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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콤불닭순한맛 Oct 23. 2022

무비토크 #18. 쁘띠마망

드라마, 프랑스, 2021 개봉, 감독: 셀린 시아마

아마도 내가 최근에 본 영화들 중

가장 가을과 잘 어울리는 배경과 감성을 주는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어떤 화려한 기교가 들어가 있는 영상적인 요소나 귓가에 맴도는 배경음악, 명장면이 딱히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데도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뭔가 찡하게 마음을 울려오는 여운이 깊은 영화다.

더욱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 묘하게 닮은 두 어린 소녀이고,

이 두 소녀가 나눈 짧지만 강한 몇 개의 대사가 내 마음을 한없이 휘저어 놓는다. 



<쁘띠마망>은 2020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특히 한국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셀린 시아마 감독의 신작으로 모든 세대가 공감하고 아이의 시선에서 그려낸 그녀 특유의 따뜻한 위로와 공감이 담긴 영화이다.



일단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두 소녀. 

주인공인 넬리는 주로 파란색 계열의 옷을 입고

옆집에 사는 마리옹은 분홍색이나 붉은 계열의 옷을 입은 게 유독 눈에 들어왔다.



'넬리'(조세핀 산스)와 '마리옹'(가브리엘 산스)을 연기한 소녀들은 실제 쌍둥이이다. 

닮은 외모로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지만 스토리 상 이 둘은 우연히 숲 속에서 놀이를 하다 마주치게 되어 친밀해지는 소꿉친구의 관계다.

그러나 잠시 정신을 놓고 있는 사이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엇! 뭔가 이상한데?!" 싶은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찰나,

"어떻게 이럴 수가.!" 하는 놀라움과 의문에 빠져들 때쯤 영화는 끝이 난다.


도대체 내가 뭐를 본거지? 


친구가 된 마리옹의 이름이 넬리의 엄마 이름 마리옹과 같다는 사실이 처음부터 왠지 복선일 것만 같았는데,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와 어떤 가식과 거짓도 없는 순수함에 나도 모르게 젖어가며

그저 엄마 미소를 띠고 보고만 있었다. 




1. 열 아들 부럽지 않은 속 깊은 딸 넬리


지금 보니 이 날의 엄마도 붉은 옷을 입고 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머니와의 마지막 작별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속상하고 미안한 넬리.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시골에 있는 할머니 집으로 엄마와 함께 향하게 된다. 슬픈 엄마를 위해 차 속에서 알뜰살뜰하게 엄마를 챙기는 열 아들 부럽지 않은 속 깊은 딸 넬리의 모습이 이 아이의 캐릭터를 확실히 보여주는 첫 장면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는 유품 정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먼저 떠나버리고 넬리는 아빠와 함께 지낸다. 그러던 중 엄마의 옛날 일기에 등장하는 숲 속 오두막이 궁금하던 차, 공놀이를 하다 숲으로 날아가버린 공을 찾으러 갔다가 자기와 동갑내기인 여덟 살 '마리옹'을 만나게 된다.


2. 엄마와 마리옹의 공통점


컨디션의 온도차가 커서 늘 조심스러운 엄마. 하지만 너무나 사랑하는 엄마.

<쁘띠마망>에서 넬리에게 엄마는 그런 존재이다. 넬리의 몇 마디 대사에도 마음이 쉽게 움직였던 이유는 나의 어린 시절 엄마에 대한 이미지가 넬리와 같았기 때문이었을까? 

젊은 시절부터 몸이 좋지 않았던 우리 엄마처럼 넬리는 늘 엄마의 컨디션을 살폈어야 했고, 자신도 엄마와 같은 유전병이 있어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마리옹'의 고민을 들으며 헤어지지 않고 하루라도 같이 더 놀고 싶은 친구에게 '넬리'는 조심스럽게 비밀 이야기 하나를 건넨다. 


나 비밀이 있어.
내 비밀이면서. 네 비밀이기도 해.

23년의 시간을 거스른 엄마와 딸이 만나는 순간을 

전혀 요란스럽지도, 어떤 특별한 장치도 없이 다만 소녀의 입을 통해 담담히 펼쳐내는 이 감독의 설정이

오히려 감동을 극대화했다고 생각한다. 



3. 사랑의 인사


짧은 시간 동안 넬리와 마리옹은 서로 비밀을 나누고 친구가 된다. 

마리옹의 집에서 하루를 보내며 서로 요리하면서 장난도 치고 저녁엔 생일 파티까지 근사하게 하고 난 후, 다음날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으로 떠나는 엄마, 아니 친구의 마지막까지 함께 한다. 그리고 요양병원에 계시던 중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할머니에게도 잊지 않고 멋지게 작별 인사를 한다. 



동화같이 펼쳐지는 넬리와 마리옹의 소꿉놀이 같이 사랑스럽고 따뜻한 시간들은 

엄마에 건네는 넬리의 가장 순수하고 멋진 사랑의 인사가 아니었을까?



미래의 너에게
과거의 나에게
우린 
이어져있어

 




지금의 나와 같은 나이의 젊은 시절의 엄마가 만난다면 서로에게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까? 

넬리와 마리옹처럼 서로의 아픈 곳을 이해하고,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손길을 내어줄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갑자기 엄마가 생각나는 하루다. 

전화라도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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