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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연 Oct 20. 2024

폭발

소설

 터져버렸다. 기어코 터진 그것의 파편들은 온 집안의 벽에 맞고 다시 튕겨 나와 꽂힌다. 일부는 가족에게 나머지는 모두 자신에게. 남을 향해 던져진 그것이 결국 나에게 더 큰 상처로 남는다는 것을 모른다. 파편들은 상처를 내고 더 깊이 파고들어 뽑아낼 수 없는 흔적들을 남긴다. 그 흔적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딱딱하고 두껍게 엉겨 붙은 흉터가 된다.


 석희는 눈을 감을 수 없다. 자려고 눈을 감으면 낮에 있었던 일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도움을 받으려고 먹은 수면 보조제도 효과가 없다. 정신은 더 또렷해지고 기억은 점점 더 선명해진다.

더 참았어야 했다. 계속 그렇게 살아야 했다. 지금껏 그렇게 참고 살았는데 왜 이제야 각성해서 모든 감정을 다 표현하려고 하는 건지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는다. 참고 참다 그 숨 막힘에 죽는다 해도 무서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라도 편안하게 늘 하던 대로 그냥 더 참아야 했다는 후회로  온몸 구석구석 손가락 끝 세포까지 모두 아프다.


 석희는 모든 대인관계를 힘들어한다. 전화기는 항상 먼 곳에 둔다. 그래야 일부러 받지 않은 게 아니라 몰라서 못 받은 것이 된다는 면죄부를 석희 스스로에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발신번호 표시에 친정식구들의 이름이 뜨면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석희에게 가장 두려운 발신자는 친정 가족이다.


 아침부터 감당할 수 없는 귀찮음으로 시작 한 하루였다. 해야 할 일이 잔뜩 있지만 노려보기만 하고 있다. 그런 자신이 한심해서 더 무기력해지는 늘 반복되는 오전이었다. 두 번째 울리는 동생 석영의 전화를 받지 말았어야 했다. 처음 울린 벨을 받지 않았던 것처럼.

"언니, 뭐 해?"

"왜?"

"언니, 어디 나갈 거야? 나 주아 어린이집 적응 시키러 왔는데, 1시까지 시간이 비어서 언니네서 잠깐 쉬었다 가려고?"  

명랑한 목소리로 묻는다. 석희는 석영의 밝은 목소리가 더 슬프게 들린다. 

"아니, 오지 마! 싫어. 너네 집으로 간다며? 너네 집 가서 쉬어"

못마땅함을 숨길 수 없는 말투다.

"아, 왜 그래. 그럴 수 없는 거 알잖아 언니네로 간다 알았지? 갈게. 언니 볼 일 있으면 나가"

석영이가 '오지 마 싫어'를 '그래 와'로 받아들이지 않았어야 했다. 아니, 석희가 더 강하게 거절 의사를 표현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석희가 품고 있던 폭탄이 더 오래 숨겨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쩜 그 존재 자체를 몰랐을지도.


 '딩동'

석희은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이제 돌이 된 조카 주아가 보고 싶어 맘을 정리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석희는 주아를 보고 웃어 줄 겨를도 없었다.  주아를 안고 있는 엄마, 그 옆에 서 있는 석영, 그리고 한 걸음 뒤에 서 있는 아빠의 모습이 카메라 줌 당기듯 크게 확대되어 보였다. 안쓰러움, 속상함, 답답함을 담은 화가 석희을 휘감았다. 지금이야. 터져버려. 화를 받아내야 하는 사람들이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석희는 냉큼 발짝 뒤로 물러나 격양된 목소리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사람 아니 주아까지 사람 누구에게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혼자 흥분하여 미친 듯 입을 열어 아픈 말을 쏟아내고 있다.

"주아 어린이집 상담 가는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모두 대동해서 가야 하는 거야? 석영이 혼자서 뭘 할 수 있도록 해야지. 엄마, 아빠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것 같아?  엄마 아빠답게 행동해.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왜그래?"

석영이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석희를 진정시키려 한다. 이후부터는 무슨 말을 했는지 얼마나 고함을 질렀는지 석희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석희의 행동에 당황한 가족들은 앉지도 못한 채, 신발만 겨우 벗고 거실에 서서 석희의 분노가 사그라들길 기다리고 있다.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석희는 주방으로 가 설거지 거리를 세게 내려친다. 그릇 깨지는 소리보다 더 크게 소리친다. 듣는 사람들의 마음은 조금도 헤아리지 않는다.

"지겨워. 지겨워"

아무것도 아닌  작은 일에 켜켜이 쌓인 여러 가지 감정들이 기름통에 던져진 성냥불처럼 강약 조절 없이 분출되어 버린 것이다.

가장 사랑하면서도 가장 미워하는 그들에게.


엄마, 아빠에게 마구 쏟아내는 석희의 악다구니를 더 이상 못 듣겠다는 듯이 석영이 신발을 신으며 말한다.

"갈게, 그만해. 가면 되잖아"

주아를 계속 안고 있던 엄마도 석영을 따라나서며 거든다.

"지랄도. 아무리 속상하고 보기 싫어도 이러는 건 아니지"

테이블 의자에 놀라서 주저앉아 있는 비쩍 마른 아빠는 쫓아 나가지도 못하고 얼어 계신다.

"뭐가 그렇게 화 날 일이야?" 조용히 말씀하신다.

석희에게 한 말인지 혼잣말인지 알 수 없다.

"아빠도 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

"간다."

아빠의 한숨 섞인 말에도 석희는 쳐다보지 않는다. 다시는 보지 않아도 될 사람들처럼 그렇게 그들을 보내버렸다.


석희는 뱃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주저앉지 않으려고 벽을 의지해서 서 있다. 장이 힘 없이 늘어지는 것 같고 허리가 굽어진다. 심장이 요동친다. 좀 전에 아침 겸 점심으로 먹은 것들이 식도를 거슬러 올라온다. 쉽사리 진정되질 않아 거실을 빙빙 돈다. 조카 주아의 울음소리가 귓전에서 맴돈다. 석영의 눈물 고인 눈이, 엄마의 질타하는 눈빛이, 아빠의 떨리던 작은 목소리가 한 줌 심장을 옥죄어 온다. 열린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이. 사라지고 싶다는 간절함이 머릿속을 채운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지만 참아낸다. 울어버리면 지금 행동은 온전히 석희의 잘못임을 인정하는 것이 될 것 같아서다. 마음껏 소리를 질러내도 시원하지 않다. 시원해야 정상 아닌가? 석희는 욕실로 간다. 흥분으로 그리고 후회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찬물로 씻어낸다. 거울 속 얼굴을 볼 수 없다. 비겁하다.


그들이 처한 상황의 안타까운 마음은 어느 순간 석희에겐 책임감이라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힘으로는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안 뒤로는 그것이 화로 바뀌어 버렸다. 이제야 찾은 석희의 고요한 시간에 돌을 던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주는 괴로움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석희가 자초한 괴로움이 아니기에 더욱 그러했다. 시작이 어딘지도 모르고 상대도 없이 떠도는  그 화를 오늘 뿜어내고 만 것이다. 석희에게 그들은 마음껏 사랑하지도, 마음껏 미워하지도 못하는 존재다. 석희는 가족이 제일 불편한 존재인 것이 비단 자기뿐이 아니 길 바란다. 자기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쁜 인간이 아니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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