있도록 집을 관리하고, 남편과 아이가 힘을 내서 건강하게 사회생활 할 수 있도록 식사를 만들고, 가족들이 지치거나 힘들 때 마음을 돌봐주고,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진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단기간에 눈에 보이는 성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하는 일에서 오는 성취감이 매우 낮은 편이다. 그래서 나는 취미를 만들었다. 미대를 졸업한 친한 언니에게서 드로잉을 배우고, 의사를 은퇴하고 손뜨개질에 푹 빠진 미국 할머니에게 손뜨개질을 배웠다. 그렇게 배운 것들이 내 취미가 되어 나를 그 일에 몰두하게 한다. 한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작은 성취감이 뒤따라온다.
어떤 사람에게는, 오전 시간을 사람들 만나고 취미생활 하며 보내는 나 같은 가정주부가 참 한량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우울함에 빠지지 않고 살기 위해 하는 일들이다. 내가 내 정신건강을 챙겨야 주부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가족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적어도 영주권이 나오기 전까지는 가정주부로 살기로 마음을 먹었기에 나는 오늘도 취미 생활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