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나는 운이 정말 좋았다. 느낌적인 느낌으로 들어간 나의 대학교 내 과는 정말 운이 좋게도 늘 재미있는 학문이었고 나는 그 길로 10년을 늘 내가 좋아하는 학문을 배웠고 일도 시작하게 되었다. 오늘은 내가 이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고 늘 배우고 싶었던 원동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나는 언제나 부끄러웠다. 10년을 학문을 배우면서 내 노력이 아닌 누군가의 도움과 운으로 이뤄나갔다. 마치 무너질 것만 같은 모래성을 쌓고 있던 나는 언제나 내가 배운 학문을 이야기할 때면 부끄러웠다."
내가 지금 배우는 학문을 이야기하기는 부끄럽다. 내가 언젠가 나를 인정할 때면 이야기할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학문을 배우고 있는 것은 10년이 넘었다. 큰 뜻이 있어서 배우게 된 건 아니었다. 고3 가을 친구들과 길을 가던 나는 다른 이들의 직업에 대한 꿈을 듣고는 내가 지금 배우고 있는 학과를 가기로 마음먹었고, 나는 지금까지 이 길을 걷고 있다.
대학교에 들어간 나는 내가 들어간 학과의 공부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었다. 다만 20대 초반 나에겐 이보다 즐거운 것들은 너무 많았다. 그렇게 나는 늘 다른 것에 눈을 돌렸고 늘 그 시간을 더 소중히 했다. 감사하게도 성실하지 못한 나에게 학과의 평가는 괜찮았다. 그 점이 나를 늘 부끄럽게 만들었다.
군대를 갔다 오고 나는 여전히 내가 배운 것을 사랑했다. 서툴지만 꿈을 그렸고 그에 비해 노력은 하찮았지만, 졸업하던 내겐 당연하게도 행운이 따랐다. 별 볼 일 없는 나에겐 내가 모르는 가능성을 봐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대학원을 진학하여 더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걷는 이 길이 늘 부끄러움뿐이었다.
"사과에 대해 알기 시작하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했다. 내가 사과에 대하여 반쯤 알게 되니, 사과에 대해 아는 사람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내가 비로소 사과를 완전히 알아가기 시작하니, 사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음을 알게 되었고 지혜를 구하기 시작했다."
나는 늘 부끄러웠지만 오만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운 좋게 대학원에 진학한 나는 내가 특출 나게 잘 나서 들어왔을 거라 생각했다. 석사공부를 마친 나는 내가 남들을 평가해도 될 정도로 완벽해졌다고 생각했다. 박사라는 길에 접어든 나는 비로소 내가 아는 것이 없음을 알게 되었고 책과 사람들의 지혜를 구하기 시작했다.
뒤돌아보니 20살에 시작해서 이 길을 걷고 있는 친구들은 점점 사라져 갔다. 나는 늘 부끄러웠다. 별 거 없는 내가 아직도 길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집일까 봐. 운이 아닌 불운일까 봐 떠나가는 친구들 떠난 동료들이 내가 늘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에 부러워할 때 나는 늘 그들보다 부족한 내가 부끄러웠다.
나는 오만했지만 늘 부끄러웠다. 부끄러웠기에 배움을 놓치지 않았고 부끄러웠기에 내가 이해한 것마저 늘 곱씹었다. 내 노력이 나에겐 대단하지만 남들에겐 별거 아닌 것인 걸 알았기에 늘 배우는 것을 미루지 않았다. 늘 부끄러웠던 나는 때론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은 이 감정이 나를 제대로 배울 수 있게 만들었다.
많이 아는 것, 한 가지만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사과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늘 이 길을 걷다 보니 이 길에 대해 많은 생각과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한 권의 책으로 모든 것을 대변하려는 이, 사과에 대해 자신이 아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이, 사과에 대해 평가한 이의 이야기가 정답인 것처럼 전달하려는 이 등 때로는 제대로 알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길은 내 꿈일지도 모르겠다. 꿈으로 향하는 길을 걷는데, 어찌 책 한 권만 들고 걸을 수 있고 고작 아직 사과의 씨밖에 모를 텐데 배움과 지혜를 구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늘 부끄럽길 원한다. 내 학문을 제대로 알고 내가 만나는 이들에게 늘 맛있는 사과를 전달해 주기 위해서
여섯 번째 별 부끄러움 이는 내가 늘 성장케 하는 원동력이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가는 길 제대로 걷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