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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씩씩한 봉황새 Sep 16. 2023

시골 약사의 하루

"약사님. 저는 자살을 하려고 했는데요."

  어느 날 등산복 차림에 등산가방을 멘 중년 남성분이 우울증 약과 수면제를 처방받아오셨다.


하얀 얼굴에 검은 뿔테. 평일 대낮에 찾아온 환자분을 대수롭지 않게 그냥 넘길 수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신경이 쓰였다.


  산을 타시들처럼 생기도 없으셨고 당장 등산을 하시려는 분이 약을 타러 오셨다는 것이 걸려서일까. 괜히 한마디를 더 붙이게 됐다.


"오늘 어디 산 타러 가세요? 저는 수덕사가 있는 덕숭산이 좋던데요."


그러자 그 손님은 내 물음에 상관없이


"우울증 약이랑 수면제 한꺼번에 복용해도 상관없습니까?"

라고 되물으셨다.


나는 우선적으로 알프람이란 우울증약은 잡생각을 덜 나게 하고 수면방해에 쓰일 수 있는 약이라고 설명드리고, 꼭 필요할 때만 졸피뎀을 드시라고 설명드렸다.


그러더니 환자분은 설명을 다 들으시고 나가시는 듯하더니 약국문에 붙어있는 자살방지포스터를 한참 보고 계셨다.


나는 이상함을 감지하고 얼른 손님께 다가갔다.

"환자분 힘든 일 있으세요? "


그러자 손님께서 갑자기 떨리는 목소리로

"이게 도움이 될까요?"라고 물으셨다.


당시 나는 자살방지 연계 약국을 운영하면서 힘든 일을 토로하시는 분들께 보건소 자살방지상담센터로 연계해 드리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럼요. 선생님께서 도움을 요청하시면 제가 상담신청서랑 체크지 작성해서 보건소에 연계해 드려요."


"제가 사실 약사님 자살을 하려 했는데요. 저도 살 수 있을까요?"


직접적으로 자살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네. 그럼요. 상담 치료사선생님께서 많이 도와드릴 거예요. 병원비, 약제비도 보건소에서 지원받으실 수 있어요. 그리고 약국에 약 타러 오셔서 저한테 이런 얘기 저런 얘기하시고 놀러 오셔도 돼요."


놀란마음에 막 주절주절 설명해 드렸다.

손님은 체크지를 작성해서 직접 가보겠다고 말씀하시고는 문을 열고 나가셨다.


그러고 한참 지난 뒤 보건소에서 연락이 왔다.

약사님이 연계해 주신 분 상담받고 많이 좋아지고 계시다고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다고.


내가 한 것은 단지 나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고, 그분에게 말 한마디 더 붙인 것밖에 없었다.


그분은 타인의 관심과 도움이 우울증 약보다 더 큰 약이었는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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