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어버이날.
거리는 붉은 카네이션으로 물들고,
SNS에는 “부모님 감사합니다”라는 말들이 줄지어 올라온다.
누군가는 그 화사함에 미소를 짓고,
누군가는 조용히 휴대폰을 꺼둔다.
나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
묘한 정서적 피로감을 느낀다.
왜일까.
사랑보다 먼저 떠오르는 단어: ‘역할’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마음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감정보다도
의무와 역할의 그림자일 수도 있다.
“올해는 뭐 해드려야 하지?”
“문자라도 보내야 하나…”
“이번에도 어색하게 지나가겠지.”
사랑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감정을 꺼내기보다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정서적 각본이 먼저 펼쳐진다.
그건 어느 순간
진심의 온도를
조용히 무디게 만든다.
감사를 말하지만, 감정은 비껴간다
“감사합니다.”
이 말은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복잡한 감정의 포장지다.
우리는 자주
감사를 진심으로 말하는 대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의례처럼 사용한다.
그 말은 편리하지만,
때로는 진심을 가린다.
때로는 부채감을 덜어내는 장치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말이
정서적 교환이 되지 않을 때,
관계는 천천히 피로해진다.
“가족끼리 뭐…”
“매년 똑같지.”
“그냥 인사니까.”
이런 말들은
감정을 회피하면서
형식을 정당화하는 문장들이다.
감정을 강요당하는 날
어버이날이 피로한 진짜 이유는
감정을 ‘표현해야만 하는 날’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날엔
감사를 보여야 하고
가족으로서의 역할을 다시 수행해야 하며
사랑을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감정은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다.
“부모니까 무조건 고마워야지”
“자식이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
이런 말들은
지금의 내 감정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걸
말하지 못하게 만든다.
진짜 가족은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사랑은 날짜로 증명되지 않는다.
감정은 정해진 방식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어버이날이 피로한 건
우리가 ‘부모’와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너무 오래, 고정된 위치에 가두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구조를
조금씩 흔들어야 한다.
부모도 말 못할 외로움이 있고,
자식도 다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이 있다.
가끔은,
그 마음들이 어긋나고,
전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인정이
어떤 선물보다 더 진심에 가까운 교감이 될지도 모른다.
말보다
형식보다
꽃보다 먼저,
서로의 ‘지금 감정’을 묻는 일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