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 말을 거네 25

의식주

by 능선오름

25


‘집’에 대해 생각한다.

의식주. 혹은 식의주.

전자는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방식이고 후자는 중국에서 부르는 방식이라고 한다.

우리는 체면, 중국은 먹는 것 우선인가 싶다.

어떤 방식이든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요소 중 하나가 집이다.

그런데 요즘은 아무래도 ‘주식의’가 아닌가 싶다.

일단 ‘주’가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라 식, 의가 많이 달라지니 말이다.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일상생활을 위한 집값이 너무나 높으니 뭔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인 건 사실이다.

보통의,

월급을 받고 살아가는 서민이 집을 서울이나 대도시에서 장만하려면 평생 월급을 모아도 거의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부모로부터 종잣돈이라도 물려받지 않는 한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도 금융권의 힘을 빌려 집을 장만하는 게 성공이자 훗날 유일한 재산이 되는 것이다.


현실이 이러하니 방송 매체에서 나오는 멋진 집이라거나 우아한 인테리어는 소수만의 꿈같은 독점물이 되기도 한다.

고대로부터 집의 규모가 부의 척도인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현재도 집의 규모, 그리고 자신의 주소지가 어디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사회적 척도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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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머나먼 지방에서 서울에 취업하여 올라온 후배들을 본 적이 있다.

그 대부분은 미친듯한 월세를 자랑하는 강남지역에 힘겹게 거주하곤 했었다.

상식적으로 그들이 그 원룸 같은, 실제로 다가구 주택 반지하 같은 식의 집에 머무는 가격이면 전철 라인을 조금만 타고 가면 훨씬 거주 조건이 좋은 집들도 많았었는데 말이다.

그들에게 물어보면 그래도 서울에 왔는데,

친구들이 오더라도 그렇고 지방에서 알아주는 ‘강남’에 사는 게 목적이라고 들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닌 단편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했다.

집의 거주성과 지명도를 맞바꾼 셈이다.


이런 상황들을 보면 뭔가 우리나라의 부동산 정책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다른 나라의 대도시들도 그리 다르지 않다.

홍콩의 거래처 사람이 한국에 와서 일하다가 함께 점심을 먹고 강남 노른자 주변을 거닐며 그가 그곳의 주택들 가격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대략적인 가격을 알려주자 그렇게 싸? 하는 분위기.

하긴, 홍콩의 부동산 중개업소에 붙어있는 렌트비용만 보면 강남 아파트를 사고도 남을 가격이니 고개를 끄덕일밖에.


홍콩에 출장을 가서 우리나라로 치면 자갈치 시장 같은 곳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주변 지저분한 부두에 영화에서 보던 정크선들이 많이 떠 있는 걸 보았다.

늦은 저녁이었는데 그 정크 선에서 부두로 연결된 허술한 나무다리를 어떤 여성이 건너는 게 보였다.

옷차림새는 분명 어디 시내 중심가 금융회사에 다닐법한 사무직원의 복장이었는데,

잠시 후 그녀가 가냘픈 정크 선의 뱃전에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 바가지로 물을 머리에 부으며 머리를 감는 모습에 뜨악했다.

홍콩 현지인의 말에 의하면 아마도 그 여성은 적어도 할아버지 대부터 그 배에서 살았을 것이고,

거기서 태어나 학교에 다니고 취업을 했을 거란 이야기.

저녁 전에 빅토리아 피크에서 보이는 산정의 으리으리한 개인 주택들을 보고 온 기억과 지나치게 상반된 상황에 좀 어처구니가 없었긴 하다.

어쩌면 그와 비슷한 광경을 한국에서 본 외국인의 시선에도 마찬가지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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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_(5).jpg 홍콩 서민 아파트


강남구의 어떤 아파트 거실에서 내려다보니 바로 그 아파트의 층에서 내려 보이는 곳에 거의 판잣집 수준의 집들이 산기슭 아래로 즐비하던 기억도 있다.

그곳의 거실 소파에 앉아 바라보는 산은 충분히 전망이 좋았다.

다만 베란다에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지만 않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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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격차는 선진국일수록 두드러지고,

일본 도쿄 중심부들에는 밤이 되면 숱한 노숙인이 자리를 깔고 잠을 청한다.

미국에서도 비좁은 자동차 안에서 먹고 자는 사람들이 많다.

모든 거주성은 결국 경제력에 의해 달라지고 그건 고대 로마에서도 다르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다?

그때와 달리 자본이 충분히 넘치는 시대를 살면서 사실상의 물리적 가치가 과다하게 부풀려진 부동산은 문제가 있다.


경제력에 따라 집이 커질 수도 있고 비좁을 순 있다.

그러나 생활의 기본권이 어려울 정도의 주거지가 아직 많다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지극히 평범한 건축학도인 내가 거기까지 생각을 하다 보면 그저 막막하다.

건축이란 인간을 위한 기술인데, 그걸 제대로 써볼 기회도 없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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