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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콤불닭순한맛 Aug 13. 2022

읽고쓰다 #4. 여자 없는 남자들

비 오는 날의 투명한 수채화가 떠오르는 책


요새는 어찌 된 일인지 다양한 OTT 채널들로 드라마와 영화를 마음껏 볼 수 있게 됨에도 불구하고

예전만큼 티비를 켜는 시간보다 책을 펴고 앉아서 읽는 시간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어쩐지 뭔가 시끄러운 영상이나 소리들에 살짝 거부감이 드는 시기라고나 할까?

그리고 부쩍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감상을 못하고 이걸 보다가 끊고, 저걸 보다가 또 돌려버리는 탓에 이도 저도 아닌 시간만 흘러가는 아주 기분 나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면 안 되겠다'싶어서 그냥 방에 들어가 책상에 꼿꼿이 앉아 정해놓은 시간 동안 책에만 집중하는 연습을 하고 있는데 이 재미가 또 쏠쏠한 거다. 그동안의 숙원 사업이었던 멋진 책장도 집에 들여놓고 하니 내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책들이 소중해지고, 다시 한번 하나하나 읽어나가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어느 날 평소 일상을 기록하는 용도로만 쓰고 있는 내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읽은 책들의 기록을 보았다. 충분한 내용의 기록보다는 대충 사진과 그때의 감상만 적어놓으니 도대체 이 책이 무슨 내용이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거다. (대충격)


이렇게 기억이 안 날 거면 책을 읽어서 뭐해?


나도 언젠가 읽었던 김민철 작가님처럼 나의 저주스러운 기억력을 보완하기 위해 브런치에 이렇게 일상의 기록을 남긴다. 적어도 이렇게 남긴 글들은 내 기억 속 생존율이 훨씬 높아지는 것 같다.






얼마 전 개봉했던 <드라이브 마이 카>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다. 그 영화는 바로 이 책의 첫 번째 단편을 영화화한 것인데 마침 그 영화가 개봉하기 직전 내가 정말 사랑해 마지않는 우리 집 근처의 북카페에서 <여자 없는 남자들>이란 제목의 책을 우연히 집어 들어 읽게 되었고, 절묘한 개봉 타이밍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물론 오늘의 이 글을 위해 두 번째로 다시 읽었다.

여전히 담백하고도 묘한 여운을 남기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마음에 든다. 이상하게도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비 오는 날을 그린 투명한 수채화가 떠오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투명한 물기를 머금은 수채화가 도대체 왜 떠오르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글에 대한 나의 인상이 그렇다.


우연히 이 책에 대해 여러 글들을 검색하다 보니 2014년 초판을 낸 <여자 없는 남자들>은 하루키가 존경하는 헤밍웨이의 단편 소설에 영감을 받아 재해석한 소설이며, 헤밍웨이가 먼저 동명의 책을 1927년에 출간했다고 한다. 그간 우리나라엔 잘 알려지지 않았던 헤밍웨이의 <여자 없는 남자들>이 오히려 그를 존경하던 후대 작가에 의해 재조명되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다. 기회가 되면 헤밍웨이의 책도 읽어 봐야겠다.





이 책은 7개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그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드라이브 마이 카

2. 예스터데이

3. 독립기관

4. 셰에라자드

5. 기노

6. 사랑하는 잠자

7. 여자 없는 남자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제목인 일곱 번째 여자 없는 남자들 단편은 가장 기억에 남지 않았고, 오히려 첫 번째 단편인 드라이브 마이 카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책장을 덮고 나서야 왜 하루키는 이 책 안에 7개의 단편을 몰아넣어 두고 전체의 제목을 7번째 단편 제목으로 편입했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일곱 개의 단편 모두에는 모종의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스포 주의


첫 번째,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는 미인 여배우였던 아내가 암으로 죽고 난 후 아내가 그동안 잔 남자와 친구가 되는 남편의 이야기이다.

