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건축이 말을 거네 41

마녀사냥

by 능선오름

41

마녀사냥


중세기 때의 마녀사냥에 대해서는 누구나 대충은 들어서 알고 있다.

이른바‘ 마녀’가 존재하지 않음도 알고, 과거 사람들의 무지함에 대해 개탄을 하는 흑역사 일부다.

유럽의 마녀사냥은 대략 12세기경부터 유행했었는데, 17세기 신대륙 미국에서조차 마녀사냥이 있었다.

그 시대 이후로 마녀사냥이라는 단어는 대체로 어떤 특정 세력이나 특정한 인물에 대해 정신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일방적인 ‘몰아가기’를 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요즘 순살 아파트 사건의 여파가 크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년 전부터 일어난 대형건설사들의 여러 사건 사고,

그리고 이어진 건물의 하자 문제, 장마철에 물이 고인 지하주차장 등 이슈가 많아졌다.

때문에 최근 년에도 지어진 아파트단지 들에 대해 전수조사가 이뤄지고,

건설사와 하도급사, 건축사와 감리사, 시공책임자에 대해서 누구의 잘못인지를 규명하는 절차가 바삐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건축의 변방에서 일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조금은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각종 산업지표가 나름 첨단, 최신기술을 표방하고 있는 이 시절에 건축 분야만큼은 유독 과거 개발도상국 시절과 그리 다르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이십여 년 전 건축현장에서 실무를 하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본다..

우리나라의 건설 진행은 꼭 아파트단지가 아니어도 비슷한 흐름을 따라간다.

동계에 콘크리트 골조공사를 하기는 어려우므로 봄에 활발하게 골조공사를 시작하고, 여름 장마철이 오기 전에 지하부의 소위 ‘뚜껑’을 닫는데에 박차를 가한다.

그다음은 가을철 ‘추석’을 앞두고 기성청구를 해야 하므로 ( 업체에 대목 결제를 해야 하니까) 여름 장마가 끝나는 시기와 가을 명절 전에 미친 듯 공기를 앞당겨야 한다.

그래야 청구를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 시즌이 지나면 겨울에 공식적으로 동계 콘크리트 타설이 어려워지는 시기 이전에 또 박차를 가한다.

그래야만 해당 연도의 4분기 종료 이전에 최대한 기성고를 높일 수 있으니까.


maxresdefault (4).jpg


문제는 이 시기가 큰 현장이나 작은 현장이나 예외 없이 계절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프로세스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시기적으로 콘크리트 타설에 필요한 레미콘 공장에 부하가 걸린다.

나 또한 그 시절에는 현장이 아닌 레미콘 공장에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현장으로 가야 할 레미콘들을 관리하곤 했었다.

레미콘 공장의 출고 담당에게 봉투를 줘야 하거나, 심지어 각각의 레미콘 기사들에게도 개별로 봉투를 돌려야 현장의 공정에 맞춰 콘크리트 타설을 할수 있었다.

지금은 그런 정도는 아닐 테지만, 그래도 늘 수요가 몰리는 시기에 공급이 맞춰지기는 어렵다는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안될 물량을 맞추기 위해 원래의 콘크리트 배합률을 떨어뜨리는 일도 있을 수 있다.

원자재는 이미 한정되어 있으니까.


100.jpg


레미콘이 아닌 철근 같은 주재료도 마찬가지의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공사를 진행할 기간이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수년이 될 건데 그사이에 벌어질 온갖 천재지변과 물가 상승, 세계 경제의 흐름까지를 고려하여 사전에 예측하여 공사입찰을 할 수 있는 회사는 없다.

그저 과거의 축적된 데이터에 약간의 막연한 예상을 더 하여 가격을 산출할 뿐이다.

그러다 보면 이미 정해진 공사 기간, 이미 정해진 금액 안에 공사를 마쳐야 하는 지상과제가 생긴다.

