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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시대의 사랑...이터널 선샤인

2023년 9월 9일

by 행크

카페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구름이 낮게 드리워 있고, 카페의 천장 모퉁이에 달려있는 스피커에서 루이 암스트롱의 걸걸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이제 막 가을로 발을 내딛는 9월의 어느 오후. 문득 얼마 전 보았던 옛날 영화가 떠올랐다. 2004년에 나온 영화이니 벌써 19 년이나 된 영화이다. 다만 내 기분에 그리 오래되었다 느껴지지 않을 뿐.


미셀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

2004년의 페이스북, 2006년의 트위터를 지나 2010년 인스타그램은 스마트폰을 만나 시대를 상징하는 어플이 되었다. 그 당시에 소셜 미디어가 무엇일까 궁금해서 트위터를 먼저 접했었고, 그 뒤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알게 되면서 모든 소셜 미디어에 회원으로 가입은 하였지만 취향에 안 맞는 건지 아니면 그냥 게을러서인지-이쪽이 유력한데- 세 소셜미디어 모두 제대로 활용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도 가끔 인스타그램은 들어가 보는데, 인스타그램이 이전의 소셜 미디어와 다른 점은 사진을 함께 올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올리는 사진들은 대부분 맛집에서 찍은 음식 사진, 여행 가서 찍은 풍경 사진들인데 혼자 가서 찍기도 하겠지만 많은 경우 연인과의 데이트 장소들이다. 여기까진 좋다. 전혀 문제가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안타깝게도 그 연인과 헤어지는 경우이다. 이 사진들을 어찌해야 좋을까? 정성 들여 찍은 사진이고 추억이 담긴 사진이니 그냥 두어야 하는 게 맞는 걸까? 아니면 아픈 혹은 불편한 기억을 잊고 앞으로 다시 만날 새로운 인연을 위해 삭제해야 하는 걸까? 어떤 선택을 하든 정답은 없다. 어떤 선택이든 그럴듯한 이유를 댈 수 있지만, 또한 동시에 어떤 선택도 시간이 지난 후 크고 작은 후회를 남길 것이다. 자, 어쨌든 선택을 해야 하는데 누군가는 지우기로 선택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위에서 말한 소셜 미디어가 나오기 전에 만들어졌음에도 소셜 미디어들보다 좀 더 나아간다. 연인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이나 물건을 지우고 버리는데 그치지 않고 그 사람에 대한 기억 자체를 통 채로 지워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기억 자체를 지우는 것은 끝나버린 사랑의 상처로 더 이상 고통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도시의 어느 곳에 작은 건물이 있고 이 건물의 2층에 기억을 지워주는 일을 하는 병원인지 연구소인지 좀 애매한 공간이 있다. 실연의 아픔을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오고 상담이 끝나면, 이곳의 직원들은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꽤나 세밀하게 기억을 지우는 시술을 하는데 제법 성공적인 모양이다. 우리의 주인공-짐 캐리-도 실연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이곳을 찾는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헤어진 연인-케이트 윈슬렛-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 데 성공하지만, 결국은 우연과 필연이 겹치며 그 연인을 다시 만나고 그녀도 자신처럼 기억을 지우는 시술을 받은 것을 알게 되지만 또다시 헤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맺어지며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에서 사람의 뇌의 어떤 부분이 사랑의 기억을 관장하고, 그 기억을 어떻게 지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는다. 시간 배경이 어느 가까운 미래인 일종의 SF 영화이기도 -스릴러적인 면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사랑의 진정한 의미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인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면서 경험하는 모든 것에는 기억과 함께 그에 뒤따르는 감정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사랑 같은 강렬한 체험 뒤에 남는 그 격렬한 감정은 -좋은 쪽이든 안 좋은 쪽이든-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남는다. 때로는 새로운 사랑으로, 때로는 바쁜 일상으로 잊힌 것 같지만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언젠가 다시 떠오를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시술을 받는 동안, 그녀와의 기억이 서서히 무너져 가는 가운데 그녀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아직 남아있음을 깨닫고 그녀를 되찾기 위한 모험이 그의 뇌 속에서 벌어진다. 결국 자신과 그녀에게 한 가닥 메시지를 남기는 데 성공하고 둘이 처음 만났던 바로 그 바닷가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이 영화의 국내 개봉 시의 제목은 <이터널 선샤인>이고 원제는 좀 더 길다.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알렉산더 포프’라는 시인의 시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생략된 부분인 “the spotless mind”이 의외로 이 영화에서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주인공의 머릿속에서 사랑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뇌를 스캐닝하고 지워야 할 부분을 뇌의 이미지 위에 점(spot)으로 표시한 장면이 나오는데, 점이 찍혀 있지 않은 뇌의 나머지 부분이 바로 “the spotless mind”인 것이다. “the spotless mind”는 주인공이 경험한 사랑에서 구체적인 기억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spotless mind”가 결국에 그 사랑을 되찾게 한다. 처음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다 좋은데 감독은 왜 영화 제목을 <이터널 선샤인>로 정했을까 궁금했는데, 원제를 알고 다시 영화를 보다 보니 거의 20년이 다 되어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영화에서 감독이 또 하나 여운을 남기는 부분이 있다. 등장인물들 가운데,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픔 때문에 그 기억을 지웠지만 다시 같은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또다시 그 사랑을 부정당하며 심지어 자신이 기억을 지웠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어 깊이 좌절하는 인물-커스틴 던스트-이 나오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마음이 쓰였다. 아마도 그 모습이 우리네 보통 사람과 가장 닮아 있어서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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