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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eze lee Sep 07. 2024

내 인생에게

오늘은

내 인생에게

전화를 걸어

잠깐 만나자고 했다

선술집에

앉아있는 나를

보고 분위기 파악했는지

제법 다소곳하다

인생에게 

너 내가

좀 살만하다고

느끼면 왜

쓴맛 한 꼬집씩

집어넣는 거냐?

묻자

아무 대답 없이

술 한잔 따라준다

모자를 푹 눌러써서 

그 표정은 알 수 없다

이번엔 

인생의 눈치를 살피며

나 겉으론 편해 보여도

사실 조금도 쉴 틈 없이

달려왔잖아 

나 이 정도면 괜찮게

살았지?

취한 척 묻자 

그제야 끄덕끄덕

먹태하나 쥐어주고

또 한 잔

또르르 따라준다

인생은

앞으로의 부탁이 담긴

내 술 한 잔 받아먹고

일어서더니 천천히

골목 속으로 사라졌다

오늘은 내 인생이랑

술 한잔 했다


*시에 덧붙여 퇴근하여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던 어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물은 뜨겁고 땀은 흐르고 쉴 새 없이 일하는 내 모습에 갑자기 내 인생을 소환하고 싶었다. 잠시 엉뚱한 상상이 일의 힘듦을 덜어주었다. 바바리를 입고 중절모를 쓴 내 인생, 그 얼굴을 볼 수 없어 더욱 궁금하다. 나는 가끔 이런 엉뚱하지만 나름 재미있는 상상을 하면 현실을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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