그 때문에 예측을 초과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결국은 하도급에 재하청 업체들이 그 비용과 기간을 감당해야 하는 고질적인 ‘전가’가 이뤄진다.

이건 참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는데,

대형건설사가 직접 시공을 하는 기능공들을 보유할 수 없는 구조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문제라고 딱 짚어낼 능력은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강력한 처벌과 으름장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려운 근본적인 구조의 문제들이 있다는 것이다.

단지 어느 일부를 특정해서 낙인을 찍고, 그들을 격리하였으니 해결되었다고 자부할 수 없는 일이다.

일정 부분 초대형 프로젝트가 아닌 공사들에 대하여는 차라리 전문적인 중소중견 업체의 컨소시엄은 어떨까 생각한다.

설계사와 감리사가 컨소시엄을 결성하여 전반적인 공사 진행의 잘잘못을 책임 검수하고,

시공사와 그 시공사에 연계된 하청업체간 컨소시엄을 맺어 책임시공을 유도하는 것이다.

대기업 건설사는 해외공사나 대형 토목공사 같은 규모가 있는 일에 치중하고,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공사들은 중견 중소기업에 맡기는 것이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변두리의 4, 5층짜리 근린상가 공사도 대기업이 간판을 내걸고 공사하는 경우가 많다.

건축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 중 그게 진짜로 대기업에서 하는 일이 아닌 것은 다 안다.

소수의 대기업 소속 직원들이 나와서 일종의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를 하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에서 제대로 공사 관리가 되기보다는 대기업 특유의 수많은 보고서와 나중에 면책을 받을 수 있는 행정업무 처리를 하는 게 보통이다.

실제 공사는 거의 하청업체에서 이뤄지고,

그런 간극에서 발생하는 관리비와 대기업의 브랜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리스크는 하청업체들이 모두 떠맡아야 한다.


60_5415187.jpg


과거에,

군대에서 육군참모총장이 화를 내기 시작하면 그게 내려가고 내려가서 막판에는 최전방 말단 부대의 PX 관리병이 원산폭격을 하고 있다는 모양새가 되는 것이다.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고, 자재 수량을 대조해보고, 실제 설계가 제대로 이뤄진 것인지 설계대로 진행이 되는지 확인하는 인원은 극소수이고 행정과 문서작업에 매달리는 게 현실인 것이다.

모두가 ‘입’으로 일하는 현장에서 결국 ‘몸’으로 움직이는, 아무 책임도 없을 일당벌이의 손에 건물이 올라간다.

이런 관행이 모든 현장에서 벌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많은 현장에서 그런 일들이 스스럼없이 벌어지기도 한다.


나의 ‘소소하며 적용 불가능한’ 의견은 이렇다.

우리나라 건설산업 구조의 특징인 가분수같이 지시를 내리는 조직만 비대하고 실제로 움직이는 몸통은 모두 하청에 재하청을 반복하는 구조로서는 앞서 벌어진 문제들을 해결하기 어렵다.

특히 그 가분수 조직이 현장과는 거리가 먼 이론가 출신들이 다수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더 큰 문제는 발주처의 문제다.

거의 모든 발주처가 해당 프로젝트를 수주한 건설사의 의견에 크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

대부분 발주처의 목표는 비용 절감이 지상과제이니 더욱 그렇다.


‘ 예전에도 다 이렇게 했잖아? ’

‘ 공사 기간 단축을 하는 게 뭐 어려워? ’

같은 방식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은 여전히 존재한다.

해당 프로젝트의 수주사는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니 그렇다고 해도,

그 공사를 관리·감독하는 감리사의 의견조차 발주처가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감리사는 감리비용을 어차피 발주처로부터 받으니 발주처의 억지에도 크게 대처할 수 없다.

전문가의 의견은 비용의 논리에 의해 무시되고 만다.

이런 관행이 이대로 존재하는 한 건설산업의 구조적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건축이 말을 거네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