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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잠 Oct 07. 2021

올 여름엔 슬픔의 바다에 다녀왔다

슬픔의 바다에선 수영이 불가능하다

올 여름, 코로나가 번져가는 와중에도 쉼을 갈망하는 이들이 넘쳐 여전히 바다는 붐볐다.


그 열기에 끼지 못하고 홀로 떠돌던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슬픔의 바다로 떠나게 된다.

슬픔의 바다는 누구나 갈 수 있지만 따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정해진 것이 아니어서

스스로를 잃을 만큼 슬픈 와중이나 평소에는 꾹꾹 눌러왔던 슬픔이 무심히 영화를 보던 중 슬몃 터져나왔을 때 나도 모르게 도달해 있게 된다.


번번이 계획 없이 떠나게 되는 여정이지만 올해는 사막이 아니라 바다였다.

어떤 해에는 불안의 늪에 떨어지기도 막막함의 사막에 갇힌 적도 있었지만 이번엔 바다였다.

계절과 상관없는 다양한 여정 중 처음으로 여름이란 절기와 맞아떨어지는 여행지였다.


도착한 바다에는 당연하게도 아무도 없다.

처음 바다에 온 순간에는 넘실대는 파도속에서 한참을 허우적거리다 이내 힘을 빼고 체념한 뒤엔

파도에 따라 쉼없이 밀려나갔다 들어왔다를 반복하게 된다.

이토록 무기력하고 의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슬픔의 바다를 타인이 찾는 것은 불가능하고 도착한 사람조차

어딘지를 설명할 길이 없다.

다만, 이곳이 어떤지 본인은 확인가능한데 그건 스스로 거울을 볼 때이다.

거울 속에서 스스로의 눈을 바라 볼 때면 어느새 파도가 일렁거리고 있는데 그제서야 스스로가 어디 있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누구도 설명하기 어려운 곳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해마다 거쳐가는 곳이기에 때때로 슬픔의 바다로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지난번에 슬픔의 바다를 다녀 온 한 사람은 그 바다에서 나오는 것을 거부하고 바닷속으로 끝없이 들어가 버린 채 여행에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 사람이 모든 의지를 잃어버리고 삶을 포기한 것이라 수근거렸지만 실은 그 사람은 본인의 선명한 의지로 그 바다에서 새로운 삶을 평생 살기로 작정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 순간의 그 사람이 아닌 우리는 그 부분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해선 안된다.


그리고 바다를 다녀온 뒤 전보다 더 활력있고 행복해진 사람도 본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운이 좋게 직접 만날 수 있었는데 그도 처음 슬픔의 바다에 도착해서는 낯설고 두려운 마음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참 눈물을 흘리다 주변을 둘러보니 바닷물이 가득히 차오를 수록 바다가 점점 더 깨끗해지고 정화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쯤에서 또다른 희망을 보게 된 그는 이제는 적극적으로 그간의 슬픔과 불안, 근심, 걱정 그 외 마음 속에 쌓여있는 모든 것들을 다 꺼내어 슬픔의 바다에 왕창 꺼내 전부 풀어버렸다.

그랬더니 결과적으로 마음 속 먼지들이 응어리지지 않게 되어 그 사람은 스스로 바다에서 걸어나올 수가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여행을 마친 그에게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잠깐 잊은 이야기가 있다.

슬픔의 바다에서는 수영이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그건 심리적인 이유 탓이지 절대적으로 수영이 불가능한 외부적인 요인이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거기에 간 대다수의 사람은 스스로 의지를 잃는 쪽을 택하고 많은 시간을 버둥거리거나 아주 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개중에는 슬픔의 바다가 체질에 맞아 그 곳에서도 마음껏 바닷속을 헤엄치며 뭔가를 찾아 나가려하는 모험심 가득한 예술가들도 종종 있다고 한다. 요즘은 잘 없는 직업이지만 철학가 한 명은 그곳에서 마침내 평생을 찾아헤맨 슬픔의 정수를 찾아내었다고 그걸 늘상 자랑거리처럼 품고 행복해하고 있다고 들었다. 슬픔덕에 한껏 행복해졌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그런 일이 꽤나 흔히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슬픔의 바다에 대한 내 이야기는 대충 이정도면 충분히 설명이 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약간의 당부를 곁들이자면 아마도 당신도 언젠가는 가게 될 그 바다에 대해 준비해 두는 것도 좋을 것이다.

어느 날 문득 거울속을 들여다 보다 눈 속에 가득 들어찬 바다를 보았을 때엔 이미 당신은 돌이킬 수 없는 여행을 시작해 버린 것일 지도 모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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