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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함께 걷는 일

by 이문웅

두려움은 인간이 겪은 최초의 적이었다.

태초부터 인간은 두려움을 안고 살았다.

밤의 어둠 속에서,

짐승의 울음소리 앞에서,

멈추지 않는 죽음의 기척 앞에서,

인간은 두려움을 배웠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오늘까지도,

단 한 순간도 인간을 떠난 적이 없다.

누구도 두려움 없이 태어나지 않는다.


두려움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누군가는 그 두려움을 숨기고,

누군가는 그 두려움을 외면하고,

또 누군가는 그 두려움을 끌어안은 채

그냥, 묵묵히 걸어간다.


나는 한때, 두려움을 없애야만

제대로 살 수 있다고 믿었다.

두려움을 밀어내고,

이겨내고,

그렇게 완벽히 지워버리는 게

용기라고 생각했다.


두려움은 약함의 증거고,

두려움을 느낀다는 건

내가 실패한 사람이라는 뜻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살아보니,

두려움은 지워지지 않았다.

억지로 없애려 할수록 더 짙어졌다.


피한다고 사라지지 않았고,

애써 모른 척해도

어둠이 깊어지는 순간엔

두려움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다.


플라톤은 말했다.

“두려움 없는 삶은 환상이다.”

두려움은 인간이 가진

가장 본능적인 감각이다.

두려움을 느낄 수 있기에,

우리는 더 신중해지고,

더 깊이 돌아보고,

때로는 멈출 줄도 안다.


토마스 홉스는 두려움을

사회와 질서의 시작으로 봤다.

그는 말했다.

“두려움이 없었다면,

인간은 서로를 파괴하는 야수로 남았을 것이다.”

두려움은 인간을 약하게도 만들지만,

그 약함을 인정할 줄 알 때,

공동체가 시작된다.


두려움을 모른 척하는 사람보다,

두려움을 아는 사람이

더 단단해지는 이유다.

두려움은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우기도 한다.

두려움 속에서 우리는

더 나은 방법을 찾고,

더 깊이 스스로를 돌아본다.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보다,

두려움을 인정한 사람이

오히려 멀리 걷는다.


에픽테토스는 말했다.

“두려움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 할 때 시작된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할 때,

두려움은 조금씩 작아진다.

나는 이제 두려움을 적처럼 여기지 않는다.

두려움은 내 약함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무감각한 사람은 두려움도 없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두려움이 있다는 건

내가 아직,

무엇인가를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다.

두려움이 있다는 건

나는 아직,

실패를 두려워하지만,

성공을 바라고 있다는 뜻이다.


상처받을까 두렵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다.

잃을까 두렵지만,

내가 가진 것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두려움을 없애려 하지 않는다.

두려움과 함께 걷는다.

두려움은 따라오고,

나는 앞을 향해 걷는다.


비틀거리는 날도 있고,

잠시 멈춰 숨을 고르는 날도 있다.

그렇다고 멈추지 않는다.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니라,

두려움을 끌어안고도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게 아마

살아가는 법인지도 모른다.

철학자들은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려움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인간의 본질을 찾으려 했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척 사는 건

멋있어 보일지 몰라도,

결국 더 큰 공허를 남긴다.

진짜 용기는

두려움을 지워버리는 게 아니라,

그 두려움을 인정하고도

포기하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두려움과 함께 걷는다.

내 안의 작은 흔들림을 숨기지 않고,

내일을 두려워하면서도,

다시,

천천히

앞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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