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은 강남 이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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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은 강남 이다 2
한강 둔치를 가까운 거리에 두고 있는 최근에 조성된 강남 지역 아파트 단지를 가보면,
단지 내부에 거의 숲에 필적하는 단지 내 공원들도 많다.
인공연못과 메타세쿼이아 산책로가 부분 사진만 찍으면 어느 숲 공원에 있는 듯 착각을 준다..
굳이 이른바 ‘숲세권’ 아파트가 아니어도 숲이 아파트 단지를 채우고 있다.
그렇게 자연적으로 보이는 곳에서 불과 몇 분만 걸으면 바로 전철역이 나오고 각종 맛집과 유명 카페들이 보인다.
그걸 보면 역시 이래서 강남을 찾나 싶다.
대개의 공동주택 단지가 그렇지만 집합건물들은 상자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현재 건축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공간을 사용해야 효율이 높으므로 그렇다.
그러다 보니 내부 인테리어야 멋질지 몰라도 단지의 외관은 그냥 그렇다.
‘멋진 건축물’이라고 할 수는 없는 현실이다.
게다가 사실은 외관이 멋진 공동주택이란 정작 그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그 인지도로 인해서 생기는 랜드마크 효과와,
유명세를 통해 상승하는 부동산 가치는 나름대로 좋은 점이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자연과 어우러진 아파트 단지 들은 거의 대부분 외인의 발걸음을 거부한다.
눈앞에 빤히 보이는 길을 두고도 한참을 돌아서 건너편 도로에 갈 수 있는 곳이 적지 않다.
혹은 단지 내부에 도로가 있다 해도 그 도로를 지나는 단지 외인들에게는 숲도 나무도 배려도 없는 게 현실이다.
어찌 보면 숲과 자연으로 보이는 멋진 조경면적을 성벽 삼아서 거대한 성채를 쌓아놓은 것과 같다.
입주민은 그 안에서 여유로운 숲을 조망하고 산책하며 쾌적하게 지낸다 해도,
당연한 일이지만 성곽 외부를 지나는 시민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물론 민간 아파트라는 게 엄연히 사유재산인데 그 주변을 지날 불특정 다수를 위해 서비스 공간을 제공한다는 건 자본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런 공동주택단지와 건물을 허가하는 것은 해당 관청이 있고 복잡한 도시 건축법 안에는 미관심의에 대한 것들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유럽의 구도심들이 수백 년 전에 지어진 좁고 불편한 건물에 살면서 확장을 않고 화장실이나 기반시설이 엄청나게 낙후된 상태인데도 그냥 살아가는 것은,
그들의 시민의식이 전통방식을 보존하자는 전 시민적 공감대가 있어서가 아니다.
강력한 법규에 따라서 구시대의 유물들 같은 건물들이 유지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런 낙후된 건물들이 바로 관광산업의 핵심 인프라이고,
그런 건물들을 보존하는 것이 전반적인 시민들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주택조합이나 재건축조합에서 자신들이 지분을 나누어 가진 지역에 단지를 조성하고 건물을 세울 때도 당연히 자치구와 서울시의 건축법규에 제한을 받는다.
그리고 특정한 부분들에 대한 허가 조건으로 일정 공간을 공공을 위해 디자인 한다던지 기부하는 형식으로 조율하곤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왜 개인의 사유물에 대하여 국가에서 간섭하고 허가를 내줄까?
당연히 전체 국민, 시민의 공공성을 위해서다.
누구나 자신들의 사유지에 마구마구 건물을 올리고 하고 싶은 형태로 개발을 한다면 그 도시는 조만간에 과거 홍콩의 ‘구룡성채’와 같은 악몽이 될 것이다.
그 때문에 건축을 허가하는 관련 기관들은 대형 주택단지들이 그들만의 성을 쌓도록 둘 것이 아니라,
해당 단지가 주변의 거리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성에 대해서 더 철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단지 주민의 입장이 아닌 주변을 지나는 주민의 입장에서 말이다.
