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좋은 건데 엄마 등 (시)

by 지소혜

엄마를 놓쳤다. 앞서가는 엄마를 잃어버렸다. 아빠의 혹독한 야단에도 엄마 따라나서기를 멈추지 않더니 사달이 나고 말았다. 시장에서 들리는 흥정소리와 갖가지 물건들에 현혹되어 살포시 잡고 있던 엄마 손을 놓쳤다. 너무 당황해 시장 바닥에서 엉엉 울어버렸다. 다섯 살 여자 아이의 울음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인들은 누구 아이냐고 서로 수소문하며 엄마를 찾기 시작했다. 한참을 울고 있는데 겨자색 원피스를 입고 어깨까지 내려온 물 펌을 한 여자가 아는 체를 했다. 내 모습이 자신이 알고 있는 동네 언니랑 닮았다고 했다. 그 언니처럼 톡톡 뿌려진 주근깨와 도톰한 눈두덩이에 옅게 자리 잡힌 쌍꺼풀을 언급하며 자꾸 엄마 이름을 불렀다.


-업혀 봐. 어부바!


자꾸 등을 내밀며 그 언니 집을 아니까 데려다준단다. 시장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들며 우리가 증인이니까 허튼수작 말고 진짜 아이 엄마를 아냐고 묻고 또 물었다. 여자는 좀 머뭇거리더니 머리가 희긋한, 시장통 터줏대감같이 보이는 잡화점 주인에게 자신의 가방을 맡겨 놓으며 안심시켰다.


여자는 막대 사탕을 건네주며 겨자색 치마 뒤쪽이 들리는 불편함을 감수하며 걸었다. 울다가 튼 볼에 사탕의 끈적거림이 닿았고 눈물이 멎은 나는 여자 등에서 잠이 들었다. 아마 영영 엄마를 못 볼 수 있다는 생각보다 여자의 등이 편안하게 느껴져 잠시 어디론가 팔려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잊었던 것 같다.


가끔 서커스단이 단오 즈음에 몇 달씩 남대천 옆으로 천막을 치고 들어섰다. 부모님은 그곳에 야채를 공급하곤 했는데 엄마를 따라나설 때 유난히 겁먹던 곳이다. 나보다 한참 어린아이들이 곡예 연습하거나 다치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은 어디서 왔을까? 서로 닮지도 않았기에 가족 일리는 없었다. 단장으로 보이는 남자는 갈 때마다 몇 살이냐 물으면서 엄마 말씀 잘 들으라고 말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엄마가 이곳에서 나를 잃어버릴 것 같았다. 엄마의 옷자락을 계속 부여잡고 졸졸 따라다녔다.


여자의 등에 업혀 집에 다다르기 전에 엄마는 넋이 나간 상태로 집에 와 있었다. 함지박에 담긴 정성껏 손질한 야채도 꼬깃꼬깃 물건값으로 받은 돈이 넣어져 있는 허리춤 돈가방도 엄마에게는 없었다. 나를 찾느라 진작에 내팽개쳤다. 내가 따라오지 않는 걸 알고 목이 터져라 이름도 부르고 한참을 되짚어 시장길을 헤맸지만 임시 보호를 받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 있던 나를 지 못했다.


아이를 찾고 있는 미친 엄마를 늦은 퇴근길에 만나게 되었다. 출퇴근 회사 버스는 끊긴 시간대라 일을 더 시킨 과장님은 숙소까지 데려다주셨다. 시내에서 숙소 가는 사이에 다리가 하나 있는데, 다리 진입로 전에 길 쪽으로 난 가옥이 있어 다리 맞은편에 누가 걸어오는지 보이지 않는다. 특히 땅거미가 짙어지는 시간대는 그 길에 사람의 인기척이 드물다. 가로등도 좀 더 나중에 세워졌으니 대부분 속도를 늦추면서 주의하며 다리를 달렸다.


갑자기 달려든 사람 앞에 속수무책으로 차량은 멈췄다. 과장님은 알고 있는 사람인지 대응 안 하는 게 해결책이라며 꼼짝하지 않았다. 나도 두렵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 엄마의 허리춤에 매달린 젖병, 아기 신발, 딸랑이 등이 눈에 들어왔다. 고꾸라져 차량 앞쪽에 주저앉아 있는 아기 엄마를 일으켜 세웠다.


-우리 아기 봤어? 아기를 잃어버렸어.


넘어지면서 팔이 쓸리고 손톱이 짓눌려 피가 나고 있었는데도 아기 엄마는 아기만 찾아달라고 애원했다. 회사 숙소에 둥지를 트는 신입사원들의 통과의례는 북동 저수지 근처 사는 아기 엄마와의 만남이었다. 매일 아기를 찾아 길을 오고 가는 엄마의 존재를 알고 나서 자신이 살게 된 곳의 낯선 풍경이 다가온다. 그리고 해가 거듭될수록 마음이 타들어가듯 피부색이 그을려가는 아기 엄마를 보며 간절한 그래서 지키고 싶은 것에 압도당다.


사람들은 미쳤다고 수군거렸다. 갑자기 길을 막아서고 차를 세우면 대수롭지 않게 태워주거나 말을 받아 준다. 자신들의 기분이 안 좋은 날에는 별 그지 같은 미친년 이라 재수 없는 하루를 미친 아기 엄마에게 쏟아냈다.


울다 지쳐 잠든

내 고향의 빈 들에는

굴곡진 고개들이 여러개

넘어갈 듯 말 듯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업히고 싶었다


아가야, 울지마!


왜 그렇게 좋은 건데

엄마 등.


잠든 채로 겨자색 원피스 여자의 등에서 엄마 등으로 옮겨졌다. 꽤 오래 힘든 고비때 마다 엄마 등에 업혀 살얼음판 같은 길을 걷는 꿈을 꾸었다.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으며 노래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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