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G)가 결여된 혁명들(2/7)

미얀마 민주화운동

by 감각의 풍경

2.1 미얀마 – 군부 쿠데타 이후의 분노

미얀마 혁명 시위 현장, 출처: wikimedia

2021년 2월 1일,

미얀마 군부는 총선을 통해 재집권한 아웅산 수치의

국민민주연맹(NLD) 정부를 강제로 해산시키고,

정권을 장악했다.


그날 이후 수많은 미얀마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고,

세계는 다시 광장의 불꽃을 보았다.


교사, 의사, 노동자, 수도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이 '시민불복종운동

(Civil Disobedience Movement)'에 참여했고,

SNS를 중심으로 저항의 이미지가 확산되었다.

미얀마 혁명 시위 현장, 출처: wikimedia

그러나 그 분노는 결국 어디로도 수렴되지 못했다.

군부는 유혈 진압을 벌였고,

2022년 이후 미얀마는 사실상 내전에 가까운

무장 게릴라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혁명은 감정의 절정으로 솟구쳤지만,

제도적 상상력이나 헌정적 대안은

끝내 등장하지 않았다.


그 결과,

감정은 무력으로 흩어졌고,

분노는 반복되고, 존재는 고립되었다.


이 사례에서 G의 결여는 명확하다.

쿠데타로 인해 모든 헌정 질서가 붕괴된 상황에서

시민들이 쌓아 올릴 수 있는

새로운 정치 구조(Governance)의 설계는 없었다.


감정은 넘쳤지만,

그것을 법과 제도라는 그릇에 담을 수 없었다.

광장의 열기는 있었지만,

그 열기를 지속시키는
헌정적 상상력은 없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미얀마 군부는 G를 설계할 수 없도록 철저히 봉쇄했고 이것이 성공했다.



2.1.1 미셸 푸코 - 감시와 처벌

한나 아렌트, 미셸 푸코, 위르겐 하버마스, 출처: wikemedia

푸코의 『감시와 처벌』은

이 사례에 유효한 철학적 렌즈를 제공한다.


푸코에 따르면 근대 권력은

감시와 규율을 통해 몸을 통제하고 공간을 장악한다. 미얀마 군부는 시민들의 움직임을

기술적으로 통제했을 뿐 아니라,


일상 언어와 정보의 흐름을 차단함으로써

새로운 제도가 형성될 수 있는 공간 자체를 파괴했다.


다시 말해, ‘공론장이 비어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공론장을 설계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푸코는 권력의 작동 방식이 물리적 통제만이 아니라

담론의 형성과 구조의 설계를 막는 방식으로도

나타난다고 보았다.

© 휘각(揮珏).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 푸코의《감시와 처벌》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Surveiller et punir: Naissance de la prison, 1975)은 형벌과 감옥의 역사를 통해 근대 사회 권력의 작동 방식을 해부한 대표적 저작이다.

푸코는 중세의 공개 처형에서 근대의 감옥 제도로의 전환을 추적하며, 권력이 신체적 억압에서 규율과 감시를 통한 내면화로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감옥뿐 아니라 학교, 병원, 군대 등 사회 전반에 스며든 규율 권력의 메커니즘을 분석하며, 현대 사회의 통제와 주체 형성 과정을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감시와 처벌》에서 푸코는 형벌의 역사를 통해 권력이 단순한 물리적 강제에서 벗어나, 감시와 규율이라는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방식으로 개인을 통제하게 되었음을 밝힌다. 그는 파놉티콘과 같은 감시 장치를 예로 들며, 권력이 어떻게 사회 제도 전반에 스며들어 개인이 스스로를 감시하고 규율하게 만드는지 설명한다.

이 책은 감옥이 범죄자를 격리하고 교정하는 공간일 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규범과 규율을 확산시키는 장치임을 강조한다. 감옥의 논리는 학교, 병원, 군대 등 다양한 제도에 적용되어, 사회 구성원 모두를 감시와 규율의 대상으로 만든다.

푸코는 이러한 권력의 작동 방식이 물리적 억압뿐 아니라, 무엇이 정상이고 비정상인지, 합법과 불법, 건강과 질병 등 사회적 담론과 구조를 설계·제한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감시와 처벌》은 권력이 어떻게 사회적 규범과 담론을 통해 개인을 형성하고 통제하는지 통찰력 있게 보여주는 저작이다.



2.1.2 한나 아렌트: 정치적 공간


그러나 푸코만으로는

이 사태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혁명론』에서,

혁명이 지속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치적 공간”이라고 말한다.