이것은 정부나 자치구에서 미관에 관한 법을 손봐서라도 좀 달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현재 그렇게 구축된 신규단지들이 향후 몇십 년은 강남의 도시 미관을 대표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설피 제한된 높이에서 용적률을 높이고자 상자 갑처럼 지어진 주택들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
마천루들이 늘어선 홍콩의 도시미관보다도 나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법적인 문제와 단지 주민들의 프라이버시 문제로 대개의 단지는 내부에 중정과 같은 녹지를 조성하고 단지 외곽을 아파트로 성처럼 둘러쌓는다.
그러면 그 지역을 지나는 일반 시민들은 단지의 외곽을 따라 빙 둘러가거나,
방벽처럼 느껴지는 아파트 담장을 타고 돌아다녀야 한다.
아파트 단지 내 거주성은 좋아진다고 하지만 그들이 타 단지를 가게 되면 마찬가지 상황이 된다.
공간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극히 예민해서,
공간적으로 분리된 공간에 주로 거주하는 인간은 자신의 영역 밖 공간에 대해서 배타적인 심리를 가지게 된다.
어우러지는 도시를 꿈꾸는 것은 아니어도,
도시라는 거대한 커뮤니티 안에서 제각기 저마다의 성채를 쌓고 그 안에서만 생활하며 외곽의 도로는 단지 차를 타고 스쳐 지나는 공간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공간의 낭비다.
공간과 공간이 연결되고 사람들이 계속 유기적으로 순환이 되어야 도심이 살아난다.
주거단지가 폐쇄적으로 되고 성을 둘러싸게 되면 그 외곽의 도로들은 그야말로 흐르는 강처럼 작용해서 공간과 지역들을 낱낱이 쪼개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외부의 행인들을 끌어들여 활발한 움직임이 이어지는 도로들이 여러 군데 생긴다면 그것은 방범용 카메라가 수백 개 있는 것과 같은 효과가 생긴다.
학술적으로 CEPTED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 환경 설계를 통한 범죄 예방)라는 기법이 있는데,
핵심 내용으로서 자연적 감시(natural surveillance),
자연적 접근 통제(natural access control),
자연적 지역 강화(natural territorial reinforcement),
유지(maintenance), 활동 지원(activity support)이다.
이 기법의 주요한 방식은 폐쇄가 아닌 개방과 인위적인 시민들의 흐름과 시선을 통해서 범죄를 예방한다는 점이다.
거기에 더하여 도심의 미관을 살리는 것도 병행하여 계획한다.
아파트의 녹지공간을 외곽으로 돌리고, 일부를 공공의 공간으로 허용한다면
(그냥 공간 개방이 아닌 계획적인 설계를 통해서 방범, 미관, 효율, 개방감을 높이는 )
그 단지뿐 아니라 강남 아파트 전체 단지의 미관과 공공성이 좋아진다는 의미다.
‘ 입주민 ’의 편의를 확장해서 ‘강남구민’의 편의성을 높일 수 있고 전반적인 도시미관과 쾌적성이 생기는데 이걸 왜 안 하는지 모르겠다.
‘나’만, ‘우리만’을 위해 인위적으로 담을 두르고, 비용을 지불한 경비업체를 통해서 폐쇄적인 공간을 삼엄하게 지킨다는 것은 지속성 면에서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
과거에 도로에 노출된 상가들의 전면에 완전히 금고처럼 정면을 막는 철제 셔터들을 너도 나도 설치한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차폐시설이 거의 없이 파이프 셔터 같은 것으로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이게 만드는 게 일반적이다.
물리적인 폐쇄보다 지나는 행인들의 시선으로 내부가 보이는 게 훨씬 방범효과가 좋기 때문이다.
도심은 어느 정도 서로 어우러져 살아야 안전하다.
깊은 산속에서야 강철셔터와 높은 담장을 둘러도 상관없다.
그런 장소는 실제로 행인도 드물어서 타인에 의한 방범효과가 없으니까.
그러나 도심에서 살아가려면 모두가 모두에게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사회적 관계를 고려한 건축법규들이 등장하기를 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