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왜 늙지 않는가

by 야옹이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
거울 속에서 희미하게 변해가는 얼굴선,
계단을 오르며 숨이 차는 순간,
달력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숫자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몸은 분명히 늙고, 시간은 공평하게 흐른다.

그런데 이상하다.
기억 속 어떤 장면들은 세월의 법칙에 굴복하지 않는다.
오래전 식탁에서 터져 나온 웃음,
첫사랑을 마주할 때의 불안한 설렘,
비 오는 날 함께 뛰어가며 나눴던 대화 같은 것들.
그 순간들은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다.
마치 시간이 거기만큼은 멈춘 듯,
세월의 먼지가 쌓이지 않는다.

기억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다

기억은 과거를 보관하는 상자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좋았던 기억은 나를 위로하고,
아픈 기억은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그래서 어떤 기억들은 시간이 흘러도 낡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은 빛깔로 변한다.

인간은 삶의 작은 순간들 속에서 의미를 발견한다.
그 순간들이 모여 우리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다.
따라서 기억은 단순히 지나간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 속에서 작동하는 살아 있는 시간이다.

늙지 않는 것은 진심이다

세월이 닿지 못하는 기억의 특징은 하나다.
그 안에 진심이 담겨 있다는 것.
억지로 꾸며낸 장면,
의무로 만든 웃음은 금세 희미해진다.
그러나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
그때 진심으로 나눈 교감은
십 년, 이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사람은 늙지만,
진심은 늙지 않는다.
기억은 바로 그 진심이 남겨둔 흔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젊음을 되찾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짜 젊음을 지켜주는 건 나이가 아니라,
젊음을 느끼게 하는 순간들이다.
그 순간들이 기억으로 남을 때,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서도 늙지 않을 수 있다.

기억은 늙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심은 세월을 이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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