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감정만 없애달라는 건, 공정하지 않다

감정을 떠나보내는 방식에 대하여

by 야옹이


인간은 고양이처럼 감정을 툭툭 털고 일어나는 존재가 아니다.
고양이는 잠시 화를 내다가도, 몇 분 후면 아무 일 없던 듯 골골 소리를 낸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우리는 감정을 저장하고, 반복하고, 분석하며,
때로는 무의식 깊은 곳에 감춰둔 채 살아간다.

감정은 시간이 지났다고 자연스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정리되지 않으면,
그 잔재는 우리 안에 삼스카라(Samskara)
마음속 깊이 새겨진 정서적 흔적이 되어
언제든 현재를 오염시키는 과거로 다시 떠오르곤 한다.


감정을 없애려면, 감정 전체를 마주해야 한다

우리는 때로 이런 말을 듣는다.
“그때는 미안했어. 그냥 나쁜 감정은 잊어줘.”
하지만 정말 공정하게 말하자면,
그렇게 나쁜 감정만 지우려면,
그와 짝을 이루던 좋은 감정 역시 함께 보내야 한다.

감정은 늘 쌍을 이룬다.
기억 속에서 어떤 한 감정만을 따로 떼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쁨이 있던 자리에 슬픔도 있었고,
사랑이 피어났던 순간에 실망도 함께 자랐다.
한쪽만 지우면, 균형이 깨진다.
그리고 마음은 더 혼란스러워진다.



감정 페어링 – 균형을 회복하는 마음의 기술

그래서 나는 하나의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름하자면, 감정 페어링.
좋았던 감정과 나빴던 감정을 하나의 짝으로 묶어,
하나의 꾸러미처럼 만들어 떠나보내는 것.

억지로 긍정만 붙잡거나,
억지로 부정만 억누르지 않고,
서로의 무게에 맞게 감정을 페어링(pairing)해서 보내는 것이다.

"너와 함께 했던 따뜻한 기억도,
그 속에서 쌓인 아픔도,
모두 인정하고, 함께 보내줄게."

이 방식은 단지 이별을 위한 기법이 아니라,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정리하는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다.


감정 페어링은 관계의 미세 조정에도 유용하다

내가 누군가에게 너무 고마워서 감당이 안 될 때,
혹은 미안함이 너무 커서 마음이 무너질 때
그 감정을 그냥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반대 감정을 함께 페어링 하면
균형을 되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상대에게 미안한 일이 있다면,
그가 내게 베풀어준 고마움과
내가 그에게 전했던 애정의 무게를 같이 저울에 올려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상대에 대한 감정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고,
스스로를 덜 자책하거나 덜 과장하며,
훨씬 더 건강한 방식으로 관계를 지속할 수 있게 된다.


고양이는 감정을 휘발하지만, 인간은 감정을 구조화한다

우리는 고양이처럼 감정을 완전히 털어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감정을 균형 있게 구조화하고 떠나보낼 수는 있다.
이건 우리가 가진 가장 인간적인 기술 중 하나다.

감정 페어링은
기억을 억지로 지우려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무게를 공정하게 덜어내는 일이다.

삼스카라를 줄이고,
균형을 회복하며,
더 이상 과거에 이끌리지 않는
자유로운 내면을 위한 연습.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혹시 지금,
마음 어딘가에 정리되지 못한 감정이 남아 있다면
그 안에 있는 짝을 먼저 찾아보자.
고마움과 미안함, 기쁨과 슬픔, 애정과 실망..
그 감정은 혼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둘을 함께 보내줄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조금은 고양이를 닮은
가벼운 이별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요한 균형,
그것이 오늘 우리의 치유가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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