© 휘각(揮珏).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단지 감정의 외침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함께

세계를 구성할 수 있는 구조의 공간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얀마의 실패는 바로

그 공간이 제거되었기 때문에 일어났다.


* 정치적 공간

아렌트에게 혁명이란 단순한 권력 교체나 사회 구조의 변화가 아니라,
새로운 정치적 공간의 창출을 의미한다.

이 정치적 공간은 시민들이 함께 모여 자유롭고 평등하게 의견을 나누고, 공동의 문제를 논의하며, 새로운 질서를 시작할 수 있는 장(field)이다.

혁명은 바로 이러한 공간을 열어젖히고,
그 안에서 새로운 권력과 헌법이 제도화되는 사건으로 이해된다.

아렌트는 이 정치적 공간을 “사이(in-between)” 또는 “공적 영역(space of appearance)“이라고 부른다. 이는 개인들이 단순히 모여 있는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상호작용과 소통, 공동의 행위를 통해 비로소 생성되는 관계적이고 역사적인 장이다.

정치란 바로 이 ‘사이’에서,
즉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시작되고 유지된다. 이 공간은 인간의 다양성과 다원성이 드러나고, 자유로운 정치적 행위가 가능해지는 조건이다.

결국 아렌트에게 정치적 공간은 혁명의 목적이자 성과이며, 인간의 자유와 새로운 시작(initiating power)이 실현되는 무대다.

이 공간은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집단적 행위와 약속, 제도화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유지되어야 한다.

정치적 공간이 사라질 때, 정치적 자유와 혁명의 의미도 함께 소멸한다는 점에서, 아렌트의 정치철학에서 가장 근본적인 개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2.1.3 하버마스: 의사소통 행위이론


하버마스 역시 『의사소통 행위이론』에서

공공성이 유지되기 위해선 제도화된 의사소통의 틀,

즉, 공론장을 구성할 수 있는 규범적 구조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미얀마 시민들은 말했지만,

그 말을 받아줄 수 있는 구조가 없었다.

감정은 있었고, 윤리도 있었지만, 구조는 없었다.


* 하버마스와 『의사소통 행위이론』

위르겐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행위이론』(The Theory of Communicative Action)은 근대 사회의 합리성과 소통, 그리고 사회통합의 원리를 비판적으로 해명하는 20세기 사회철학의 대표작이다.

하버마스는 이 책에서 기존의 도구적·목적합리성 중심의 이성 개념을 넘어, 언어적 상호작용과 상호이해에 기초한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사회의 통합과 변화, 그리고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새롭게 모색한다.

하버마스는 인간 행위의 핵심을 ‘의사소통 행위’에서 찾는다. 의사소통 행위란 언어를 매개로 최소 두 주체가 상호작용하며, 상호 이해와 합의를 통해 행동을 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각 발화가 네 가지 타당성 요구(이해가능성, 진리성, 정당성, 진실성)를 충족해야 한다는 점이며, 이런 타당성 주장을 둘러싼 비판과 논의가 자유롭게 이루어질 때 비로소 진정한 합의와 사회적 연대가 가능해진다.

하버마스는 사회를 ‘생활세계’와 ‘체계’라는 이중 구조로 설명한다.

생활세계는 문화, 사회, 인성의 세 차원으로 구성되며,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작동하는 장이다.

반면, 체계는 권력과 화폐 등 비언어적 매체가 지배하는 영역이다. 현대 사회의 병리 현상은 체계의 논리가 생활세계로 침투(생활세계의 식민화)하여 언어적 소통과 자발적 연대가 약화될 때 발생한다고 진단한다.

결국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행위이론』은 사회적 통합과 민주주의의 토대를 언어적 상호작용과 상호이해, 그리고 비판적 논의에 두고 있다.

그는 기존의 주체중심적·객관주의적 합리성을 넘어, 비판과 논증, 그리고 자유로운 합의가 가능한 소통의 장을 사회통합의 근본 원리로 제시한다.



2.1.4 혁명 저지 세력의 공론장 붕괴 전략

© 휘각(揮珏).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혁명 저지 세력도 이와 같이 공론장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혁명을 저지하기 위해 폭력과 더불어

공론장 저지 전략을 정교하게 구사한다.

© 휘각(揮珏).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혁명은 말의 문제가 아니라, 말을 담을 그릇의 문제다.

미얀마는 말이 넘쳤지만, 그 말은 공기 중에 흩어졌다.

그릇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혁명 저지 세력이
그릇을 성공적으로 없었기 때문이고,

혁명 세력은 그에 맞서
그릇을 보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G의 결여가 만든 실패의 첫 번째 사례다.


keyword
이전 04화구조(G)가 결여된 혁명들(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