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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연 Oct 27. 2024

엄마

소설

18살 어린 소녀가 엄마가 되었다.  진통이 뭔지도 제대로 몰랐던 엄마는 아빠와 지하철을 타고 큰 외삼촌댁에 가던 길에 양수가 터져버렸다고 한다. 당황스러움을 느낄 새도 없이 시작된 진통에 겁이 났단다. 병원까지는 어떻게 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한다. 아빠는 엄마를 안고 갔다고 하기도 하고, 업고 갔다고 하기도 한다. 아빠 역시 기억나지 않는 것이 틀림없다. 이틀에 걸친 산통에 정신을 놓았다 잡았다를 반복하다 이제 정말 죽겠다 싶었다고 한다. 더 이상 힘을 줄 수도 없을 만큼 탈진했기 때문에 기계로 빼내어진 아기의 머리에는 한 동안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던 그 순간부터 아기와 엄마는 서로에게 고통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정이 많고 따뜻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린 엄마는 서툴고 차가웠다. 낮밤이 바뀐 아기를 힘들어했고, 늦은 밤 울며 잠들지 않는 아기를 재우는 것은 언제나 아빠 몫이었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아빠에게

"아기엄마 도망갔어요"

라고 물었다. 모성애도 유전이 되는 것일까? 석희도 엄마를 닮았다.


 고아나 다름없던 가난한 아빠를 만나 지독한 가난 중에 아기를 낳은 어린 엄마는 삶이 무척 고되고 힘들었다.  7남매집 여섯째 어린 딸은 붙잡는 가족을 뒤로하고 아빠를 따라 나와 온갖 고생을 했다.


 애쓰며 살아가고 석희를 키워가면서 가끔은 엄마도 엄마가 보고 싶었겠지. 엄마도 어렸으니까. 엄마를 부르며 울고 싶고, 품에 안겨 위로받고 싶었을 것이다.  두 번째 아기를 낳고 얼마뒤, 엄마는 그리움을 못 이기고, 그 그리움을 찾아 집을 떠났다. 엄마가 남겨 놓은 두 아이도 엄마를 그리워했다는 걸 몰랐을까.  아이들은 엄마의 부재에 빠르게 익숙해졌다. 그래야 살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터득했을지도 모른다.


 핏줄이 그리워서인지. 아니면 충분히 위로를 받았는지. 그것도 아니면 가난을 버티에 낼 수 있는 용기가 생겼는지 엄마는 돌아왔다. 근면한 아빠와 악착같은 엄마는 살고자 노력했다. 배움이 짧았던 엄마는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했고, 살림을 불리기 위해 노력했다.  청바지 실밥 정리하기, 손뜨개로 스웨터 뜨기, 목욕탕 손님들 때 밀어주는 일까지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살림은 눈에 띄게 좋아졌고 작은 집을 사 셋방살이를 면하게 되었다. 아빠의 일도 날이 갈수록 잘 되었다. 하지만, 날씨가 언제나 맑음 일 수는 없었다.


 돈은 버는 것보다 쓰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오죽하면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라 했을까?

엄마는  몰랐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돈이 숨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아빠의 가게가 잘 되면서 매일 현금을 만지게 되었다. 저녁에 아빠가 가지고 오는 현금을 다음날이면 엄마는 은행에  맡겼다. 인상 좋은 엄마는 은행 직원들과 사사로이 친해졌다.

"사모님, 적금 이자 얼마 안 되잖아요. 돈 저한테 맡겨봐요. 이자 보다 더 받아 드릴게."

매일 은행을 드나드는 엄마는 사기꾼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미끼를 덥석 물어버린 엄마는 지인들의 돈까지 끌어다 땅, 금등에 투자했다. 보지도 못한 땅에 말이다. 의심을 갖지 않았던 이유는 투자 권유를 한 사람이 은행 직원이었고 한동안은 재미를 봤기 때문이었다.


 경제 위기가 온 나라를 휩쓸 무렵. 은행도 망하는 사태가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그즈음 엄마는 말수가 줄어들고 온종일 누워 있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가끔은 넋 나간 사람처럼 창문 옆에 쭈그려 앉아 있기도 했다.

짜증이 많아지고, 우울해 보였다.

"석희야. 네 신용카드 엄마가 좀 쓰자. 너 쓰는 거 빼고 엄마 좀 줘."

엄마가 신용카드를 가져갈 때도 석희는 앞으로 일어날 일은 상상도 못 했다.


 엄마와 거래하던 은행이 다른 은행과 합병이 되면서 투자를 권유했던 은행 직원은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버렸다. 모든 책임은 직접 돈을 끌어 모았던 엄마가 져야 했다. 이번에도 엄마는 엄마가 그리웠던 걸까? 누구의 품에서 위로받고 싶었던 걸까? 뒷수습은 남은 가족에게 남겨놓고 엄마는 다시 사라졌다. 30년을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3 달이면 충분했다. 신혼집을 친정 근처에 마련한 죄로 찾아오는 빚쟁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건 석희의 몫이었다.

"너 엄마 어디 있는지 알지?"

"......"

"빨리 말해. 엄마 찾아서 내 돈 내놓으라고 해"

"......"

"엄마집 열쇠 내놔. 팔 수 있는 물건 가져다 그거라도 돈으로 바꾸게"

"......"

엄마 없는 집 장녀 석희는 엄마가 들어야 할 소리를 기꺼이 대신 들었다. 눈 감고 입 닫고 오로지 귀만 열려 있는 사람처럼.  가끔 아빠의 일터까지 찾아가던 빚쟁이들은 석희를 다그치는 게 더 쉽다는 걸 알았다. 집을 떠나 있던 석영을 제외하고, 아빠와 석희는 연좌제의 피해자였다. 엄마는 가족을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로 만들어 놓았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지긋지긋 해졌다, 두려웠다. 


그즈음 석희는 임신 4주 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엄마와 연락조차 되지 않던 시간은  꽤 길었다.  마음껏 써 보지도 못하고 모은 돈으로 마련한 엄마의 첫 집은 채권자들이 조각조각 나누어 가졌다. 원금을 모두 챙기지 못한 빚쟁이들이 가끔 찾아왔지만 석희는 이미 단단해져 있었다. 그들의 악담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제 풀에 지쳐서 더 이상 석희를 찾지 않을 때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된 건 석희가 아기를 낳은 후였다.  

"방이 추워서 아기 감기 걸리면 어째? 이 이불 위로 아기 데리고 와"

한 겨울 산동네 구석에 있는 아주 작은 방 한 칸에서 엄마는 처음 만난 4개월 된 어린 손녀를 끌어안고 소리 없이 울었다.


 석희는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힘들고 두려웠었는지. 얼마나 살기 싫었는지. 얼마나 엄마를 미워했는지. 엄마의 행동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마지막으로 얼마나 걱정했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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