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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후 May 21. 2021

곰과 문의 이야기

유령 K

아무것도 없는 긴 흰색 벽지로 가득 찬 방안에서 그들이 깨어난 것은 벌써 이틀 전의 일이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채로 방에서 깨어난 그들은 잠들기 전, 입고 있던 옷가지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그들은 누가 자신을 이곳으로 옮겨놨는지, 언제 누가 우리를 구출할 것인지를 두고 논의하기 시작했다. 


A는 방안에서 나가기 위해 방안을 둘러보자고 제안했고, B는 두려움에 떨며 구조가 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다. 그들은 몇 번 다퉜지만, 결국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B 역시도 방안을 둘러보자는 A의 제안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A와 B는 방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A는 앞장서서 B를 이끌었고, B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모양이었다. 몇 시간이 지나서였을까, 결국 저 멀리에서 방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봐, 역시 끝이 있다니까? 나오길 잘했지?” 


 A가 기세등등한 듯한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모르지, 저기에 뭐가 있을지는”


B는 퉁명스럽게 답했다.


결국 마침내 그들은 방 끝에 도달했다. 방 끝에는 은색 철로 이루어진 단단한 두 개의 문이 있었다. A와 B는 어느 쪽 문으로 들어가야 할지 얘기하기 시작했다. A는 각자 다른 문을 들어가자고 했지만, B는 같이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결국 논의 끝에 A와 B는 두 문을 모두 한 번씩 들어갔다 나오기로 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그들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전에 있던 방문은 마치 누가 밀어내는 것처럼 닫혔다. A는 닫히는 문을 붙잡고 발을 끼워봤지만, 거세게 밀어붙이는 알 수 없는 힘을 막아설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새로운 방에 들어간 A와 B는 무서웠다. 방은 어둡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몇 초가 지나자 불이 켜지듯 방은 온통 흰색으로 바뀌었다. 시야가 보이자 그들은 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방에는 콘 옥수수통조림 캔과 물 한 병이 놓여있었고, 또 다시 두 개의 철문이 놓여있었다. A는 배고프니 얼른 먹자고 제안했고 B는 독이 들은 게 아닐까 미심쩍었지만, 더 이상 배고픔을 이겨낼 수 없었다. 그들은 통조림 캔을 딴 후 나눠먹었고, 물도 반씩 나눠마셨다.


그들은 한동안 새로운 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기대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다시 새로운 문을 열고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새로운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계속해서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새롭게 들어가는 방에는 어김없이 두 개의 문과 통조림 캔, 그리고 물 한통이 있었다. 그리고 한 번 닫힌 방문은 무슨 수를 써도 다시 열리지 않았다.


며칠간 계속해서 같은 일이 반복됐다. A와 B는 또 다시 새로운 문에 들어갔고, 문에 들어가면 통조림 캔 하나와 물 한 병, 그리고 또 다른 두 개의 문만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들의 하루는 문으로 시작해서 문으로 끝났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어느날 처럼 똑같이 방문을 열고 들어간 방 안에는 통조림 캔과 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방 안에는 하나의 문이 존재했다. 문 위에는 ‘곰’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A와 B는 그 문을 놓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A는 그것이 문의 끝일 거라고 생각했고, B는 그 문을 여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했다. 


“그 문 안에는 곰이 있을 거야”

“뭐? 말도 안돼, 분명 저 문은 끝이야”

“그럼 저 ‘곰’이라는 글자는 어떻게 설명할건데?”


A가 피식 웃으면서 답했다.


“너 바보야? ‘곰’을 거꾸로 하면 ‘문’이 돼. 저건 밖으로 나가는 문이라고!”


A와 B는 또다시 다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방 안에는 식량이 많이 남아 있었고, B는 ‘곰’이라고 쓰여진 문을 나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반면 A는 반드시 문을 열고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A는 더 이상 B와 함께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나는 저 문을 열고 나갈게, 너는 이 방에 남아”

“뭐? 네가 저 문을 열고 나가면 저 문은 더 이상 열리지 않을 거야”

“그럼 이대로 가만히 있자고?”


B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결국 A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럼, 문에 들어간 후에 아무 일도 없다면 문을 두드려 줄 수 있어?”

“알았어, 그렇게 할게”

“그리고 혹시라도 밖에 나가게 된다면. 나를 구출하러 오겠다고 약속해줘”

“당연하지”


A는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통조림 캔 몇 개와 물통을 챙겼다. 그리고 방 문앞에 서서 마지막으로 B와 작별인사를 나눴다.


“아참, 그러고 보니 통성명도 안했네, 네 이름은 뭐야?”


A가 물었다.


“나의 이름은 ‘절망’이야, 네 이름은?”

“내 이름은 ‘희망’이야”


A가 B에게 손을 내밀었고, 둘은 악수를 했다. A는 B를 뒤로한 채 문을 열었다. 혹시나 싶어 무슨 소리가 들리나 귀를 기울여 봤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방 안은 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A는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멈춰섰다 방안에 들어갔다. 그러자 문이 쾅 하고 닫혔다.


B는 문 앞에 서서 A가 나간 문을 짐짓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혹시나 싶어 방 문을 열어보려 문고리를 잡고 돌렸지만, 역시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B는 A가 나간 철문을 쾅쾅 두드렸다.


“이봐, 어때? 괜찮아?”


하지만 문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B는 방에 혼자 남았다. 그렇게 세상에 ‘희망’과 ‘절망’이 생겨났다.


=끝=



글쓴이: 유령 K

소개: 그가 나타났다. 그리고 사라졌다.


매거진 '추후'

이제 막 서른이 된 친구들이 모여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영화, 음악, 문학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서른의 시선을 담은 글을 매주 [월/수/금]에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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