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넘칠 때 상처가 된다
사랑은 아름다운 감정이다.
그러나 때때로 그 사랑은
누군가의 어깨에 부담이라는 이름으로 내려앉는다.
“너를 위해서야.”
“나는 너밖에 없어.”
“왜 너는 나만큼 주지 않는 거야?”
이런 말들은 마음의 진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상대의 감정 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흘러갈 때,
그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다.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할 때,
우리는 자주 자기 방식의 사랑만을 퍼붓는다.
그러다 그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좌절하고, 의심하고, 억울해하고, 분노한다.
그러나 그건 상대가 사랑을 거절한 게 아니다.
그저 받을 준비가 안 된 것,
혹은 다른 방식으로 받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감정은 흐른다.
그런데 그 흐름에는 압력이 있다.
압력이 너무 높으면,
그 물은 더 깊이 스며드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밀어낸다.
사랑이 부담이 되는 순간이란,
바로 이 유압이 조절되지 않고
상대를 통과하지 못한 채 관계를 밀어붙이는 순간이다.
내가 가진 감정의 크기와
상대가 감당할 수 있는 통로의 크기는 다르다.
한쪽이 100을 주고 싶어도,
다른 쪽이 받을 수 있는 건 30일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건 감정의 ‘자제’가 아니라,
조율이다.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사랑을 덜 주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주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떤 사람은 매일 연락해야 안심이 되고,
어떤 사람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때 편하다.
어떤 사람은 끊임없이 표현하는 사랑을 원하고,
어떤 사람은 조용한 헌신으로 마음을 전한다.
이러한 차이를 모르고
‘내가 주는 만큼 너도 줘야 해’라고 말하면,
그 사랑은 균형이 아니라 압박이 된다.
나는 이제
사랑이 부담이 되는 순간을
‘사랑이 과한 순간’이 아니라,
사랑의 설계가 어긋난 순간으로 본다.
모든 사랑은 아름다울 수 있지만,
모든 사랑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랑은 다 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얼마나 주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흐르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때론 감정을 줄이는 게 아니라,
속도를 늦추고 방향을 바꾸는 것이
더 큰 사랑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의
수로 설계도를 조심스럽게 들여다본다.
그 사람의 감정 온도, 수용 속도,
기억의 흐름, 무너졌던 수로의 흔적들.
그 모든 것을 고려한 후에야
나는 조심스레 마음의 밸브를 연다.
진심이 꼭 넘쳐야만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론 아주 작은 물방울이
가장 깊이 스며들기도 한다.
사랑은 결국,
상대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흘려보내는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