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크리스마스까지 5일이 남았다. 진아는 올해도 쓸쓸한 솔로의 밤을 보낼 순 없다고 생각하며, 인터뷰 보강 핑계를 대고 오늘은 박지훈과 저녁을 먹을 생각으로 아침부터 치장이 요란했다.
업무시간이 되자마자 진아는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저 유진압니다." "아... 네." "저 오늘 저녁, 저희가 오늘 저녁까지 꼭 마감을 해야 하는데 몇 가지 더 보충이 필요해서요?" 진아는 그러면 아.. 네, 이럴 줄 알았는데 들려오는 소리는 "어.. 이거 어쩌죠? 저 오늘 약속이 있는데..." "그럼 그 사람도 소개해 드릴 겸 저희 식사 함께 할까요?"
진아는 속으로 '아싸!'를 외치며, "네, 그것도 괜찮아요."라고 대답하고, 장소는 문자로 보내겠다고 했다.
오후 내내 진아는 들떠 있었고 동료들은 진아가 오늘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것이라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드디어 6시가 되자 진아는 마치 미사일처럼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약속장소에 가기 전 미용실을 잠깐 들러 머리를 다듬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약속장소. 박지훈이 추천한 장소는 최고급 와인 레스토랑이었다.
도착했을 때 박지훈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약 5분을 기다리는데 박지훈이 들어섰다. 진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훈에게 신호했다. 지훈도 손을 들어 인사를 했는데 지훈의 시선이 진아를 보고 있지 않았다. 잠시 후 박 차장이 먼저 간 곳은 다른 여자의 테이블! 거기서 잠깐의 스킵을 하고는 박 차장이 다가온다.
"아... 유기자님! 제가 좀 늦었죠? 저희 저쪽으로 합석할까요?"
잠시 후
"유기자님? 여긴 박민희 변호사, 여긴 유진아 기자님 서로 인사 나누시죠?"
진아의 들뜬 마음은 완전히 사라지고 입맛마저 씁쓸해졌다. 잠시 후 진아는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줄행랑을 친다.
몇 분이 흘렀을까? 방향도 없이 그냥 걷고 있는데 박지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세요? 저희 주문하려는데?"
"아... 제가 지금 막 급하게 사무실 전화를 받고 급하게 들어가면서 전화 못 드렸네요! 그냥 이 정도 분량으로 처리한답니다. 저녁 맛있게 드세요!"
박지훈은 "아.. 네 아쉽네요." 라며 조심해 들어가라고 말했다.
겨울바람이 더 차갑게 진아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진아는 그냥 지하철로 향했고, 만원 지하철에 몸을 기대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고개 숙인 진아의 눈에 들어오는 성추행범의 나쁜 손이 진아의 눈에 들어왔다. 순간 진아는 성추행범의 발등을 하이힐로 세게 밟아 버렸다. 범인의 비명과 함께 지하철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범인을 잡아 다음역에서 다른 승객들과 함께 내렸고, 잠시 후 지하철 수사대에 인계하고서야 진아는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양복을 입은 검은 안경을 쓴 사람이 끝까지 남아 있었다.
진아가 고맙다고 수고했다며 인사하고 돌아서려는데 남자가 말했다.
"저... 어디 가서 고생했으니 치맥이나 한 잔 하실까요?"
진아는 오늘 기분도 그렇고 해서 바로 "그래요. 그러죠 뭐"라며 지하철을 빠져나와 가까운 맥주집으로 들어갔다. 술집에는 이미 연말 분위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뭘로 하시겠어요?" "아 예, 그냥 생맥주 한 잔 하죠 뭐." "안주는?" "전 뭐 다 괜찮아요."
남자는 잠깐 고민하더니 "그러면 한치와 땅콩을 시켰다." 진아는 저녁도 안 먹은 터라 내심 치킨을 시키길 바랐지만 남자는 한치와 땅콩을 시켰다.
"아... 전 최민기라고 합니다. 아까 전 완전히 반했잖아요. 어쩜 저렇게 용감하실 수가 있을까? 저는 먼저 봤는데도 무서워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진아는 "아 예, "라며 먼저 나온 과자른 한 개 입에 넣을 때 남자에게 전화가 왔다. 남자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잠시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다."라며 바깥으로 나갔다. 창밖으로 보이는 남자는 왠지 당황하는 게 역력했다. 남자가 이내 들어오더니
"저 이거 어쩌죠? 애가 갑자기 많이 열이 난다네요?"
남자가 명함을 내민다.
"그렇게 막 들이대시기 전에 꼭 상해보험 들어 놓으시고 하는 게 좋으시니 한 번 연락 주세요."
계산은 제가 하고 가겠습니다.
진아는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하며 모든 인생의 화가 다 올라왔다. 동시에 도착하는 생맥주 두 잔과 한치. 진아는 오늘 밤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