두 번째, 예스터데이는 한 남자의 스무 살 시절을 회상하는 이야기인데, 스무 살 때 아르바이트에서 만나게 된 절친이 남자에게 자신의 여자 친구와 사귀어 보라고 권유하고 어느 날 스스로 종적을 감추어 버린 이야기이다.(왜 그랬는지 그 세세한 이유는 남겨두지 않았지만 그 인물들의 묘한 성격적 특성을 듣다 보면 마법처럼 이해가 되기도 한다.)

세 번째, 독립기관은 가장 마음이 아픈 스토리인데 매력적인 50대 독신 남자 의사가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결국 배신을 당하며 곡기를 끊고 죽는다. 스스로를 무화(無化)시킨다는 것. 보통의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경지일까?

네 번째, 셰에라자드는 하우스라는 곳에 갇혀 사는 하바라라는 남성에게 매일마다 찾아오는 묘령의 여인이 남기는 알쏭달쏭한 이야기와 세상의 유일한 창구인 그 여성과의 친밀한 시간을 잃지 않으려 전전긍긍하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다섯 번째, 기노는 스포츠용품 세일즈맨이었던 남자가 자신의 동료와 바람을 피운 아내와 이혼하고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터전을 잡아 살면서 겪는 기묘한 이야기이다. 서둘러 덮어버린 마음의 상처에 대한 진정한 인정과 치유를 향한 서툰 첫걸음이 인상적이었다.

여섯 번째, 사랑하는 잠자는 카프카의 <변신>을 비틀어 쓴 글인 것 같은데, 바퀴벌레(아마도?)에서 인간으로 변해 어리둥절한 상태의 잠자가 집에 찾아온 꼽추 여인을 만나며 느끼게 되는 사랑의 감정을 썼다. 일반적인 사회적 통념이나 고정관념이 아닌 방금 전 따끈따끈하게 인간이 된 자가 맞닥뜨린 장애를 가진 이에 대한 순수하고 따뜻한 호감을 담았다.

일곱 번째, 여자 없는 남자들에는 과거의 연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상실감에 갇힌 남자의 이야기다.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상실' 이 있다.

그리고 여섯 번째 사랑하는 잠자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주인공들은 여자를 잃는다. 사실상 잠자에서도 꼽추 열쇠공과 잠자가 그 험난한 전쟁통에 재회했을 거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마일드하게 결말을 남겨두긴 했지만 성사되지 않은 그들의 막연한 기약만을 놓고 본다면 그 또한 상실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억지로 끼워 맞춰 본다.


여하튼 내가 이 책을 보고 비 오는 날을 그린 투명한 수채화를 떠올린 이유는 모든 단편들이 무언가 슬프고 어두운 내용들이지만 마음을 착잡하게 만드는 답답함보다는 그들의 상실에 대한 아련함과 그리움을 다정하고 담담하게 풀어내는 하루키 특유의 서술의 여백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마치 꾸물꾸물하고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내리는 투명한 빗물처럼 어찌하지 못하고 맞딱뜨리게 되는 상실의 급작스러움과 냉정함, 그리고 언젠가는 이 비가 끝나게 되리라는 기대가 닮아보인다.





읽으며 무릎을 친 인상 깊은 문장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자식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야." 친구들은 입을 모아 말하지만 그런 허울 좋은 소리는 결코 믿을 게 못된다. 그들은 필시 자신들이 짊어진 무거운 짐을 도카이도 똑같이 지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온 세상 인간들이 자신들과 똑같은 고통을 겪을 의무가 있다고 멋대로 믿고 있을 뿐이다.
 나는 젊은 나이에 결혼했고  이후로  결혼생활을 유지해왔지만 어쩌다 보니 아이가 없기 때문에, 그의 그런 견해가(약간의 도식적 편견과 수사적 과장이 엿보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이해되었다. 거의 맞는 말인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런 비참한 케이스만 있는  아니다.  넓은 세상에는 자식과 부모가 시종 양호한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도-대략 축구경기에서 해트트릭이 나오는 빈도로- 존재한다. 하지만 내가 그런 소수의 행복한 부모 축에   있겠는가 하면 절대 그럴 자신이 없고, 도카이 씨가 그런 부모가  만한 타입이라고도 (도저히) 생각할  없다.
(P.126/ 독립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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