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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 말을 거네 38

건축은 자본이다

by 능선오름


38



현시대에 우리 보통 사람들이 해외 관광을 가서 찾는 곳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개개인이 특정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곳은 고대 혹은 현대의 대형 건축물인 경우가 많다.

자연풍광도 물론 많지만, 건물 사진만 봐도 아, 어디에 갔구나 하고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알려진 건물들 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곤 한다.

특정 국가들에서는 고대의 건축물들이 관광산업의 핵심 자산이므로 그 고대의 건물들을 보존하기 위해 법적으로 혹은 물리적으로 큰 노력을 한다.

그리고 그런 노력으로 인하여 관광의 축이 된 유산들을 기준으로 주변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많은 불편을 감내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이따금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수백 수천 년 전의 건물을 관리 복원 유지 하기 위해 현대에 사는 국민의 세금이 천문학적으로 들어간다.

거시적 차원에서 미래에도 관광자원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방법으로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과거 선조로부터 그런 자원을 물려받지 못한 나라일 경우에는 경제력만 뒷받침이 된다면 새로운 유산을 창출한다.

두바이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고대에 만들어진 건물들은 자본주의가 아닌 전체주의 혹은 제국주의의 유산이자,

강력한 독재체제 (왕정 같은)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당대에 노예 혹은 강제노역으로 혹은 드물지만 강력한 신앙심 같은 것들로 만들어졌던 대형건물들은 그 체제의 붕괴와 더불어 소멸하거나 퇴락했었고, 후대에 가서 재건되거나 또는 아예 새로 복원된 경우들도 많다.

그리고 그런 기념비적 건물들이 실제 수천 년 동안을 견뎌내 온 것인지,

역사적 기록만 그렇지 실은 단지 주춧돌 몇 개 남아있던 것을 자본을 들여서 비교적 최근에 복원한 것인지 그곳을 오가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모른다.

좋게 생각하면 현대인들이 엄청난 자본을 들여서 고대 선조들의 문화적 흔적을 복원하고 전승하며 유지관리 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실제로 고대부터 그대로 존재하지 않고 사라졌던 과거의 영광을 현대 건축술과 자본으로 대충 살려놓고는 선대의 유산을 관리한다는 정신승리 비슷한 일을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현대인들이 사는 곳은 대부분 과거로부터 시작된 지역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한다.

고대의 몇몇 도시들은 현대의 도시지역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융성하다 지금은 거의 관광객들만 찾는 곳으로 변하기는 했지만 (페트라, 앙코르사원등) 문명의 흐름이 바뀐 몇 군데 말고는 고대도시들의 뿌리 위에 계속적으로 도시를 건설하여 현재에 이르는 곳이 적지 않다.

그래서 서울만 해도 땅을 파면 여기저기 문화재가 발굴되어 공사가 멈춰지는 일이 많다.

굳이 따져보면 구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면,

그때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고대 선조의 흔적이 없는 도시들이 과연 있을까.

그리고 고대의 흔적들을 온전히 보존하고 보전하기로 한다면 현대의 인류는 어디에 가서 삶을 일궈야 할까.

극히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대부분 인류는 고대 문명의 발상지에서 공간적으로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

제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고대와 비교하면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다곤 하지만 인류문명의 근본은 공간과 시간이다..

큰 강이 있어야 도시가 존속되며, 곡창지대가 있어야 문명의 존속이 가능하다.

그리고 거기서 생겨나는 도로, 수로 등 운반을 최단기간 최적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도시의 지속성이 가능한 것이다.



땅값이 싸다고 해서 먼 지방 어느 곳에 땅에 도시를 짓고,

그곳을 유지하기 위한 각종 인프라를 조성하려고 하면 이미 어느 정도 기반이 있는 곳에 비해 천문학적 비용이 들뿐만 아니라,

실제로 도시가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린다..

당연하게 특정 공간에 시간이 길게 흐르면 그 공간에 자리 잡고 있던 문명이 스스로, 혹은 외압에 의해 붕괴하거나 변질한다.


그리고 그렇게 사라진 문명 위로 다시 시간이 흐르면 새로운 문명이 자리 잡는다.

앙코르와트처럼, 잉카의 흔적처럼 완전히 잊히는 장소도 있지만, 대개는 그렇지않는다.

오랜 시간을 들여 구축한 도로망과 인프라가 존재하는 이상,

도시를 구성할 수 있는 위치에는 수백 수천 년을 걸쳐 문명이 세워지고 소멸하고 다시 그 위로 새로운 문명이 채워진다.



강북의 구도심에 새로운 건축을 진행하다가 땅밑에서 조선 시대 유적이 발견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며.

상대적으로 조선 시대에는 그저 수도 주변의 농지에 불과했을 강남 강동 지역에서 삼국시대의 유적이 발견되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은 아니다.

현세대에서 사람이 살기 좋은 지역으로 보이는 지역은 과거에도 그러했을 테니까.

그러므로 모든 고대의 유산을 보존하고 보전한다는 정책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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