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dongkim Sep 24. 2022

한국 '운명', 중국 '명운'

한국과 중국, 같은 말 다른 뜻

한국 ‘운명(運命)’ :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해서 이미 정해져 있는 것


중국 ‘명운(命運)’ : 세상 사물은 모두 정해진 요소와 변하는 요소로 구성되었는데, 두 부분이 서로 작용하여 우주 만물이 항상 변화하는 것



항우와 제갈공명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은 중국 대륙을 놓고 한 판 겨루었다. 항우는 마지막 전투에서 패배가 분명해지자 “내가 전쟁터에 나선 지 8년 동안 70여 차례의 전투를 치르며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는데, 오늘 처음 패배하는구나”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항우는 마지막 전쟁에서 패하여 죽기 전까지, 전투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항우는 전쟁터에서 죽음을 앞두고 유명한 ‘시’를 남겼다.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뒤덮건만(역발산기개세. 力拔山氣蓋世), 시운이 불리하니 말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구나(时不利兮骓不逝)!’, 말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니 어쩔 방법이 없구나(骓不逝兮可奈何). 


마지막 구절에 ‘나(奈)’는 중국 사전에서 ‘어찌, 어떻게’다. 그래서 중국인은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해도 도무지 해결 방법이 없는 일이 닥치면, 어쩔 도리가 없다는 의미로  ‘우나이(无奈)’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런 상황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위의 항우 시를 의역하면, ‘나의 실력으로는 능히 세상을 제패하고도 남는데,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니 나의 패배를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라는 의미다. 항우는 패배해 죽으면서 자신의 처지를 운명으로 돌렸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공명이 화공으로 위나라 사마의(司马懿)의 대군을 옴짝달싹 못 하게 가두어 승리를 눈 앞두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소나기를 퍼부어 불을 꺼 버린다. 이때 제갈공명은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의 성사 여부는 하늘에 달려 있구나(谋事在人成事在天)’라며 그 상황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위의 글에서 제갈공명이 말한 ‘하늘에 달려있다’에서 ‘하늘’에 대한 해석은 한국과 중국이 다르다.


한국에서는 상대방이 도덕이나 윤리 상식에 벗어나는 생각이나 행동을 하려고 하면 ‘하늘이 보고 있다’라거나 ‘하늘이 무섭지도 않느냐’ ‘천벌을 받는다’라며 세상일은 결국 권선징악에 따라 결말이 나니 항상 하늘을 염두에 두고 미리 생각과 행동을 조심하라고 한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하늘’은 세상일을 권선징악에 따라 처리해 주는 하늘 신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세상에 권선징악은 없다고 생각하는 중국에서 ‘하늘’은 세상을 주관하는 신이 아니라 운명을 의미한다. 제갈공명이 북벌 전투에 나서면서 말한 글귀를 보면 ‘하늘’이 운명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공명에게 묻는다. ‘제갈공명은 위나라 북벌에 이미 5차례나 출정하여 모두 실패했는데, 왜 또다시 6차 북벌 전쟁에 나가려고 합니까?’ 이때 제갈공명은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人在做天在看)’라고 대답한다. 즉 나는 최선을 다할 뿐이고, 그 후에 하늘이 어떤 결과를 내리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앞으로의 결과는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중국에서 유명한 ‘항우’도 ‘제갈공명’도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도모할 뿐 그 결과는 결국 운명에 달렸다고 했다.


방법이 없다


중국인을 서너 번 정도 접촉한 경험이 있는 한국인은 중국인이 조금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습관적으로 ‘방법이 없다(메이반파. 没办法)’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세상 모든 일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다. 중국인이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 것은 어려서부터 교육받은 결과다. 


중국 처세술 책 증광현문에 나오는 글귀다. 정성을 들여 땅에 나무를 심으면 꽃이 피지 않지만, 아무 생각 없이 버드나무 가지를 버리면 울창한 숲이 된다(有意栽花花不發,無心插柳柳成蔭). 어떤 일을 꼭 이루겠다고 죽자 살자 그 일에 매달려도 세상에는 안 되는 일이 많으니, 마음을 비우고 하루하루 성실히 생활하면 모르는 사이에 좋은 결과가 나타난다는 의미다.


