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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 말을 거네 42

주거는 재산일까?

by 능선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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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는 재산일까?


인류가 부동산이라는 개념을 갖게 된 것은 아마도 농경문화가 시작된 이후일 것이다.

그 전의 수렵채취기에도 부족의 사냥터라던가 먹거리를 해결하는 지역에 대해 일종의 배타적 권리를 가지려고 했을 것이지만 사냥물의 유무와 채취 가능한 식물의 유무에 따라 유목민적인 습성이 더 강했을 것이고,

확고하게 부동산에 영역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정주적인 문화로 자리 잡은 농경시대 이후가 해당할 것이다.

더구나 농사에 유리한 땅을 찾아 소유권을 가지려고 하다 보니 아무래도 농경지로 가치가 높은 지역에 대한 다툼이 컸을 것이고,

그 결과물을 축적하며 지키기 위해 더 커다란 방어적 영역으로 울타리와 성벽이 등장했을 것이다.


그러다 공업이 등장하여 산업사회화가 되면서 산업화에 유리한 밀집형 도시가 발생했을 것이고, 그에 따라 도시의 밀집 거주 형태가 자리 잡았을 것이다.

이제 4차 산업이 이미 자리 잡고 있는 과정에서 일부 테크 기업들은 본사의 위치를 도심을 떠나 먼 지역에 자리 잡는 경우도 생겼다.

잔뜩 모여서 물리적인 작업을 하기보다 먼 곳에서도 온라인으로 업무가 가능한 장점이 테크산업의 특징이니 부동산 가격이 높지 않고 쾌적한 환경이 보장되는 지역에서 기업을 유지하는 것이 나쁘지 않기 때문일 텐데.

나중에 결과를 보면 다들 다시 도심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한때 은퇴 후의 귀농생활과 도심 주변에서 멀지 않지만, 자연에 가까운 환경을 지닌 타운하우스가 유행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보면 대개 귀농했던 사람들은 다시 도시로 돌아오고,

타운하우스의 인기도 이전만 못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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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럴까.

해당 지역들이 아무래도 교육이나 의료, 문화시설, 대중교통망 등 인프라가 부족해서 일 것이다.

물론 기본적인 삶에 필요한 부분들은 대부분 자가운전으로 30분 이내 거리에 존재하는 게 보편적이라 조금만 움직이면 괜찮을 텐데도 그렇다.

서울지역에서도 집값이 높은 지역들은 대개 그런 인프라들이 걸어서 삼십 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결국, 주거의 위치에서 가장 유리한 곳은 많이 안 움직여도 모든 것이 가까이 자리 잡고 있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강북이 강남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낮은 이유는 시설의 밀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강북은 오래도록 구도심에 대한 법규와 제한으로 개발이 보존 혹은 보전이라는 방식에 치중되었고,

이전의 주거지역과 상업지역이 나눠진 구역들을 통합하기 어렵다.

반면에 강남지역은 개발 당시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한 이유를 찾아서,

강북지역에 있던 명문 학교들을 거의 강제로 강남에 이전시키고,

주거지역과 상업지역이 함께 뒤섞인 형태로 개발을 진행하여 지금은 어느 지역에서 살아도 대체로 인프라가 좋다.

인구 밀집도가 높으니 상대적으로 상업 시설들도 활발하게 들어선다.

이렇다 보니 강남에서 처음부터 공동 주거단지로 개발된 곳은 삶의 쾌적성이 좋지만,

처음 강남에서 주택가를 이룬 다세대나 다가구주택이 밀집한 곳은 거꾸로 주거환경이 좋진 않다.


물론 그런 곳들도 주변의 인프라는 좋고 교통도 편해서 가격이 낮진 않지만,

대부분 개발제한으로 인해 전체적인 재개발 재건축이 아니고선 개개별 주택들은 주거환경이 그리 좋진 않다.

땅값은 엄청나게 상승했으니 낡고 불편한 정주시설에 재산세만 높게 내야 한다.

그러나 ‘강남’이라는 지역의 프리미엄을 포기하기는 어렵다.

당장 당대가 아니어도 분명 강남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적당한 시기가 되면 큰돈이 될 것이고,

강남이라는 지역의 인지도와 거주 편의성을 생각하면 그만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버틸만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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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이십여 년 전.

압구정동에 작은 평수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때 그 사람은 압구정동이 막 개발될 때 아파트를 샀던 사람이라 지금의 투기와는 결이 매우 다르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생활하다가 정년퇴직을 하였는데, 당시에 가진 재산은 아파트 한 채가 전부였고 아파트 가격이 상당히 높게 올라서 그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였다.

당시의 아파트 시가는 천안 지역에 다가구 주택 한 동을 통매입할 수 있을 정도였고, 그 사람은 압구정의 아파트와 천안의 다가구 주택을 맞바꾸게 되었다.

다가구 주택에서는 매월 임대료를 받을 수 있고 상부층에 본인의 취향대로 주거시설을 만들 수 있었으니 일거양득이라고 판단했다.

지금은 어찌 지내는지 모르지만, 과연 그 사람의 후손들은 그렇게 팔고 내려온 압구정 아파트에 대해 미련이 없을까.

현재의 시세를 생각하면 열 배가 넘는 금액이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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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한편으로 생각하면,

어차피 쓰지도 못할 돈을 우겨서 깔고 앉아 살면서 세금을 내고 생활비를 벌려고 애써야 했던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나름 수도권에서 너무 멀지 않은 지역에 한적하게 자리 잡고 은퇴를 즐기면서,

매월 월세로 생활비가 충당되는 상황을 만들었으니 당사자는 스트레스도 덜 받고 행복한 은퇴 생활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당시엔 더 오를 일 없다고 생각하던 압구정의 부동산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솟았으니,

뒷방 한구석에서 몰래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래저래 주거목적의 부동산은 재산인지 그저 주거인지가 모호하다.

유럽의 사정도 그리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파리 나 런던의 중산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최근 주택담보대출금리가 60%로 올라서 원래 자가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도 월세로 주거형태를 바꾸고 있다고 한다.

런던에서 1인용 원룸을 얻는 비용이 월 170만 원 정도 한다고 하니,

추측하건대 사회 초년생은 거의 수입의 절반 이상을 주거에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중산층이 붕괴하고 오직 부동산을 가진 소위 ‘물주’만이 살아남는 세상이 온다면,

과연 그것이 오래 유지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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