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외롭게 태어나고,
외롭게 죽는다.
그래서 결국,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 말했다.
사람이 사람 없이 살 수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 말 속에는 역설도 있다.
필사적으로 사람을 찾는 이유는,
본능적으로 느끼는 고독 때문인지도 모른다.
장 폴 사르트르는 말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홀로 던져진 존재다.”
태어날 때도,
죽을 때도,
아무도 함께 갈 수 없다.
사람들은 곁에 있어도,
마음 깊은 곳의 외로움만큼은
결국 스스로 견뎌야 한다.
외로움은 차갑다.
사람들이 등을 돌린 뒤에 남겨진 자리,
모두가 각자의 길로 떠난 뒤의 방,
말이 사라진 공간엔
차가운 공기만 맴도는 것 같다.
그런데 오래 살아보니
외로움이 꼭 차갑기만 한 건 아니었다.
외로움에도 묘한 온기가 있다.
헤겔은 말했다.
“의식은 타자와의 긴장 속에서만 스스로를 확인한다.”
다른 사람과 부딪히고,
때로는 멀어지고,
그렇게 비워진 자리가
오히려 나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외로움 속에 머무는 그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내가 누군지 끝까지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젊을 땐 외로움을 견디지 못했다.
빈 공간을 채우려고
낯선 인연에도 매달렸고,
그럴수록 더 깊은 상처가 남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다.
이젠 안다.
모든 빈자리를
억지로 채울 필요는 없다는 걸.
어떤 외로움은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걸.
가만히 혼자 남겨진 시간 속에서,
처음엔 차갑기만 했던 외로움은
서서히 온기를 품는다.
그 온기는
사람의 체온에서만 오는 게 아니다.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
고요히 머무는 시간,
아무도 없는 길 끝에 비치는 햇살,
그런 작은 순간들이
외로움 속에 숨어 있던 온기를 깨운다.
물론 외로움이 늘 따뜻한 건 아니다.
어떤 외로움은
진짜 뼛속까지 시리다.
하지만 끝까지 피하지 않고
그 외로움을 견딜 수 있다면,
그 안에서 분명히
작은 온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온기를 알아차리는 순간,
나는 혼자라는 사실이
두렵지 않다.
나는 그냥 인간이라는
본질을 조금 더 정확히 이해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게 태어나
외롭게 죽는다.
그래서 외로운 존재다.
그 외로움을 부정하지 않을 때,
그 안에 온기도,
조용한 평화도,
조금씩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