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의 평범하지만 기묘한 13편의 이야기들
대학교 1학년 도서관과 절대 친하지 않았던 내가 우연히 들어가서 처음 빌려 본 책이 김영하 님의 <검은 꽃>이었다. 쉽게 읽히는 책도 아니었고, 조금은 암울하고 찝찝한 내용이었지만 그래도 한 권을 나름 빠른 속도로 읽어내고 난 이후 난 그날로부터 김영하 작가의 팬이 되었다. 아마 이 책도 2010년에 출간되었을 때 바로 사서 읽었을 테니 지금으로부터 벌써 10년 전쯤의 책이구나. 세월 참 빠르다.
어쩌다 브런치를 하게 되면서 차곡차곡 내 서재에 있는 책들을 다시 파 읽고 있다.
기존의 내 머릿속에 있는 책의 감상 정도를 짧게 써 내려도 되지만 희미한 기억을 붙잡고 아는 체 쓰고 싶지도 않았고, 그래도 글 하나에 진정성은 담아야 한다는 이상하고도 강박적인 고집이 발동한 걸까?
최근 내리 김영하 작가님의 책을 연속적으로 쓰고 있는 것 같은데 그만큼 내 손이 쉽게 가 닿는 책 리스트이다.
내 손이 사랑하는 책.
로봇
여행
악어
밀회
명예살인
마코토
아이스크림
조
바다 이야기 1
바다 이야기 2
퀴즈쇼
오늘의 커피
약속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라는 단편 소설에는 총 13개의 작품이 실려있다. 제각각 우리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배경을 하면서도 묘하게 긴장감이 드는 사건이 불쑥 고개를 든다. 읽을 때에는 너무 재밌게 읽어내려 이 책도 순식간에 끝이 나버리는데 아무래도 단편이라 그런지 시간이 흐른 뒤엔 제목만 보고는 이게 무슨 내용이었더라? 하는 경우가 있다.
13개의 이야기 모두 보석처럼 영감을 주는 귀한 글들이지만
그중에서도 로봇과 여행, 마코토, 퀴즈쇼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로봇> 로봇의 3원칙의 딜레마. 그리고 그 딜레마로 인해 로봇과의 사랑을 이루지 못한 여자의 이야기.
<여행> 결혼을 앞둔 옛 여자 친구와 조우한 남자. 그리고 그 남자의 예상치 못한 납치 행각? 그리고 새벽녘 바닷가에서 벌어진 예상치 못한 사고들.
<마코토>그리고 예상을 깨는 발칙하고도 통통 튀는 개성 있는 문체의 마코토. (가장 읽는 맛이 있었다.)
국어국문과에 나타난 일본인 훈남 남학우를 둘러싼 여학우들의 질투, 시샘, 풋풋한 사랑 이야기. 그 가운데 주인공 지영이와 현주의 대립구도와 마지막 딥키스로 예상치 못한 결말을 선사한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
<퀴즈쇼> 퀴즈쇼의 이름으로 김영하 작가님의 장편소설이 있다. 분명히 읽었는데 이 단편에 나온 이야기와 연결되는 이야기였는지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어쩜 이렇게 기억이 흐려질 수가... 어쨌든 이 단편에 등장한 퀴즈쇼 이야기만 봐도 충분히 흥미진진하다.
각각의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나에게 말을 거는 듯하다.
저마다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자신들의 선택에 따라 주어진 현재를 살아가는 이 13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한 동네 사람들 같다.
그래, 어떻게 보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일 거야.라고 생각하다 보니
김영하 작가님의 펜을 통해 쓰이는 나의 일상과 인생은 어떻게 표현될까?
어떤 제목을 붙인 단편이 될까? 문득 궁금해진다.
괜스레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되는 비 오는 날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