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1일 - 계엄을 바라보며3
어쩌다 보니 2025년의 1월이 지나버렸다.
인터넷과 유튜브에서는 여전히 어지러운 뉴스들이 흘러나온다. 이틀 더 있으면 윤석열과 그 하수인들이 계엄을 시도한 지도 두 달이 되는데, 2016년 박근혜 탄핵 때의 학습효과인지, 원래 그런 인간들이어서인지 저들은 뻣뻣하기가 그지없다. 저런 뻣뻣함은 타고난 뻔뻔함에 자신의 위태로움이 겹쳤을 때 자주 드러나는 모습인데, 거기에 대책 없는 적반하장을 동반하면 아주 볼 만하다.
저런 인간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 얼굴에서 그들의 공통점을 또 하나 발견하게 되는데, 바로 어리석음이다. 화면 속 저들의 얼굴에서 탐욕과 이기심이 흘러넘치는 것은 쉽게 알아볼 수 있는데, 좀 더 지켜보면 그 탐욕과 이기심 사이로 ‘어, 이건 아닌가?’ 스스로 곤혹스러워하는 어리석음도 같이 밀려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저들도 한 때는 촉망받는 젊은이였을테고 능력을 인정받아 그 자리까지 간 것일 텐데, 인생의 어느 순간 사리 분별의 회로가 멈추고 어리석음의 길을 걷게 된 것일까?
윤 씨가 언제 계엄을 하기로 마음을 정한 지는 알 수 없지만 12월 3일 국무회의를 열고 아주 소극적인 반대와 암묵적인 동의 속에 계엄을 의결하고 선포하는 과정을 상상해 보면, 결국은 비극으로 끝날 연극의 우스꽝스럽고 서글픈 서막을 보는 것 같다. 실제로 그런 연극(희곡)이 있으니 바로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이다.
리어왕이 세 딸과 사윗감들과 여러 신하들을 모아 놓은 자리에서 딸들에게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묻는 장면으로 연극은 시작된다. 아버지인 왕에게 아첨하는 두 명의 딸과 진심을 전하는 한 명의 딸에 대한 리어왕의 대응을 보고 있으면, 이 이야기의 결말을 전혀 모르는 독자라 하더라도 ‘큰 일 났네, 큰 일 났어.’를 마음속으로 읇조리게 되어있다.
한평생 왕국을 잘 통치하였던 왕이 물러나는 순간 더없이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고 그 대가로 결국 폭풍우 치는 들판을 방황하다 미치고 만다. 또한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자가 모종의 이유로 리어왕 못지않은 어리석은 선택을 함으로써 아마도 평생 독방 감옥에서 나오지 못한 채 죽어갈 궁지에 몰려 있다. 두 딸에게 왕국을 주려는 결정을 철회하지 않는 한, 그날밤 계엄 발표를 취소하지 않는 한 이 두 이야기는 비극으로 흐를 것이라는 것을 당사자들만 모르고 있었다.
십몇 년 전 처음 <리어왕>을 읽었을 때는 리어왕의 모습이 조금 억지스러워 보였다. 그래도 한나라의 왕이라는 자가 아첨과 직언을 이리도 구별하지 못할까? 심지어 둘째 딸의 아첨은 성의도 없다. 언니인 첫째의 말을 비슷하게 반복할 뿐이다. 그런데도 왕은 첫째와 둘째에게만 왕국을 나누어 주고 바른말을 한 셋째에게는 역정을 내고 의절을 한다. 극을 끌어가기 위한 설정이라 하지만 작가가 좀 무리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리고 12월 3일 밤의 일을 지켜보면서 잠시나마 셰익스피어를 깎아내리려던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다. 현실은 소설보다 -이경우는 희곡이지만- 더 하다는 말에 틀린 게 하나도 없구나 되뇌면서.
이쯤에서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생각한다.
인간은 원래 어리석음을 가지고 태어나는 걸까, 아니면 살면서 점점 더 어리석어지는 것일까?
그냥 어리석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일까?
마치, 성선설과 성악설의 논쟁처럼 간단해 보이면서도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이다.
여기의 두 인물 리어왕과 윤석열이 처음부터 어리석은 인간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랬다면 왕의 자리에, 대통령의 자리에 가지도 못했을 테니까. 오히려 자신의 성공에 대한 과도한 도취와 이어지는 욕망이 이성적 사고의 끈을 그만 끊어버린 것 아닐까?
한심하게도 그들의 어리석은 행동은 그 뒤로 계속 이어진다.
자신을 냉대하는 두 딸 앞에서 리어왕은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한 채 화만 낼 뿐이고, 결국 탄핵당한 윤 씨는 헌법재판소에 불려 나와 그럴듯한 변명 하나 대지 못한 채 궤변을 일삼고 있다. 그들의 비극적 결말은 피할 수 없고, 이제 남은 것은 다만 어떻게 최후를 맞이하게 될까 하는 세부적인 이야기들이다.
리어왕의 최후는 우리가 알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주요 인물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던 <햄릿>에서의 솜씨를 다시 한번 발휘하여 왕과 사악한 두 딸과 애꿎은 셋째 딸까지 다 죽여버린다. 비극이 쓸고 간 자리에 주변 인물들 몇 명만이 살아남아 씁쓸하게 그들을 회상하며 막을 내린다.
윤 씨와 그 일당의 최후는 현재 진행 중이고 여러 감정을 느끼면서 지켜보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21 세기 한국에서 ‘계엄과 쿠데타’라니, 정말 그것이 가능할 거라 생각한 걸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고, 또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을까? 자기를 떠받들어주는 인간들 속에서 뭐든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을 보고 이 세상도 그렇게 될 거라 믿은 것일까? 우리 모두 물리적으로는 같은 시공간을 살아가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정신이 현재에 있지 않고 과거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그들의 정신이 머물고 있는 시대와 현재의 간격이 얼마나 벌어져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간격을 좁히지 못한 리어왕과 윤 씨는 스스로를 파국으로 몰고 가 사람들이 두고두고 이야기하게 될 비극과 교훈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