이 글귀는 중국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 나온다. 어려서부터 이런 글귀를 배우며 자란 중국인은 열심히 일했는데도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경우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다음번을 기약하는 것이다.


이 글귀는 중국에서 워낙 유명해서 일상 대화에서 많이 사용하고, 연속극, 영화에도 대사로 많이 나온다.


한국 운명(運命) 중국 명운(命運)


한국 사전에서 ‘운명’이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해서 이미 정하여져 있는 것’이라고 한다. 


‘운명(運命)’에서 ‘운(運)’은 변한다는 의미고 ‘명(命)’은 정하여졌다. 확정되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세상의 운이 돌고 돌아 어느 순간 정해지는데 이것이 바로 운명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어 바꿀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중국에서는 ‘운명(運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명운(命運)’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한국 운명 단어와 비교해 글자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글자 순서만 바뀌었을 뿐인데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명운(命運)’에서 ‘명(命)’은 정해져 있고, ‘운(運)’은 변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세상일이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변한다는 의미다. 세상 사람 개개인이 지금 겪는 현실은 정해져 있지만, 그 현실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미래 언젠가는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 사전에서는 ‘명운(命運)’을 세상 사물은 모두 정해진 요소와 변하는 요소로 구성되었는데, 두 부분이 서로 작용하여 우주 만물이 항상 변화한다’고 정의한다.


중국 처세술 책 증광현문에 나오는 글귀다. ‘운이 다하니 금이 철로 변하고, 때가 되니 철이 금으로 변한다(運去金成鐵,時來鐵似金).’’

운이 없으면 좋은 일이 나쁜 일로 변하고, 때가 되면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바뀐다.’는 의미다. 여기에서 운(運)은 행운, 운수로 해석하기보다는 운명(運命)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중국인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방법이 없다(没办法)’,‘연구해보겠다(研究一下)’,‘고려해보겠다(考虑考虑)’는 말은 지금은 그 일을 진행하기 어렵지만, 때가 되면 즉 ‘시기’와 ‘ 명운’이 도래하면, 언젠가는 다시 할 수도 있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중국인이 ‘방법이 없다(没办法)’라고 말하면, 한국인은 그 일의 추진이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중국인은 지금은 적당한 때가 아니니 잠시 멈추지만, 언젠가는 다시 진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때가 내일일지, 다음 달일지, 내년일지, 십 년 후일지는 알 수 없지만.

한국인은 어떤 일이 잘 안 되었을 때, 운명(运命)이라는 단어 순서에 따라 이 일의 운(运)이 이미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이 확정(명. 命)되었으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운(运)에서부터 다시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한국인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작 적응한다.


반면에 중국인은 어떤 일이 잘 안 되었을 때, 명운(命运 명운)이라는 단어 순서에 따라 이 일이 지금은 잘 안 되는 것으로 확정(명. 命)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변해서(운.运) 다시 잘 될 수 있다며 느긋하게 기다린다. 


중국인은 어려운 일을 당해도 삶을 낙천적으로 바라보며, 실패해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데 익숙한 사고방식과 생활 태도를 가지고 있다. 


중국 처세술 책 <증광현문>에 나오는 글귀다 ‘모든 것이 운명이다, 세상에 인간의 의도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大家都是命,半点不由人)’그래서 ‘잘 될 일은 가만히 있어도 잘된다, 그러니 일이 잘 되지 않을 때는 억지로 하려고 하지 마라(命里有时终须有,命里无时莫强求)’고 한다.


중국인은 어떤 일이 잘 안 되었을 때, 때가 아니니까 기다리면 명운(命运)에 따라 지금은 어떤 일이 어렵지만(命), 시간이 지나면 다시 좋은 상황이 올 수 있다(运)고 생각한다.




이전 12화 한국 '대중심리', 중국 '종중심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