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매콤불닭순한맛 Feb 15. 2023

[겨울/우정여행] 제주도 여행 4일차_정성에 대한 고찰

제주비, 사려니숲길, 바굥식당, 서귀포 위미리


1. 제주비 첫날 조식


4일 차 아침이 되었다. 전 날 체크인 하면서 이 숙소에서 제공되는 조식의 수준을 몰랐다.

주인장 분께서 "내일 조식은 드릴까요?" 물어보았을 때 살짝 망설였다. 어차피 아침을 잘 먹지도 않고 여기까지 왔는데 제주 음식을 먹는 게 낫지 않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지어 조식 비용은 따로 숙소 비용에 포함된 것도 아닌 서비스로 제공되는 거여서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었다.

그렇지만 여기 조식도 궁금해서 하루쯤은 먹어보자고 결정하고 먹겠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아침 8시 반 정도에 손수 준비해서 배달해 주신 조식의 퀄리티가 너무 놀랍다.


솔직히 나는

이번의 제주 여행의 화룡점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제주 여행이 '힐링'으로 물든 바로 그 시점은 아침 조식을 받아 들었을 때이다.

별 거 아닌 음식일 수 있지만 넉넉한 양과 예쁜 디스플레이에 한 번 놀라고, 정성스러움에 두 번 놀랐다.

정.성.

이 조식 쟁반에 들어있는 각양 각색의 열매와 과일, 그리고 조심스레 놓인 플레이팅 하나하나에서

정성을 느꼈다.

내가 과연 나의 음식에도 이렇게 정성을 기울일 수 있을까?

내가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손길에 이런 정성을 기울인 적이 있는가?

내가 하는 일에 이런 조식 쟁반의 음식처럼 정성껏 한 적이 있는가?


따스하고 정다운 기운

이것은 먼 데 있는 게 아니구나.

이 조식 한 상에서 여러 가지를 읽고 느꼈다.

내가 그동안 해보지 못한 상대에게 내어주는 따뜻하고도 다정한 정성을...

그리고 이렇게나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한 컷을 찍었다.

물론 조식을 받아 들고 우리는 엄청나게 호들갑을 떨면서 먹기 전 사진 100장은 찍은 것 같다.

이 사진 하나로 내 마음의 무언가가 채워졌다.

먹지 않겠다던 조식에서 가장 중요한 보석을 얻었다.

힐링이다.





 

2. 펜션에서 쉬기


야무지게 조식을 먹고 오늘부터 내일까지의 이틀은 최대한 펜션에서 여유롭게 머무르며

주변 한 두 곳만 가기로 마음먹었다.

이곳이 너무 아늑하고 예뻤기 때문에 밖으로만 나다니기 조금 아쉬웠다.

주인장 분들도 여자 둘이 와서 왜 차가 밖으로 나가지 않고 주차장에 계속 주차만 되어있는지 의아하셨는지

떠나는 날 많이 안 돌아다니시는 것 같다고 갸우뚱하셨다.


"네, 저희는 이번 여행에 작정하고 쉬러 왔거든요. :)"


넓지 않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정원에서 이렇게 저렇게 사진도 찍고 오전 한 때를 보낸다.

그래도 오늘은 날씨가 화창한 편






3. 사려니숲길



둘 다 아침형 인간이라 펜션에서 아무리 놀아도 오전 시간이 남았다.

매일 시시각각 변하는 제주 날씨이기에 우리는 날씨 좋을 때 빨리 사려니숲길을 가보기로 했다.

사려니숲길은 엄청 유명한 곳인데도 매 번 제주 여행 때마다 나나 조민이나 둘 다 놓쳤던 곳이다.

무슨 일인지 매번 가려고 하면 폭설로 통제되거나 사람이 너무 많아서 딱히 가고 싶지는 않았는데 이번엔 마침 펜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가보기로 도전.


사려니숲길이라고 검색하면 두 곳이 나오는데

그중 붉은오름 입구 쪽으로 가야 주차자리가 좋다고 해서 이쪽으로 왔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이미 주차를 하고 들어가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엄청난 인파는 아니었다.


작년에는 제주도 여행이 성황이었는데 올해부터 해외여행이 전격 풀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일본, 베트남, 유럽 등지로 해외여행을 많이 떠났다.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제주도는 사람이 별로 없는 느낌이다.  

제주의 비경 31곳 중 하나라고 하더니 정말 그 이름처럼 신비롭고 웅장하다.

하늘로 곧게 뻗은 빽빽한 삼나무 숲 냄새가 내 몸과 정신을 정화하는 듯하다.

오히려 숲 속으로 들어오니 바람을 막아줘서 인지 별로 춥지 않았고, 엄청나게 큰 고사리들이 군락을 이뤄 땅에 막 자라고 있었는데 너무 자연친화적이라 그 모습이 생경했다.


갑자기 어디선가 멧돼지가 튀어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4. 바굥식당


사려니숲을 크게 걸으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고 우리가 한 코스를 다 돌았을 즈음 갑자기 눈이 펄펄 내리기 시작해서 곧장 차로 내려왔다.


배가 그렇게 많이 고프진 않았지만 숙소 근처에 하루 30인분만 판다는 식당이 있어서 소진되기 전에 얼른 가보기로 했다.

