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 말을 거네 27

구조를 위한 구조

by 능선오름

27


건축 디자인을 보면 호불호가 많이 나뉘어서 특정 디자인이 우수하다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건 개개인별로 선호하는 그림이 다 다른 것과 같아서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다.

과거에 어떤 건축주는 당시 시대상으로 따져도 매우 ‘촌스럽다’고 여겨지던 울퉁불퉁 요란스러운 바로크식 문양의, 게다가 골드로 칠해진 천정 몰딩을 원했다.

전반적으로 미니멀하게 디자인된 건물에 안 어울리는 것이라 수차례 건의를 했음에도 결국 ‘촌스러운’ 싸구려 몰딩이 방방마다 시공되었고 건축주는 매우 만족해했다.

현재까지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건축주 이자 발주처가 왕이니까.


이따금 건축주와 디자인적으로 논쟁이 붙는 후배들을 많이 본다.

단순 디자인뿐이 아니라 공간 분배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런 경우에 나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조언을 하곤 했었다. ( 뭘 더 잘 알아서는 아니고 )

일단 건축주라는 사람은 우리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과 더 많은 생각들로 자신의 건물을 구상했을 거다.

그러므로 그 건축주가 설계자가 생각한 의도와 다를 때는 실력과 검증으로 건축주를 설득해야 한다.

근원도 없고 모호한 ‘ 그건 어울리지 않는다 ’ 라거나 ‘그건 촌스럽다 ’ 라거나 같은 말은 설득력이 거의 없이 적대감을 일으킬 뿐이다.

번거롭지만 여러 사례들을 찾아 보여주거나 가능하다면 시뮬레이션을 해서라도 설계자의 디자인 의도를 관철하거나, 안된다면 건축주 의견을 받아주는 게 낫다.라고.


이게 옳은 것인지는 모른다.

과거 유명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건축가들은 건축주 의견 따위? 무시하고 본인의 의지대로 결과물을 만든 경우가 많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걸작으로 평가받는 건축물이 탄생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건 특수한 경우이고 대개의 건축주는 자신의 건물이 디자인적 지명도를 얻는 것도 좋아하지만 자신에게 이익을 줄 수 있고 사용이 편한 쪽을 선호하는 게 맞다.

그게 아니라면 건축주에게 다른 무엇으로든 신뢰를 줘서 건축가를 믿게 만들던지.


건축주 없는 건축은 존재하지 않는다.

건축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돈으로 자신의 땅에 자기 취향대로 디자인한 건물을 만들 순 있지만, 그걸 타인에게 팔려고 한다면 그 타인도 인정을 해줘야만 한다.

건축은 일반 예술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라는 말은 건축학도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말이다.

20세기 초 미국 마천루를 이끌었던 시카고파의 대표적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1856∼1924)의 말이며 현대건축의 중요한 명제로 각인된 문장이다.

하지만 이 문장이 나온 시기는 100년 전이다.

기존의 장식위주 건축에서 기능위주의 건축으로 격변하던 시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하게도, 전체는 아니지만 대다수 교수님들은 *바우하우스에 기초한 디자인을 강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바우하우스는 1919년부터 1933년까지 독일에서 설립·운영된 학교로, 미술과 공예, 사진, 건축 등과 관련된 종합적인 내용을 교육하였다.

발터 그로피우스가 1919년 바이마르에서 설립했다가, 1925년 데사우로 옮겼다. '바우하우스'는 독일어로 '건축의 집'을 의미한다. 1933년 나치스에 의해 강제로 폐쇄되기 전까지 14년간 운영되었다.

바우하우스의 양식은 현대식 건축과 디자인에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또한 이어지는 예술, 건축, 그래픽 디자인, 실내 디자인, 공업 디자인, 타이포그래피의 발전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위키 지식)


물론 바우하우스가 현대건축의 모태 역할을 하였고, 짧은 운영기간에도 불구하고 그에 관련된 커리큘럼이 많은 건축, 미술, 공예 관련 대학들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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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류의 문화 역사상 절대적 디자인이란 없었다.

과거 고대에서 아치와 돔이 만들어진 것은 디자인보다 당시 재료의 구조적인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미가 더 컸다. 그게 경제적이기도 하고.

현대에 이르러 재료와 구조공학이 발달하면서 그런 제한이 많이 없어진 디자인들이 출연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21세기.

건축 구조와 재료에 대한 것들은 100년 전에 비해 월등히 발달했다.


일전에 지도교수님께 ‘이러이러한 구조의 건물이 가능하겠습니까’라는 우문을 한 적이 있다.

교수님께서는 씩 웃으시며 ‘ 쌔게 구조를 만들면 되지 ’라는 현답을 주셨다.

어지간한 형태의 건물도 구조공학과 재료공학으로 해결이 된다는 말이다.

이쯤 되면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는 명제도 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기술이 모든 디자인 형태를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해도,

분명 한계는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현대 토목공학기술은 자연을 막아내는 방벽도 만들 수 있고 과거라면 위험해 보였을 형태의 경사면도 기술로 붙잡아둘 수 있다.

그러나 분명 그 ‘억지된’ 힘에 아슬아슬한 밸런스를 유지한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시간이 흐르고 재료가 부식되고 성질이 바뀌거나,

지진이나 태풍 등의 이유로 잘 구조설계된 다리도 무너진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건축형태는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디자인과 같은 호불호의 문제가 아닌 그 건축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원론적 입장이다.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한 경계에 만들어진 건축에서 과연 사람들이 진정한 안정을 취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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