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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 말을 거네 40

기생충 신드롬

by 능선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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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신드롬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한창 세계적으로 히트를 기록하던 시기에 ‘반지하 방’이라는 키워드가 온라인에서 떠돌았었다.

전 세계적으로 반지하에 사람이 사는 경우란 대한민국밖에 없다는 말과 함께.

‘banjiha’ 라고 외국의 뉴스에 한국 발음 그대로 옮겨 기사화가 된 일도 있었다.

매년 장마철 집중호우 때면 등장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실제로 반지하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큰 피해를 본 일이 적지 않으니 더 그렇다.

일부에서는 우리나라만 반지하 방이 주거로 쓰인다는 자조 섞인 한탄도 한다.

97052_123488_4538.jpg 연합뉴스 사진 펌


‘미국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빈곤층은 종종 싸고 축축하고 곰팡이가 핀 banjiha에 산다." 고 했고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 방송은 'banjiha'가 영화 기생충에서 묘사된 비좁은 지하층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영국 BBC는 강남의 화려한 타워에 가려진 'banjiha' 주택에 한국인이 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MBC 뉴스 펌


이런 기사들을 보면 한국 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노골적으로 비꼬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기사들이 팩트가 아닌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겐 그런 주거문화가 없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기생충 영화를 설명할 때 외국 언론에서 마땅한 단어가 없어서 semi basement apartments이라고 했다고 하니, 흔한 구조는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아래 기사를 보면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도시 전체에 5만 채의 불법 지하 아파트가 있을 수 있으며 이곳에 10만 명 이상이 살고 있다고 예상한다. 부수입을 얻으려는 집주인과 싼 주거지가 필요한 세입자의 수요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주택시장인 뉴욕에 10만의 지하 거주자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들 다수는 불법 이민자들로 뉴욕 곳곳의 식당과 호텔,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2021.09.09. 오마이뉴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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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뉴욕 퀸스의 지하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허리케인 ‘아이다’의 영향으로 사망한 사실들이 뉴스에 기록되었으니 이 또한 팩트 다.

다만 우리나라처럼 합법적으로 반지하 거주공간이 허가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영국 런던에도 그렇고 유럽의 일부 국가들에서도 이런 형태의 반지하 주거가 있다고 한다.

런던의 템스강에는 수시로 정박지를 옮겨야 하는 보트 주택도 있다고 들었다.

어느 선진국에도 형태는 다르지만 열악한 구조의 주거지는 존재한다.

합법과 불법의 차이는 있지만, 엄연히 수많은 경제적 약자들은 극히 불리하고 거주성이 나쁜 주택에서 생활하는 게 현실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홍콩의 주거지 중에는 안 그래도 비좁은 아파트 내부에 간신히 매트리스 한 개 정도가 들어갈 정도의 공간으로 박스를 짜서,

그 박스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당연히 그 박스에서 일어서는 건 불가능하고, 눕거나 고개를 숙이고 앉는 정도의 공간이다..

물론 같은 홍콩지역이라도 조금 중심부를 벗어나서 외곽지역으로 간다면 같은 비용으로 좀 더 나은 형태의 주거지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이라던가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 여러 가지 이유로 거의 닭장과 같은 주거형태에 몸을 맞춰 생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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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zQTE0-700x467.jpeg ©Benny Lam 작가 사진펌

우리나라 또한 고시원의 규모와 형태가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진짜로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보증금이 거의 없이 낮은 월세로,

공동취사와 공동욕실, 공동화장실을 통해 유지비가 적게 드는 주거를 선택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물론 그 대가로 냉난방이 취약하고, 아예 창문도 없고 환기할 수 없는 공간들도 있다.

이전 건축이 말을 거네 25에 올린 홍콩 정크 보트 주택도 비슷한 맥락이다.

결국, 모든 문제는 비용의 문제이며, 수요와 공급의 문제이다.

지금은 모르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림동 근처 중국인 거주지역에서도 오래된 다가구 주택들의 방안에 홍콩과 같이 나무로 박스를 짜서 칸칸이 나눠 월세를 받곤 했었다.

극단적으로 보면 공간적으로 과거 노예무역선의 형태와 공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차이라면 이건 내가 돈을 내고 사는 공간이며 스스로 벗어나려고 할 수 있다는 것뿐.


KaWq1R-620x827.jpeg 심규동 작가 사진 펌


고대 로마 시대에도 로마 근교의 빌라들도 열악하고 언제 붕괴할지 모르는 위험한 상태의 건축주들이 세입자의 세를 받고 살았었으니,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해야 할까.

법으로 반지하 주거를 금지한다고 과연 수요와 공급이 사라질지 의문이다.

도리없이 그런 형태의 주거지도 허용할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최소한의 안전장치와 거주환경을 좀 더 낫게 만드는 쪽으로 법을 고치는 게 현실적이지 않을까.

지금 현재도 어느 지역에서는 분명 불법적인 ‘쪽방’을 만들어 임대하고 있을 것이고,

그 쪽방이 불법이라고 다 금지하고 강제로 철거하면 쪽방 정도의 경제력으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라는 말인가.


도시 빈민을 만드는 것은 결국 정치와 경제의 문제이다.

열악하더라도 좀 더 나은 정주 환경을 만드는 것은 비용과 설계의 문제이고.

사람들이 가서 살기 어려운 머나먼, 인프라라곤 없는 장소에 임대아파트를 잔뜩 지어놔도 사람들은 쉽게 삶의 무대를 옮기기 어렵다.

차라리 그런데 들일 비용으로 현재 도심에 있는 열악한 주거지들을 좀 더 안전하고 쾌적하게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모두가 다 평등하게 ‘부유하게’ 살 수는 없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최소한의 삶의 질을 기초로 놓고 사회구조를 바꾸는 것은 가능하다.

결국, 선진국이라는 기준은 국민 전체 과반수가 최소한의 삶의 질을 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내밀 수 있다고 생각한다.

태풍 뉴스가 흉흉한 시기에 문득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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