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쁨은 언제 찾아오는가?

by 이문웅

2니체는 말했다.

“삶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만이

고통을 뚫고 진짜 기쁨을 알 수 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땐,

그저 멋있는 문장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내 삶에 고통이 쌓이고,

그 고통을 끌어안고도 포기하지 않은 어느 날,

그 말이 조금은 몸으로 와 닿는다.


기쁨은 고통 없는 평탄한 길 위에 떨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상처를 견디고,

불안과 흔들림을 통과한 사람 앞에

기쁨은 비로소 얼굴을 내민다.

어릴 적엔 기쁨이 쉬웠다.

새 신발을 신으면 기뻤고,

하늘에 무지개가 뜨면 세상이 다 내 것 같았다.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기쁨은 점점 멀어졌다.

세상이 커질수록 기대도 커지고,

기대가 커지면 실망도 커지고,

기쁨은 자꾸만 숨는다.

마음이 복잡해지고,

계산이 늘어나고,

손익을 따지는 사이

기쁨은 어느새 내 곁을 비켜간다.


살아보니 기쁨은 대단한 일에 있지 않았다.

누군가는 큰돈을 벌고,

누군가는 높은 자리에 올라서며

그걸 기쁨이라 부르지만,

나는 멀리서 지켜보며 알았다.

그 모든 것이

기쁨을 오래 붙잡아두지 않는다는 걸.

잠깐의 흥분 뒤엔

허전함만 남는다.

기쁨은 그런 게 아니다.

진짜 기쁨은 사소한 곳에 숨어 있다.

비 온 뒤 갠 하늘 아래서,

걷다 멈춰선 골목 끝에 바람이 스칠 때,

오랜만에 울지 않는 새벽을 맞을 때,

기쁨은 아무 말 없이 다가온다.

커피 한 잔의 온기,

누군가의 짧은 안부,

그냥 살아 있다는 사실 그 자체—

그 속에 기쁨은 숨는다.


니체는 기쁨을 말할 때

고통을 빼놓지 않았다.

기쁨은 고통을 뚫고 얻는,

일종의 증명이다.

고통 없는 기쁨은

깊지 않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에게

기쁨은 찾아가지 않는다.

스피노자는 기쁨을

존재가 확장될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상태라 했다.

내가 흔들리지 않고,

상처를 감추지 않고,

부서진 나를 그대로 껴안고 살아가는 동안,

내 안의 무언가가 조금씩 넓어질 때,

기쁨은 따라온다.


그렇게 보면,

기쁨은 누가 만들어주는 선물이 아니다.

스스로 버티고,

스스로 견디고,

상처를 이겨낸 그 사람 안에

조용히 뿌리를 내린다.


살다 보면 종종 묻는다.

기쁨은 도대체 언제 찾아오는가.

그럴 때마다 이제는 안다.

기쁨은

찾으려고 애쓸수록 멀어지고,

포기하지 않고 견디는 사이

슬며시 옆에 머문다.


기쁨은 결국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내가 충분히 흔들리고도

아직 사람으로 남아 있다는 작은 흔적이다.


그리고 이제야 조금씩 깨닫는다.

기쁨은 결국

존재의 이유로 다가오는

감사하는 마음에서 찾아온다.

keyword
화, 목, 토, 일 연재
이전 12화분노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