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74년에 태어났다. 내가 태어난 해는 조선이 망한 지 64년째 되는 해이고,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지 29년째 되는 해이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26년째 되는 해이며, 6·25 전쟁이 일어난 지 24년째 되는 해이고, 5·16 군사쿠데타가 발발한 지 13년째 되는 해이다. 어찌 오래된 역사적 사건처럼 생각되지만, 불과 내가 살아온 세월만큼의 전후에 일어난 사건들이다.
이 사건들은 모두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것이지만, 조선의 정치·문화도 일제강점기의 비굴하고 비참했던 현실도, 6·25 전쟁의 뼈아픈 참상도, 군사정권 시절의 엄혹한 사회상황도, 내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윗세대를 통해, 교육을 통해, 제도나 관습을 통해 내 생각과 행동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조선의 인·의·예·지와 삼강오륜으로 대변되는 유교 사상과 문화, 남성 중심의 부계사회를 중시한 가부장 제도와 남아선호사상은 쉬이 사라지지 않고 남성에는 무거운 짐을, 여성에게는 차별을 안겨주었다. 어릴 적 할머니들은 말을 할 때 일본어를 많이 사용했다. 동사와 조사는 우리말이었으나, 명사는 상당 부분 일본어를 사용했다. 자부동·와라바시·벤또·닥꽝 등 어릴 적 우리말인 양 사용했던 기억이 있다. 큰 소리로 울고 있으면, 어머니는 “순사가 잡으로 온다”며 울음을 그치게 했다. 학창 시절 머리카락은 앞머리 기준 3센티미터였고, 학생주임은 바리캉을 들고 다니며 머리가 조금만 길어도 일명 고속도로를 만들어 버리곤 했다. 국민학교 때부터 원산폭격과 같은 얼차려를 받았으며 구타는 일상이었다. 체육 시간이나 전체 조례가 있을 때면 제식훈련 구령에 맞추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의 역사라고 해서 일제강점기가 끝나면 모두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군사정권에 일어났던 일도 현재 사회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유시민 작가의 『국가란 무엇인가』 서문에 나와 있는 글을 인용해 본다.
“당신은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스스로 노력한 결과일 것이다. 잘 길러주고 공부할 수 있게 해 준 부모님 덕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적어도 절반은 당신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는 데 힘입은 것이다. 국가가 융성한다고 해서 그 나라의 모든 국민이 풍요롭고 행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혼란스럽고 가난하고 폭력과 무질서가 판치는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이 훌륭한 삶을 누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주어진 기회를 살리는 것은 개인의 몫이지만, 어떤 기회를 얻을 수 있는지는 일차적으로 국가의 상황에 좌우된다. 우리 삶에서 훌륭한 나라에서 태어나 살고 후손들에게 더 훌륭한 나라를 물려주는 것만큼 가치 있는 일은 별로 많지 않다.”
유시민 『국가란 무엇인가』 서문 중 -
그렇다. 내 삶의 절반 이상은 어떤 국가에 태어났는가에 따라 결정되어진다. 그만큼 국가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X세대를 이해하기 위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국가를 운영했던 사람에 대해 다루는 것은 X세대의 정체성을 파악하기 위한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조선에서 대한제국을 거쳐 대한민국으로, 봉건사회에서 민주사회로 나아가는 과정, 군주정에서 민주정으로 변화하는 한반도의 변화무쌍했던 150년의 근현대사를 짧게 짚어 볼 것이다. 이것은 X세대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설명해 줄 것이다. 더불어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지도자(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도 해 볼 것이다. 이는 국가지도자가 어떻게 국가를 운영하는가에 따라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X세대가 함께 겪었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국가 전반적인 문제들이 결코 나와 별개의 일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X세대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안에서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지도자들이 만든 법과 제도 위에 탄생한 집단이다. X세대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생겨난 집단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틀 안에서 그 또래의 구성원들이 나타내는 집단적인 특성의 총체일 뿐이다.
X세대가 태어나기 전 100년 동안 한반도는 역사상 전례 없는 대혼란기를 겪었고, X세대가 태어난 이후 반세기 동안의 한반도는 역사 이래로 가장 강한 나라이며,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로 변했다. 각자 생각하는 것이나 입장, 처지에 따라 달리 느낄 수 있지만,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로서 그렇다는 것이다.
앞서 조선 시대의 통치이념이었던 유교 사상에 대해, 이야기한 것처럼 역사나 전통, 관습은 하루아침에 사라지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과정이 있었기에 현재도 존재하고 미래도 가능한 것이다.
이제부터 X세대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의 대한민국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 대한민국의 탄생과정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알아야 X세대를 이해하고 규정하기 쉬울 것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대한민국의 변화과정을 짚어봄으로써 X세대의 탄생과 향후 역할에 대해서도 살펴보려 한다. 그럼 이제 X세대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해 보자. 이는 흥미로운 여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