그 이름도 특이한 '바굥식당' 아마도 주인장 이름이 박용 씨가 아닌가 짐작해 본다.

어쨌든 숙소에 차를 두고 슬슬 걸어서 3분 거리에 있길래 간판을 찾았는데 어디에도 바굥식당은 나오지 않았다. 식당 앞에 가보니 간판은 무슨 물산 간판이 내걸려 있고 건물도 오래된 2층짜리 건물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유리창에 바굥식당이라고 붙어 있어서 냉큼 들어갔다.

다행히 자리가 한 자리 남아서 운 좋게 앉을 수 있었다.

거의 우리가 마지막 팀이었던 것 같다.



굉장히 빈티지스러운 식기들과 인테리어. 특색있다.


여기는 또 매일매일 메뉴가 주인장 마음대로 정해진다.

이 날의 바굥식당 정식은 (12000원)


우삼겹 포두부 샐러드(중화풍 소스)

참깨소스 연두부, 오징어젓갈, 미역줄기볶음, 배추김치, 흑미밥, 콩나물국

모든 음식의 맛이 적절하고 도가 지나치지 않는다.

생각보다 양도 많고 적당해서 둘 다 밥 한 그릇, 반찬을 남김없이 싹쓸이했다.

하루에 30인분만 팔고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본인의 시간인 것 같은데 저렇게 사는 삶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젊은 총각이었는데 대단하다 싶었다.

나도 나중에 은퇴하면 이렇게 살아볼까?





5. LABAS BOOKS  & hiker haus VOVO


밥을 먹고 나와서 보니 이 식당 옆에 세 개의 점포가 주르륵 있는데 이곳이 서귀포 위미리의 핫 플레이스였다.

간판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서 못 알아봤는데 검색해 보니 옆의 라바스 북스는 재미있는 소품과 팬시류, 중고서적과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많이 있는 곳 같아서 한번 가고 싶었는데 문이 닫혔다. ㅠㅠ

오늘은 아쉽게도 휴무

소심하게 들여다보는 아녀자

그런데 그 옆 상가는 오픈이라고 되어있는데 외관만 봐서는 도저히 뭘 하는 곳인지 모르겠다.

자세히 읽어보니 카페라고 되어있긴 한데 바이커 카페??

바이커들만 오는 덴가? 일단 용기를 내어 들어가 보기로 한다.

들어가서 민망하면 커피나 테이크아웃해오자 싶었는데

막상 들어가니 여기도 재미있는 물건 천국

마치 원래 이 물건들을 사러 온 사람처럼 이리저리 둘러보고 사진 찍고 구경했다.

대부분 자전거 용품과 기능성 옷, 가방, 모자 등을 판매했다.

카페라기보다는 정말 바이커들의 성지였다.

여기에서 나도 마침 평소에 사고 싶었던 형태의 기능성 미니 백을 구입했다.

조그마해서 다양한 액티비티 활동에 많이 활용될 것 같다.

산 갈 때 매고 가야지~


6. 위미리 동네 산책


밥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숙소 근처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보기로 한다.

날씨가 포근하고 심지어 봄날씨처럼 더웠다.


계속 걷다 보니 건축학개론에 등장한 서연의 집 카페도 보았다.

한 때 줄을 서서 들어갈 정도로 엄청난 인기였다고 하는데 이제 세월이 가니 그 인기도 시들한가 보다.

사람이 없었다.

바닷가라 그런지 고양이들이 많다.

제주 올레길 코스 중 하나.

다시 숙소로 컴백하니 또 이렇게 귀여운 냥이들이 반겨준다.







7. 동네 카페 도바나



오늘의 콘셉트는 진정한 로컬 사람인가?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보니 카페가 가고 싶어 졌다.

그렇다고 사람 많은 대형 카페는 이제 좀 질리고 조용하고 한적한 작은 동네 카페에 가고 싶어 졌다.


그러다가 찾은 말차 전문점.

이곳에서는 말차오름과 말차티라미수가 유명하다길래 진한 말차 맛을 느끼기 위해 시켜보았다.

오우, 마치 오설록에서나 볼 법한 비주얼.

맛만 괜찮으면 성공인데 진짜 진하고 인위적인 맛이 하나도 없는 찐 말차 맛집 맞다.

둘이 나란히 앉아서 별 말을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느새 해가 가리고 구름이 드리운다.

겨울은 날이 빨리 저물어서 좀 아쉽다.



8. 동네 떡볶이집-저녁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저녁으로 먹을 떡볶이와 어묵 두 개를 사간다.

저녁은 늘 이렇게 소박하다.

펜션에서 가장 좋아하는 테이블에 앉아 뉘엿뉘엿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저녁 먹어야지

그리고 뒹굴뒹굴하다가 밤에는 '나는 솔로'를 봐야지.

어쩌다가 나는 '나는 솔로' 애청자가 되었고, 이 날 나와 같이 처음 이 프로그램을 본 조민은 이날부로  '나는 솔로' 애청자가 되었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인간군상이 사는구나...



이렇게 오늘의 소박한 하루가 마무리된다.

아침 조식의 힐링 샤워가 하루가 넘게 가다니 너무나도 인상 깊은 감정이다.

프사부터 바꿔놓아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겨울/우정여행] 제주도 여행 3일차_예쁜 하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