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8일
코로나19가 터지기 직전인 2019년 11월 어느 날이었다.
습관적으로 메일을 열어보니 대한항공에서 메일이 하나 와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30여 년 정도- 대한항공 회원이라 정기적으로 광고 메일이나 마일리지 정보를 알려주는 메일이 오곤 했었기 때문에 이번에 온 메일도 그런 종류의 메일이라 생각해서 열어보지도 않고 지우려 했다. 그런데 메일 제목이 갑자기 눈에 확 들어왔다. “100회 탑승을 감사드리며…” 응? 내가 대한항공을 100번이나 탔다고? 어쩌다가? 이런 메일은 열어 볼 수밖에.
열어 보았더니 정말 100번을 탔다고 감사한다면서 몇 가지 쿠폰과 보너스 마일리지를 선물로 보내왔다. 쿠폰이나 마일리지보다도 내가 한 항공사의 비행기를 정말 100번을 탔다는 게 믿기지 않아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정말로 100번 탔는지 확인해 보았다. 그랬더니 정확히 101번을 탄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었다. 회사가 투자를 받고 본격적으로 일을 하면서 그 당시 몇 년간 미국을 부지런히 드나들긴 했지만, 100이라는 숫자는 참으로 낯설었다.
처음 비행기를 타본 기억이 초등학교 2학년쯤이니 시간을 가늠해 보면 40년이 훌쩍 넘긴 했지만, 내 기억에 비행기 여행을 그리 자주 한 것 같진 않았고, 게다가 대한항공만 집중적으로 이용한 것도 아니다. 아시아나 항공이 생긴 이후에는 아시아나도 자주 탔고-승무원들이 좀 더 이뻤다- 2000년 대 들어서는 저가 항공도 많이 탔으며 외국으로 출장을 다닐 때는 외국 항공사도 제법 많이 이용-국적 항공사보다 많이 싸니까-했다, 고 생각했다. 실제로 아시아나 항공 홈페이지에서 탑승 기록을 찾아보았더니 83회로 되어 있었다. 이렇게 보니 지금까지 살면서 비행기를 200 번은 족히 탄 모양이다. 그 말은 공항을 그만큼 찾아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여름 홋카이도를 가기 위해 이백몇 번째로 공항을 간다. 해외여행이니 뭐, 당연하게도 인천 공항이다.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잠시 꿈나라를 다녀오면 공항 3층, 출발층으로 버스가 천천히 오르고 있다. 자연광이 은은하게 들어오는 인천공항 3층은 짧게 표현하기 힘든 묘한 매력이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는, 그 층에 있는 모든 사람이 뿜어내는 설렘의 기운은 여행을 앞둔 나의 설레는 마음을 배가하는데 어쩌면 이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여행을 준비하고 공항을 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사람들이 내는 모든 소리들이 공항의 천장에 닿았다가 돌아오면서 하나의 울림으로 합쳐지고, 그 울림은 우리의 심장 박동과 공명을 하면서 여행을 앞둔 이들을 살짝 흥분시키면서 기분 좋은 긴장감을 선사한다. 사실은 지난 1월에도 교토 여행을 위해 인천 공항을 왔었다. 그때는 아직 코로나19의 뒤끝이 남아 설렘 속에서도 조심스러움이 묻어났었는데, 7월이 된 지금은 예전의 ‘대여행의 시대’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다.
조금은 지루한 보안검사 절차를 통과하여 출국장으로 들어서면 내가 여행을 떠나는구나 하는 실감이 더 강해진다. 공항이 주는 감흥은 이곳에서 최고에 도달한다. 거대한 쇼핑몰을 연상하게 하는 면세점, 식당, 카페들과 거기를 꽉 채우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를 부지런히 움직여 도착한, 내가 탈 비행기가 기다리고 있는 탑승 게이트. 수십 번을 반복해 왔건만 올 때마다 처음 오는 것 같은 두근거림이 항상 날 감싼다. 심지어 그 여행이 놀러 가는 여행이 아니라 일 때문에 가는 출장 여행일지라도 이 동안만큼은 업무의 부담감도 잊게 하는 즐거움이 있다.
게이트 옆 벤치에 둘러앉은 우리 가족은 탑승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며, 삿포로에 도착한 후의 일정에 대하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대단한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다 알고 있지만, 또 이야기해도 즐겁기만 하다. 아참, 공항에 내리면 꼭 먹어야 하는 소프트 아이스크림도!
자, 어느새 비행기를 탈 시간이다. 가보자, 홋카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