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X세대를 만들어낸 철학적 고찰
1992년 10월부터 MBC에서 방영된 ‘아들과 딸’이라는 드라마를 기억할 것이다. 극 중 주인공의 이름부터가 드라마의 상징성을 보여준다. 이란성쌍둥이로 태어난 남자아이의 이름은 귀남(최수종 役)이고 여자아이의 이름은 후남(김희애 役)이다. 가부장적이고 남아선호사상이 지배하던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성의 차별을 보여준 이 드라마는 당시 시청률 60% 가까이 기록하며 대한민국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 드라마의 시대 배경은 X세대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이다. 하지만 세월이 2·30년 흘렀지만, 사회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네 어머니는 가부장제와 남아선호사상의 피해자였음에도 자식들 또한 그렇게 가르치고 길렀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마찬가지겠지만 유교 문화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조선 시대 중·후기로 들어서면서 유교는 더욱 변질이 되어 허세의 상징이 되었고, 이는 아직도 우리들의 생활 곳곳에서 그림자를 드리운다. 시대가 흐를수록 옅어지는 느낌은 있지만, 유교 문화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유전자가 되어 머리와 몸에 스며져 있다. X세대도 유교 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X세대의 증조부 세대쯤이면 실제로 조선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는 조부모와 부모를 통해, 학교 교육을 통해, 사회관습을 통해 유교 사상과 문화는 어릴 때부터 X세대의 정신과 행동을 지배하는 하나의 양식이었다. 지금은 유교 문화와 관련된 것을 내세워 젊은 세대들에게 가르치려 들면 100% 꼰대소리를 듣기 십상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를 무시하고 살려고 하면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유교에서 내세우는 삼강오륜은 조선 시대의 통치이념 같은 것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이 삼강오륜(三綱五倫)이 지금 대한민국의 헌법 같은 잣대가 되었을 것이다.
삼강(三綱)은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에 지켜야 할 덕목을 말한다. 후자는 전자의 종속된 개념으로, 유가 사상의 충(忠)과 효(孝)는 조선이라는 국가가 운영되는 기본 원리였다.
이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으로 다가왔는가?
먼저 三綱(삼강)을 살펴보자.
君爲臣綱(군위신강)은 국가주의나 전체주의가 당연한 것처럼 각인되었다.
父爲子綱(부위자강)은 가부장적인 문화를 심어주었다.
夫爲婦綱(부위부강)은 남존여비 사상을 고착화했다.
오륜(五倫)은 어떠한가.
父子有親(부자유친) : 어버이와 자식 사이에는 친함이 있어야 한다.
君臣有義(군신유의) :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로움이 있어야 한다.
長幼有序(장유유서) :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와 질서가 있어야 한다.
朋友有信(붕우유신) : 벗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夫婦有別(부부유별) : 부부 사이에는 구별이 있어야 한다.
이 모두 봉건적 신분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지배층의 통치이념이었지만, X세대도 이 조선 시대의 통치이념에 자유롭지 않게 살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부모에게 대드는 것은 맞거나 쫓겨나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는 뜻이고, 나라에서 하는 일은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며, 버스에서 어르신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면 버릇이 없는 사람으로 손가락질을 감당해야 하며, 한 살 차이 선후배 사이에도 별 이유 없이 얻어맞는 것은 다반사였다. 집안에서 어머니를 비롯한 여자들은 남자들의 수발을 들어야 했고, 나이를 불문하고 남자는 여자보다 서열이 높았다.
X세대는 대부분 이 모든 것을 보거나 듣거나 경험하고 자랐다.
1969년 ‘가정의례준칙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허례허식과 과소비를 없앨 것을 국가에서 권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제사는 1년에 10개가 넘는 집이 많았고, 제사음식도 부실하면 조상을 욕보이는 것이라 빠듯한 살림에도 조상에 대한 예(禮)는 부족함이 없었다. 자정이 넘어서야 제사를 지낼 수 있었고, 제사가 있는 날은 어른들의 유교 문화 교육장이 되었다.
유교 문화가 모두 좋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좋은 것보다는 좋지 않은 것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삼강오륜은 국가주의나 전체주의를 내포하고 있고, 성차별이나 나이 차별적인 요소도 포함되어 있으며, 직업에 대한 귀천을 내세워 직업에 따른 상하 및 차별을 부추긴다.
X세대가 성장하고 학창 시절을 보낼 때만 해도 유교 문화는 사회 관습적으로 절대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으며, X세대는 유교 문화를 습득한 세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누구보다 유교 문화를 탈피할 것을 제일 먼저 외치는 세대이기도 하다. 지금도 X세대는 부모세대와 유교 문화를 물려받고 지킬 것이냐, 아니면 고치거나 없앨 것이냐로 의견 대립을 보이곤 한다. 연로하신 부모 의견을 따르는 사람도 있고, 이제는 세상이 변했으니 바꿔야 한다며 마찰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으며, 극단적으로는 부모와 자식의 연을 끊는 사례도 다분 존재한다. 여전히 유교 문화에서 자유로운 X세대는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