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 수도 있었던 나를 떠나는 연습

가능성에 중독된 사람들에 대하여

by 야옹이


가끔은 그 말이 무섭다.
"넌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말이 꼭 축복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나를 실제로 '하지 않는 사람'으로 붙잡아둘 때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에 기대어
실제로 ‘되려고 하지 않는’ 이상한 평형 상태에서 살아간다.
가능성은 위안이고, 핑계며,
무언가를 감추는 훌륭한 포장지다.

"언젠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시간만 있으면 소설 한 편쯤 쓸 수 있죠."
"사실 디자인 쪽으로 나가고 싶긴 해요."

이런 말들은 미래를 향한 선언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지금을 피하는 기술일지도 모른다.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가능성 있는 상태’에 머문다.
될 수도 있다는 말은
되기 전까지는 나를 지켜주는 방패 같지만,
사실 그건 언제까지나 준비만 하겠다는 자기 합의서일 뿐이다.

사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안다.
지금의 실력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아마추어들 사이에서도 애매하다는 걸.
하지만 그걸 인정하기란 너무나 두렵다.
진짜 나’를 세상에 꺼내는 순간,
그 가능성이라는 보호막은 사라지고,
평가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자기 꿈을 말하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실패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실패한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이 상태는 어떤 면에서
정신적 유아기에 가깝다.
도전하지 않으면
현실의 벽에도, 나의 한계에도
부딪힐 필요가 없다.

그러니 ‘될 수도 있는 나’에 중독된 사람들은
도전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직도,
‘언젠가’가 현실을 바꿔줄 거라고 믿는다.

이 중독은 예술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수능에만 중독된 사람
몇 년째 공무원 시험만 준비하는 사람
자격증만 따고 또 따는 사람
전공을 계속 바꾸고, 직업을 바꾸는 사람들

그들은 ‘기회가 없었다’고 말하지만,
실은 ‘기회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는 쪽에 가깝다.
그들은 가능성이라는 망상적 자아에 몰입한 채
실제 삶과의 거리를 점점 넓혀간다.

가장 무서운 건,
스스로도 알고 있다는 사실

“나는 안 될지도 모른다.”
“내가 그리 잘하지는 못한다.”
그 진실은 이미 마음속 어딘가에 있다.
그래서 주변에서 아무리 조언해도,
혼내도, 독려해도 바뀌지 않는다.

사실은 안다.
단지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을 뿐이다.


가능성의 마취에서 깨어나려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행동.
아주 사소한 실행.
그리고 그 실행을 통한 낙담과 재정비.

사람은
생각으로는 가능하지만, 행동으로는 안 되는 자신’을 마주할 때,
비로소 다시 태어난다.
거기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무너진 자리에서,
진짜 가능성 아닌 현실의 발판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연습해야 한다
될 수도 있었던 나를 떠나는 연습.
말 대신, 행동하는 연습.
‘가능성’이라는 자기 위로를
‘결과’라는 작지만 확실한 걸음으로 바꾸는 연습.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속이지 않는 것.
그 정직함이 있어야만,
가능성이라는 감옥에서
비로소 문이 열린다.

Born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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