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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 말을 거네 39

그 자재는 다 어디로 갔을까

by 능선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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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재는 다 어디로 갔을까


아주 오래전 이야기다.

아마도 법적인 공소시효도 이미 두 번 이상 소멸하였을 시절의.

심지어 내가 기억하는 그 군부대조차 현재는 아예 없어졌으므로 기소 불가의 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전방 전투사단의 대대급에 외부 공사업체가 들어오는 일은 흔치 않다.

그 대대에 포상공사가 진행된 것은 최전방이라는 위치상 계획된 것이었다.


포상이라는 것은 배치된 야전 포병의 야포, 말하자면 ‘대포’를 보호하기 위한 벙커 같은 것이다.

전체가 콘크리트 구조물로 만들어지고 그 위에 두껍게 흙을 올리고 풀을 자라게 해서 위장하므로 외부에서 보기에는 얼핏 언덕처럼 보인다.

전투부대에서 콘크리트 공사를 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외부 공사업체가 들어와서 공사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공사 자재 트럭이 무작정 군부대에 들어올 수 없도록 보안 체계가 엄격해서,

자재 같은 것들을 부대 연병장에 일시에 쌓아두고 몇 달에 걸쳐 작업하는 순서가 있었다.

공사업체 처지에서는 군부대 안에 자재를 보관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안전하게 관리된다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실은 그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두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당시에는 전방 부대의 시설관리에 문제가 많았었다.

군부대의 모든 물자를 책임지는 군수사령부 예하에서 최고 말단 부대에 이르기까지 지원 물품이 어떻게 어떤 경로로 오는 것인지 까지는 모르지만,

당시에는 거의 모든 군부대가 전방으로 가면 갈수록 부대 막사를 정비하거나 기타 부대의 시설관리를 위해 작업할 수 있는 자재가 없었다.

그런 형편이니 공사를 위해 연병장에 쌓인 철근 더미와 시멘트 포대, 각종 합판이나 각재 등 건축자재들은 부대장들에게는 침을 삼키게 하는 생선 더미였던 셈이다.


이 때문에 드물지만,

때에 따라서 밤중에 ( 밤에 하거나 낮에 하거나 어차피 부대 내에서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것이라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는데 ) 병력을 동원해서 자재들을 위치이동? 하는 일이 잦았다.

여기서 ‘위치이동’ 이란 군부대에서 공공연히 도둑질할 때 표현을 순화해서 일컫는 군대용어다.

문제는 길고 양도 많고 무게도 상당한 철근 같은 경우는 부대 내에 은밀하게 숨길 장소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당시 대대장은 천재적인? 아이디어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대대 연병장 한구석에 있는 관상용 연못 속에 철근 더미들을 담가버린 것이다.

그 양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 민간공사 현장소장이 자재 상당수가 사라진 것을 알고 씩씩거리며 부대 여기저기를 뒤지고 다녔지만, 당연히 자재의 행방은 오리무중.

열 받은 현장소장이 부대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는 검문소의 출입 대장까지 뒤졌지만, 당연히 사라진 철근의 행방은 묘연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어서 보통 민간업체가 군부대에 공사를 들어올 때는 전체 자재량의 5% 정도를 비슷한 손실률을 계산해서 들어온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에 없어진 자재들이 워낙 많아서 더 현장소장이 화를 냈던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사라져버린 자재들을.

이후 경과는 모르지만,

아마도 그 현장소장이 다시 철근을 본사에 요청해서 제대로 공사를 마친 것은 아닐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아마도 해당 대대의 포상 진지는 원래 설계되었던,

적포탄으로부터 대포를 지킬 수 있을 수준의 강도로 시공되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세월이 이미 오래 흘러 그 부대 자체가 없어졌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그렇게 실종되었던 철근들은 공사가 끝난 이후 연못에서 건져져서 몇 달 동안 부대 울타리, 정문 미관공사, 하다못해 구부리고 용접해서 테이블 다리로 변모를 하였었다.

당시의 대대장은 그런 맛에 재미를 들렸었는지,

임기가 완료되어 타 부대로 전출할 때는 가끔 가물에 콩 나듯 들어오던 막사 보수용 합판 한 트럭 분을 가지고 전부 이사용 박스를 만들어서 개인 이삿짐 용도로 전용한 상황도 있었다.

대대장이 시키니 할 수 없이 수십 개의 이사용 박스를 만들어야 했던 당시의 주임상사는 투덜거리며,

그래도 군대이니 어쩔 수 없지 궁실거리면서 일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요즘 순살 아파트, 철근이 덜 들어간 지하주차장 등등의 뉴스가 시끄럽다.

그 뉴스를 접하면서 아주 오래전 군대에서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아주 오래전 일이고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벌어진 일이긴 하지만,

그때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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