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내의 길지 않은 인생은 그리 화려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매우 비참한 것 도 아닌 그저 그런 소시민적인 삶의 연속이었다.
수도권에 위치한 대학교에서 특별히 원해서가 아닌 성적순에 따른 과를 전공하고,
그저 그런 중간 정도의 성적으로 역시 그저 그런 중견기업에 공채로 입사를 하여,
기획실에 근무할 때만 해도 사내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그리고 운명에 대해서 특별히 불만도 너무 큰 야심 같은 것 또한 없었고 나름 화이트칼라에 이름을 대면 사람들이 대충 알아듣는 회사에서 관리직 위치를 가진 것만으로도 자부심 비슷한 걸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외환위기라는 – 사내는 사실 현재도 외환위기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른다 ―
총성 없는 전쟁 같은 걸 치르는 와중에 딱히 눈에 띄는 존재감이 없던 사내가,
정리해고 대상 일 순위가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나름 열심히 일을 했고,
비록 튀지는 않았지만 성실하게 출퇴근을 반복하던 그에게 있어서,
자신이 몸을 담던 일터에서 쫓겨난다는 건 둥지에서 밀려 난 새끼 새 같은 처지와 다르지 않았다.
그는 바깥세상에 적응하기 힘들었고, 몇 푼 안 되는 퇴직금마저 친구 권유로 주식에 투자했다 다 날려 먹은 빈털터리 신세가 된 것이다.
이후로 그만그만한 회사들에 백통이 넘는 이력서를 보내 보았으나,
그 차갑고 냉엄하던 시절에 그만그만한 경력을 지닌 사내를 받아주는 회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이리저리 돈에 치이던 사내는 카드빚을 밀려서 신용불량자까지 되고 난 이후에야,
현실적으로 이전과 같은 양복 셔츠를 입고 일을 할 기회는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는데 이미 몇 년의 시간들이 흐른 이후였다.
그동안 처음에는 동정의 눈초리와 격려를 아끼지 않고 때때로 용돈을 보태 주기도 하던,
하나밖에 없는 누나도 마찬가지 상황이 되어버린 매형 때문에 시골로 이사를 가면서 사내에게 ‘정신 차리고 막노동 이든 뭐든 해서 먹고 살라’ 고 한마디 욕설을 남기고 간 상황이다.
이후 사내는 신용불량자로서 할 수 있는 막노동과 같은 날품팔이로 근근이 입에 풀칠을 하게 되었었고,
그나마 서울에 있던 월세 방도 세가 밀려서 수도권 외곽의 무너져가는 빌라로 이사를 오게 된 터이었다.
그런 그에겐 제대로 연애를 해 볼 시간이나 여유로움 따위는 없었으며 그럴 마음조차도 없었다.
알고 지내던 사람의 호의로 그나마 노동 강도가 조금 덜한 물류센터의 박스 포장 일을 하게 된 것은 그나마 사내에겐 천행의 기회가 된 것이다.
사내는 힘이 세지도 않았고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 도 아니라서,
아파트 경비원 같은 일을 지원해 보았으나 그런 일을 하기 에는 너무 젊다는 게 또 문제였다.
그렇다고 다른 직장을 구하기엔 이미 무 경력으로 보낸 기간이 길고 나이가 또 많아서,
회사 정규직 채용은 언감생심 이미 물 건너 간 상황 인지라 사내로서는 큰 선택의 여지도 그럴 의지도 없어진 지 오래였다.
단지 한 달을 먹고 지낼 공간에 대한 비용,
그리고 굶어 죽지 않을 만큼 먹고 마실 수 있는 비용들을 벌기 위해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단순노동의 무한반복을 되풀이할 뿐,
실은 그 자리마저 혹시 빼앗기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사내에겐 현재의 유일한 걱정거리였다.
사내가 무엇인가 시간 혹은 비용을 지불하며 자신의 도락을 즐길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없었고,
퇴근길에 삼각 김밥과 더불어 이따금 월급날이면 호사스럽게 튀긴 통닭 한 마리와 맥주 두어 캔을 사들고 와서 먹고 잠드는 게 살아가는 유일한 낙이었던 상황이었으니까.
비용도 시간도 따로 필요하지 않은 엿듣기의 즐거움이라는 새로운 세계는,
남루하고 단조로운 사내의 일상에 작은 활력소가 되기 시작하였다.
실로 무미건조 하달 수 있는 삶을 지탱해 나가는 가늘기 짝이 없는 사내의 남루한 일상에서,
이웃을 만들고 싶지도 않고 만들면 오히려 스스로의 비루함이 드러날까 싶어 절대 사양하고 싶던 사내였다.
그렇게 스스로 고립 아닌 고립의 시간과 공간 속에 의도치 않던 이웃들의 삶의 모습이,
‘소리’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들어오게 된 것은 사내에겐 일종의 티브이 연속극 같은 것 이어서,
사내는 자신의 새로운 역할에 최대한 성실하게 집중해 보기로 뜬금없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