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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잘안 Oct 18. 2021

집 밖에서는 우애좋은 아이들

든든하시겠어요

‘난나난~난나난~’


알림 소리가 들린다.

발에 바퀴라도 달고 싶은 아침 시간이다.

셋째 중 5살 막내의 아침 등원은 언제나 전쟁이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용돈벌이로 며칠씩 여동생을 데려다주더니, 오늘은 엄마 차례라며 아들 둘은 영 모른체 중이다.

낚아채듯 손을 잡고, 딸의 발에만 싱싱카를 달고 뛰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유치원 엄마들이 저만치에 모여있었다.


우리의 달리는 모습이 우스운건지, 땀 흘려 흘러내린 내 화장이 우스운건지, 빙그시 웃는 얼굴로 우릴 보고 있었다. 늦둥이 딸이다 보니, 아이 친구들의 엄마는 대부분 나보다 10살쯤 아래였다.

새침해보였던 젊은 엄마들이 멀리서부터 우릴 보고 웃고 있으니,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다.     


“오우~~오랜만이죠~~~”

“네네~~진짜 며칠 만에 나오셨어요?”     

평소와 다르게 다정히 웃으며 다가오는 엄마들이 영 어색했다.

    

“아니 근데, 오빠들이 몇 살인가요?”

“아....13살, 10살이요....”     

순간, 아들 둘 둔 엄마의 본능적인 촉이 움직였다.

또 무슨 사과할 일이라도 벌어진걸까? 1분 전의 일도 기억 못하겠다는 자기 위주의 이기적인 아들넘들.

일 벌려놓고 나한테 말을 안할걸까? 만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일단 방어적 자세로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애들이 좀 까불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들리는 이구동성 한 마디.

“아~~~니요~~~~, 오빠들 둘 보고, 우리 너무 감동 받았어요~”  

   

이게 무슨 일인지...남의 집 아들들이랑 착각한 건가?

엄마들은 돌아가며 칭찬을 부어냈다.     

날씨가 30도를 훨씬 웃도는 더위인데도, 막내 동생의 등원 차가 올 때까지 부둥켜 안아주고,

상남자 체면도 내려놓은 채 핑크색 싱싱카를 끌고 다녀주고,

차에 탄 뒤에도 끝까지 손을 흔들어주며 동생이 갈 때까지 배웅해주었다는 것이다.     

흡사 삼촌이 조카 봐주 듯이 정성스레 챙겨주더란다.

엄마들이 한 번으로 끝난 게 아니라, 너무 부럽다는 말로 세상의 모든 칭찬은 다 끌어주는 듯 했다.     


“좋겠어요, 든든하시겠어요”     


든든하다는 얘기는 아이들이 20대 이상이나 되어서야 들을 수도 있겠지 생각했는데,

갑작스레 ‘훅’ 하고 감동이 밀려들었다.     


“아고....그러게요....밖에서라도 잘 챙기니 다행이네요”     


생전 들어보지 못한 칭찬 일색에 몸둘 바를 모르고, 세상 겸손한 척 흐뭇한 미소까지 지어보이며, 딸아이의 분홍 싱싱카를 끌고 헤어졌다.     

회사 출근할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내려왔지만, 이 충격적인 소식에 그대로 회사로 가긴 싫었다.

아까 그 칭찬 듣던 남자들이, 진짜 내 아들들이 맞을까, 굳은 고정관념은 미담도 의심하게 만들었다.    


엄마가 회사 간 걸로 철썩같이 믿고 있던 두 남자.

문밖에서부터 다투는 소리가 들려온다. 밥 먹고 씻으라고 얘기하고 헤어진 게, 20분 전인데...여전히 티비 프로그램을 뭘로 정할지로 싸우는 모양이다.     


삐삐삐삐,철커덕.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놀랐는지 긴장된 침묵이 흘렀다.

“엄마, 왜요?”

그 짧은 시간에 얼마나 다툰건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있었다.

“뭐하니!”

이상하게 아들들만 보면, 군대 상사같은 말투가 먼저 나온다.     

“우리? 이거만 보고, 빨리 정리하께요....아님, 지금 끌까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치 빠른 둘째가 리모콘을 내게 넘겨준다.

     

천 번을 말해도 한 번 들어줄까 말까하는 이 철부지들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잔소리 화살을 받던 상처 투성이 과녘같던 아이들이,

그 엄마들의 증언 몇 마디로 달리 보이는 것이 아닌가.


저 하늘 높이 날아갈 튼튼한 화살처럼 힘있고 생기있어 보이는 멋진 남자 둘이 서 있는 것이다.     

분명히 엄마가 열 받아서 자기들을 나무랄 줄 알고 잔뜩 긴장했을텐데, 엄마의 조용한 눈빛과 미소가 견딜 수 없이 어색한 듯 했다.     

“엄마, 다녀오세요~ 우리 빨리 씻고 정리할께요~”

눈치 없던 첫째도 부스럭부스럭 자리 정리를 시작했다.


“아들들아, 아니 왕자들아~! 너네가 있어서 너무 든든하다!”

꾸중을 들을 때보다 더 두려운 표정과 굳은 근육으로 아들들은 화장실로 달려갔다.

    

말 많고 탈 많던 첫째 아들, 그 형에 치여 우울증에 걸렸던 둘째 아들, 그리고 늦은 나이에 낳은 막내 딸까지...

어쩌면 12년의 독박육아가 내게 남긴 것은 비집고 들어올 틈 없는 지독함이었다.

버티고 이 악물고 가는 동안, 아이들을 제대로 단도리 해야한다는 강박에, 여유로운 마음으로 삶 속에서 감사를 찾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예상치 못했던 엄마들의 칭찬이 지난 시간들의 보상처럼 크게 느껴졌다.     


‘든든하시겠어요~’


그로부터 여름 방학이 끝날 때까지, 막내의 등원 시간만 되면 엄마들의 눈빛을 은근 기대하며, 나는 든든한 여자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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